올해로 10년째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활동을 시작할 무렵 학교로 들어가고 싶었던 ‘노동인권교육’은 편향적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시간이 흘러 각 시·도 교육감 선거 공약사항이 되고, 지역에서 노동인권 활동을 고민하는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 덕인지 여러 지역과 학교에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노동교과서’와 ‘민주시민교과서’가 만들어지고 학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인정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우려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일하는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고민이 청소년을 가르치려는 교육에만 치우치는 현상이다. 노동인권에 대해서라면 노동법을 잘 지켜야 하는 사업주,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의원,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근로감독관을 포함한 공무원 등 배워야 할 사람이 참 많다.

그런데 배워야 할 사람으로 쉽게 청소년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 사회 청소년의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학교에서 공부해야 ‘정상’인 청소년은 일터에서도 여전히 배우는 과정에 있는 ‘미성숙한’ 노동자로 여겨질 뿐이다.

둘째, 교육마저도 노동법 위주라는 점이다. 노동법을 가르치는 이들이 청소년을 대하는 관점과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감수성이 부족한 경우 이런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저도 수당이랑 최저임금쯤은 알아요. 근데 그런 교육 듣고 있으면 우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듣다가 그냥 스마트폰 봐요. 뭐, 잘난 체하러 온 것 같아 별로예요.”

간접고용 혹은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는 청소년이 늘어난 현실에서 노동법만 알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누구와 만나 어떤 내용을 나눌 것인지 고민 없이 교육을 하려는 이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강사단 양성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함께할 일이 많아지면서 든 생각이다.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알바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있는데, 특성화고 학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현장실습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와 만나 어떤 내용을 나눌 것인지 빠져 있는 교육의 경우 강의를 진행하는 사람은 단순한 지식전달자에 머무르기 쉽다. 공감과 연대는 빠지고 연민만 남게 되는 공허한 교육으로 흐르기 쉽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2005년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를 알리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현행법상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은 반드시 현장실습을 하도록 돼 있다. 현장실습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재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산업체에 파견해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5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세상에 알린 현장실습 실태는 교육과정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 당시 많은 학생이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게 불법인 소개업체로 보내졌다. 학생들은 제조업체에 파견돼 간접고용 형태로 일을 했다. 전공 분야 실습은 없었다. 그 공장 노동자와 같은 라인에서 같은 형태의 교대근무를 했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뿐 아니라 휴식시간도 보장받지 못했다. 형편없는 식사를 하며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에 시달렸다.

교육이라 부를 수 없는 파견형 현장실습 실태가 알려지면서 교육부는 2006년 부랴부랴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다. 취업이 예정돼 있고 수업을 3분의 2 이상 이수한 경우에만 파견형 현장실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었다. 학교는 혼란에 빠졌다. 오랜 기간 파견형 현장실습에 길들여져 있던 학교에서 다른 형태의 현장실습을 하라니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갑자기 학교에 갇혀 버린 학생들의 불만도 높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돈이나 벌 게 그냥 나가게 해 주지. 왜 학교에다 붙잡아 놓는 거야!’

정상화 방안은 2008년 MB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 이후 학교장 재량으로 남겨졌다. 학교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1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실습 중에 누군가 쓰러지거나 사고로 희생돼야 반짝 관심을 보일 뿐이다. 그 관심도 ‘어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산업체의 잘못을 질책하는 것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지, 학생들의 희생만 강요되는 파견형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으로 유지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어떤 문제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약자들의 전쟁만 소환된다고 한다. 파견형 현장실습이 유지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취업률의 덫에 빠져 위험노동으로 학생을 내모는 학교와 다른 선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특성화고 학생 사이의 문제, 혹은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현장실습업체만 부각될 뿐이다. 취업 잘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서열화돼 지원금이 달라지고, 취업을 못하는 학생의 개인적인 능력문제로 남아 버린 현실에서 어떤 노동인권교육이 가능할까.

요즘 가장 큰 고민은 특성화고 파견형 현장실습 문제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다. 관심을 갖는 이가 적은 이유도 있지만 무력감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문제 설정과 돌파구를 마련할 행동이 부족한 때문이기도 하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가까운 시기에 특성화고 파견형 현장실습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토론회의 가장 큰 목적은 아마도 함께 질문하고 행동할 사람 또는 단체를 찾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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