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문제다. 정년연장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노동자·노동조합의 반대에도 임금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해결사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노골적으로 정규직 고용 경직성을 완화하고 고임금 등 근로조건을 낮추겠다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을 정규직의 고용·임금 등 근로조건의 삭감을 통해서 달성하겠다는 박근혜 정부판 비정규직 차별해소 방안이었다. 현 정부 들어서 갑자기 들고 나온 노동시장 개혁 방안은 아니다. 정규직 과보호론에 입각한 권력의 노동 개혁론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있었다. 더 돌아가 보면 노무현 정권의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노동귀족론에도 있었고, 당시 추진했던 노사관계 선진화론,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에도 숨어 있었다. 이 나라에서 권력은 오랜 기간 여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도 노동시장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그리고 권력은 2015년 노동 개혁을 외치며 사용자들에게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무기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안내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과반수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음에도(제94조제1항 단서), 이를 위반해서라도 임금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대한민국의 국가(권력)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말하고 있다. 권력의 말대로라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법 위의 법이다. 강행법을 위반해도 법적 효력이 인정되는 신통력이 있다는 것이니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야말로 법 위의 법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강행법을 위반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다니 사회통념상 합리성론은 사용자에겐 도깨비방망이겠지만 노동자에게 저주의 주술이다.

2. 고용노동부가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공청회를 앞두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지침)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공청회라며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의 발제문이 포함된 공청회 자료집을 배포했다. 거기서 정지원 정책관은 정년연장에 따른 취업규칙 변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예시했다(정지원,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 임금체계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 자료집(2015.5.28.). 첫째 취업규칙 변경으로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둘째 사용자측의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셋째 변경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넷째 대상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다섯째 노동조합 등과의 충분한 협의 노력, 여섯째 동종 사항에 대한 국내의 일반적 상황(같은 산업이나 업종 내에서의 임금피크제 도입 사례, 임금조정 수준 등)을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단기준으로 들면서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은 구체적으로 이에 해당한다고 예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과반수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도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있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주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임금피크제 도입이야 말로 임금삭감하는 것이라서 노동자에게 불이익 정도가 큰 것이니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고 해야 할 테고, 둘째 정년연장에 관한 법은 사업주에게 60세 이상으로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도록 명령하고 60세 미만으로 정한 근로자의 정년은 60세로 간주된다고 했지 임금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것을 주문한 것이 아니니 적어도 60세 정년 보장과 관련해서는 취업규칙 변경의 필요성도 인정되지 않고, 셋째로 그 상당성도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넷째 법은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조치를 규정한 것이라서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대상조치는 정년연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적어도 60세 정년은 법이 보장한 것이므로 이를 두고서 임금피크제 도입의 대상조치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이를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단요소로 드는 것은 부적절하고, 다섯째 노동조합 등 노동자측과의 충분한 협의는 합의 내지 동의 정도에 이르는 것일진대 이러한 합의 내지 동의 없이 할 수 있다는 판단 요소로 들고 있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여섯째 어느 한 사업장에서 어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 들 수 있는 판단요소를 드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렇게 노동부가 준비하고 있다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그 해당성이 없거나 부적절해서 도무지 합리성이 없다고 나는 그 주문을 듣는데 노동부는 사용자에게 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따라 하기만 하면 해결된다고 하고 있다.

3.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례 법리는 근로기준법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관한 규정이 도입되기 전에 1970년대 대법원이 판시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당시 판례에 의해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 않았다. 그러니 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의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변명할 수 있었다. 그 뒤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명시적으로 도입했다(1989.3.29. 개정 법률 제4099호). 현행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 규정이 그것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는 근로기준법은 규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법원 판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존부는 취업규칙 변경으로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용자측의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대상 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상황, 노동조합 등과 교섭 경위와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의 대응,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의 일반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2000.9.29 선고 99다45376 판결, 대법원 2001.1.5 선고 99다70846 판결, 대법원 2004.5.14 선고 2002다23185 판결 등). 우리 대법원이 '창조'판결을 해 낸 것은 아니다. 이 판례의 법리를 처음으로 판시할 당시 일본의 판례 법리를 옮겨온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법적 근거 등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다가 2007년 노동계약법 제정시 이를 제10조에 규정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세우면서 참조했던 일본에서는 2007년 이전에는 우리의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의 불이익변경 절차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판시해도 실정법 위반이 크게 논란이 될 것이 아니었고 2007년 이후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노동계약법에 규정됨으로써 그에 따른 판결이 역시 실정법 위반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판례의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관한 이러한 판단 요소는 불이익변경 및 근로자(대표)와의 협의 정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으로서 합의 내지 동의의 정도에 이르면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인정한다는 것이므로 이에 관한 근로기준법상 절차규정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 구체적인 사건에서 근로기준법을 집행하면서 법원이 판시해 낼 수 있는 판결 법리라는 걸 자백하고 있다. 사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주술을 제대로 행했다면 대법원 판례가 판시한 것처럼 사용자를 위해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절차에 따라 변경된 취업규칙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판단해서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어야 했다. 실제로 사회통념상 합리성론의 모국이라 할 일본의 법원은 그런 판결을 했다. 그래서 일본 판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었다.

4.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적용받게 될 근로조건 등이 변경된다면 불이익변경이든 아니든 노동자나 적어도 노동자를 대표할 권한 있는 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근대 이후 세상이 서 있는 법적 기초다. 사적 자치니 계약 자유니 그 원리의 이름을 뭐라 불러도, 그 신분과 지위가 누구이든 자기결정이 권리와 의무의 정당성이다. 마땅히 근로계약의 내용, 근로조건은 계약의 당사자인 노동자(또는 그 대표)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로 정해야 할 사항이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계약이 있다면, 그 계약을 법은 부정할 수 있어야 하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다면 그 법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권력에 의해서 윽박지르는 권력관계가 아닌 한 자기결정을 부정하고서는 무엇이라도 법적으로 정당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합의로 정할 근로조건의 내용은 제한이 없다. 합의된 기존 근로조건의 변경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할 순 없다. 반드시 노동자와의 합의가 필요하고 그래야 그 노동자의 근로조건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통해서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 해도 그 기준이 근로조건인 한 근로자와의 합의 없이 스스로 정당할 수가 없다. 근로자의 임금 기준을 변경하게 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의 법적 기초를 송두리째 부정하고서 하는 권력의 말이다. 사회통념이 그걸 합리성이 있다며 정당한 거라고 적법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그런 사회통념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문제다. 취업규칙 작성과 변경에 관한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정하도록 보장한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및 복무규율에 관한 기준에 관한 준칙을 정할 경우에 필요한 절차를 규정한 것이지,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기준에 관한 준칙을 정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는 근로자와 합의로 정한 근로조건을 해당 사업장의 준칙으로 정하는 경우라고 취업규칙에 관한 근로기준법을 읽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해석 위에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읽어야 한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법적 비난을 받아야 한다. 주술이 법일 순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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