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는 특별한 인사들이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했다. 바로 청년과 비정규직 당사자다. 최저임금 협상을 ‘국민 임단투’로 부르는 이들은 최저임금위가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도 투명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알권리 충족을 위해 최저임금위 회의에 참석한 청년·비정규직 노동자위원이 보고 들은 내용을 지면에 싣는다.<편집자>

지난 4월30일 노동자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짧은 시간이나마 많은 분들을 만나기 위해 애를 썼다. 각자의 삶을 통해 전해 준 이야기는 제각각이지만, 나는 한 가지 절박함을 읽었다. 오늘의 생존을 넘어 내일의 희망까지 품을 수 있는 최저임금이 돼야 한다. 되뇌고 또 되뇌었다. 잿빛 건물과 근엄한 중역의자로 뒤덮인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 안에서도 나를 향해 보내 주는 수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를 온몸으로 느끼며 외로움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참담한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부족한 사람에게 짙은 격려와 지지를 보내 준 모든 분들께 한없이 감사하고, 또 한없이 죄송하다. 6천30원이라는 숫자 앞에서 우리가 지난하게 싸우면서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생각한다.

2010년 3월 출범한 청년유니온이 처음으로 선정한 의제는 다름 아닌 최저임금이었다. 당시 청년유니온은 시간당 4천110원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며 일하는 편의점 청년노동자의 실태를 알림으로써 세상에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그 이후로도 최저임금위 당사자 대표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최저임금 인상운동을 중심으로 대학생·청년단체의 힘을 모아 나가며 매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2015년에 이르러서는 민주노총의 결단으로 (가맹·산하조직이 아님에도) 청년 당사자 자격으로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최저임금은 젊은 노동자에게 참으로 고약한 현실이다. 이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고용정책으로 말미암아 중심부와 주변부로 끊임없이 분절된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과 연관돼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최저임금과 무관한 대기업·공공부문 같은 중심부 노동시장에 진입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이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 등으로 표현되는 특별한 행운을 간직한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대다수는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으로 점철된 주변부 노동시장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이 주변부 노동시장의 삶은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다.

5월 최저임금위 공식 현장방문 일정으로 한 중소 IT업체에서 일하는 20대 노동자를 만난 일이 있었다. 일주일에 50시간 수준으로 일하고 18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고 했다. 그에게 지금의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편인데, 최저임금 인상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느끼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이 자신의 연봉협상 과정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단으로 분절돼 대다수 노동자를 무한한 생존경쟁으로 내몰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박탈하는 지금의 노동체제(Labor-regime)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주변부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려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를 늘리고, 땀 흘려 일한 이들이 정당한 대가를 누리고 삶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중간지대’를 튼튼히 세워야 한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고용보험 재정을 확충해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실업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열악한 지위의 노동자들에게 위법한 노동조건을 강제하는 기업들을 잡아내는 근로감독 행정을 강화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 노동의 지속가능성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변부 노동자들은 자신의 절실한 필요를 사회적으로 관철시킬 이해대변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61%에 육박하지만, 100인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1%대에 불과하다. 작업장에 기반한 양대 노총의 전통적인 노동조합 조직화 모델은 애석하게도 서비스노동으로 대표되는 산업구조 개편과 비정규직 확대라는 고용구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기점으로 노동운동은 존립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쇄신의 방향은 명확하다. 그동안 양대 노총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주변부 노동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의 전략적 지향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낙수효과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노동운동이 주도해 가장 아래에서부터 위를 향하는 ‘진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말해야 한다. 이것이 중심과 주변으로 단절된 노동을 하나로 묶어 더 큰 단결을 만들어 내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6천30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는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26만원이다. 2015년 116만원 대비 약 10만원이 인상된 금액이다. 현재 저임금 노동자의 삶은 생존을 위한 기준선 밑 적자 상태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 적자 기준선을 흑자로 전환하고, 남은 여백을 인간으로서의 삶과 존엄으로 채워 나가는 과정이다.

126만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고 가야 할 길이 많은 금액이다.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현재의 삶은 끊임없이 역동한다. 나는 이 10만원이 고된 취업준비 끝에 오는 커피 한 잔, 영화 한 편의 여유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집에 있는 자식들에게 짜장면을 사 주면서 탕수육도 함께 시켜 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간절함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이들이 단 몇 만원이라도 저축함으로써 불투명한 미래를 조금씩이라도 구체화시켜 나가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 작은 소망들이 모여 오늘의 싸움보다 더 큰 내일의 싸움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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