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노동자 대투쟁 후 노동계 단체행동은 주로 6월 말 7월 초에 쏠렸다. 노사 간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이 이 시기가 되면 막바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계의 '시기집중' 파업이 진행됐다. 주로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주도한 단체행동이다. 물론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노사는 여름휴가 시작 전인 7월 말에 노사합의를 이끌어냈으나, 최근에는 9월까지 단체교섭이 진행된다. 제조업과 달리 공공·금융기관은 하반기에 단체교섭을 타결하는 경향을 보였다. 공공기관 노사는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이뤄진 후에 단체교섭을 벌였고, 금융기관 노사도 같은 행보를 취했다. 이러다 보니 제조업과 공공·금융 노사의 단체교섭은 시기별로 나눠졌고, 단체행동은 분산된 형태로 나타났다.

올해는 이런 공식 또는 관행이 깨질 수 있을까.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임금교섭 타결비율이다. 올해 임금교섭 타결 비율은 예년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지만 주로 무노조·영세사업장 덕을 봤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100인 이상 사업장 1만517곳의 임금교섭 타결비율은 43.7%인데 이 가운데 무노조 사업장은 53.1%나 된다. 유노조 사업장의 임금교섭 타결 비율은 17.9%에 불과하다. 제조부문 유노조 사업장의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은 7~8월에 몰리고, 이 시기에 단체행동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두 번째, 이런 흐름을 노동계가 주도하고 있다. 노동계는 최근 여름투쟁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이 총파업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이달 13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에 들어간다. 또 이달 23일과 다음달 23일 대규모 집회 개최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24일 1차 파업을 벌인 민주노총은 이달 15일 2차 파업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 주력부대는 양대 노총 제조·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이달 15일 선제 파업에 들어가는 데 이어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투본이 22일 파업을 벌인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공투본은 다음달에 파업을 벌이는 방안을 확정했다.

노동계의 파업 예고는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안' 때문이다. 정부는 6월17일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30대 기업집단 551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집중지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8월에 취업규칙 변경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담은 가이드라인(행정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노동부는 "임금피크제 실시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의 경우 노조나 노동자의 동의 없어도 가능하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에 대해 "근로조건의 전면적인 개악을 불러오고, 쉬운 해고를 조장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근로기준법을 하회하는 형태로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조항 일방 변경을 지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엔 노동계의 이런 해석에 야당과 법조계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야당은 모법인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대표적인 행정입법 사례로 노동부의 취업규칙·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꼽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에 위배된다고 해석한 바 있다. 이쯤 되면 "박근혜 정부가 노동계의 여름투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주장은 억지가 아닌 듯 보인다. 노동계 여름투쟁의 불길에 노동부가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다.

대부분의 조합원이 여름휴가에 들어가는 7~8월에 노동계가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유노조 사업장의 임금교섭 타결 비율을 보나 노동계의 파업 예고를 보면 '하투'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단, 노동부가 당초 6월에 발표할 예정이었던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8월로 미룬 것은 변수로 보인다. 노동계와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전제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사정 대화를 재개하는 전제조건으론 충분치 않다고 반박한다. 정부가 취업규칙·일반해고 가이드라인를 폐기하지 않는 한 대화는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정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중재해야 하는 국회마저 개점휴업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후 여야 관계가 경색됐기 때문이다. 노사정 모두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는 상태에서 긴장감만 높아지고 셈이다. 그야말로 꽉 막힌 노동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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