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승현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어느 한 회사에서 사내에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인사제도를 도입하겠다며 인사제도 변경 공지를 올린다. 인사적체 해소, 연공서열에 따른 경직된 조직문화 개선, 업무효율성 제고라는 목적으로 회사가 제시한 인사제도 개선안은 직급폐지·성과급제 도입을 담고 있다. 당장 노동조합은 반발하며 인사제도 안에 대한 교섭을 요구하지만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지된 인사제도를 시행한다.”

요즘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인사제도에 관한 분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말이 인사제도에 관한 것이지 실은 임금에 대한 문제다. 직급을 폐지하면 승진에 따른 임금인상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성과급에 따른 임금 지급은 필연적으로 임금 동결이나 삭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업장별로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지만 사업장 내 노동조합이 소수노조건 과반노조건 회사는 애초 공지한 대로 인사제도를 변경하고 대부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업장 내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인사제도 변경에 반대함에도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무시하며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이유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의미에 대해 정하고 있지 않지만 대법원은 명칭을 불문하고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기준을 집단적이고 통일적으로 설정하기 위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준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고, 학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하고 있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이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강행→노동자들의 반발→법적분쟁 발생'이라는 동일한 형태의 분쟁이 지속적으로 대다수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근기법은 취업규칙의 내용이 단체협약과 법령의 내용에 반할 수 없도록 정해 취업규칙의 내용적 통제를 시도하고 있지만 실제 단체협약으로는 근로조건이나 복무규율의 세부적인 내용을 일일이 정해 놓기 힘든 데다, 취업규칙에 일임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효성이 높지 않다. 특히 근기법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만 노동자 과반수 또는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 변경되는 취업규칙이 불리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취업규칙제도가 타당한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통상 근로관계는 노동관계법령에 따라 특별한 취급을 받지만 여전히 민사상 계약관계다. 계약은 당사자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본질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고, 양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계약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근로계약관계에 있어서만은 사용자가 언제든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근로계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근로조건에 관한 부분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은 근기법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근로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제2조)에도 반한다. 사용자가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 관한 부분까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통해 변경할 수 있다면 대등은커녕 교섭조차도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변경하는 취업규칙이 불리한 경우에만 노동자 과반수 또는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함으로써 불이익한 취업규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혼란이 사업장 내에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을 가능하게 하는 현재의 취업규칙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고 이로 인해 다종다양한 분쟁이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대량의 노동력을 통제해야 하는 현실적인 자본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적어도 근로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유불리를 떠나 모든 취업규칙 변경에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되면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조차도 자신의 근로조건이 변경되는 경우 이에 대한 의사를 표시할 수 있게 되고, 불이익 여부가 문제가 되는 취업규칙 관련 분쟁들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용자의 취업규칙 변경을 용이하게 해 주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인 근로조건 악화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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