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

대상판결/ 대법원 2007두4995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

1. 사건의 경위


가.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미등록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91명은 2005년 4월24일 지역별노동조합 형태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을 설립하고, 같은해 5월3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10조제1항에 따라 노동조합 규약을 첨부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노동부 장관(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했다.

나. 노동부 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은 서울지방노동청장(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2005년 5월9일 이주노조에게 위 노동조합 설립신고서에 대해 (1) 제출되지 아니한 임원의 성명 및 주소, 또한 제출된 임원의 주소 (2) ① 2개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라는 이유로 “조합원이 소속된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과 조합원 수 및 대표자의 성명(노조법 시행규칙 제2조제4호)” ② “소속 조합원들의 취업자격 유무 확인을 위한 조합원 명부(성명·생년월일·국적·외국인등록번호 또는 여권번호 기재)” (3) 임원선거·규약제정 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총회회의록 등 관계서류 등을 2005년 5월31일까지 보완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다. 이주노조는 노조법 제10조제1항에서 기재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임원의 성명 및 주소, 그리고 총회회의록은 제출했으나 위 (2) ①·② 항에 대해서는 현행 노조법상 이를 제출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고, 그 제출 요구 자체가 헌법과 노동관계법, 국제조약에서 보장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평등대우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다.

라. 2005년 6월3일 서울지방노동청장은 보완요구사항 중 위 (2) ①·② 항에 대해서 이행을 거부했다는 절차적 이유와 “이주노조의 임원이 현행법상 취업 및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고, 그 외 소속 조합원의 신분은 주로 불법체류자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 이주노조는 주로 노동조합에의 가입 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주체가 돼 조직된 단체로 봄이 타당하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보완자료 미제출 및 노조 가입 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주된 구성원인 단체는 노동조합법 소정의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는 실체적 이유로 노동조합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마. 이에 이주노조는 2005년 6월14일 서울지방노동청장을 피고로 해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고, 그 반려처분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라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차별하는 행정처분으로서 위법·무효이므로 마땅히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06년 2월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이태종 판사)는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반면, 원고 이주노조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바. 이주노조는 2006년 2월24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2007년 2월1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이 2005년 6월3일 원고 이주노조에 대해 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은 2007년 2월23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고, 대법원은 무려 8년 이상 선고를 끌어오다 지난 6월25일에야 원심판결이 정당하므로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2. 대법원 판결의 의미

이번 대법원 판결은 8년4개월 전 서울고등법원에서 한 판시 내용, 즉 법령의 위임 없는 행정청의 시행규칙으로 근로자의 단결권을 제한할 수 없으며, 체류자격 없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체류자격의 유무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과 단결권 등 노동 3권의 주체성에 대해 달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술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서울지방노동청장이 ‘2개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므로 조합원이 소속된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과 조합원수 및 대표자의 성명’에 관한 서류를 설립신고서에 첨부해 제출하도록 보완을 요구한 것은 구 노조법 시행규칙 제2조제4호에 따른 것이긴 하나, 이 조항 자체가 상위 법령의 위임 없이 규정된 것이어서, 일반 국민에 대해 구속력을 가지는 법규명령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이주노조가 위 보완요구를 이행하지 아니했다는 이유로 설립신고서를 반려할 수는 없다. 위 보완요구의 미이행을 반려처분의 사유 중 하나로 삼은 이 사건 반려처분은 위법하다. 즉 상위 법령의 위임 없는 시행규칙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며 이를 근거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노조법상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하므로,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조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인지 여부나 취업자격(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의 유무에 관계없이 노동3권을 향유한다. 따라서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함에도, 서울지방노동청장이 이와 다른 전제에서 단지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자격 유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대해 이주노조가 그 보완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원고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3. 설립신고증의 교부의무

지난 6월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함으로써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이 2005년 6월3일 이주노조에 대해 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을 취소한다”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취소의 효력은 반려처분을 한 때로 소급한다. 즉 서울지방노동청장이 이주노조에 대해 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의 효력은 2005년 6월3일로 소급해 소멸하게 된다. 2005년 5월9일 서울지방노동청장이 이주노조에게 보완을 요구한 사항 중 법적 근거가 없는 2가지 사항(조합원이 소속된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 등, 조합원 명부)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항(임원의 주소와 성명, 총회회의록)은 당시 이미 이행됐다. 또한 취업자격 없는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노동조합법 제2조제4호 라목(‘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의 노동조합 결격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울지방노동청장은 노조법 제12 2항 후문(“보완된 설립신고서 또는 규약을 접수한 때에는 3일 이내에 신고증을 교부해야 한다”)에 따라 이주노조에게 즉시 설립신고증을 교부해야 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설립신고증의 교부는 행정관청의 재량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 만일 우리 정부가 또 다른 이유(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나 노동허가제 요구 활동 등)를 들어 설립신고증의 교부를 거부한다면 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직권남용이자 인종적 차별이라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4. 나가며

끝으로 판결 당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 논평을 필자의 마무리로 대신하고자 한다. 너무도 공감되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 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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