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취업규칙이 문제다.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고용노동부를 통해 이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까지 준비하고 있다. 노동자와 노조가 반대하더라도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며, 취업규칙 변경절차의 길을 정부 지침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가 5월7일 발표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고 직접 압박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도 노동자와 노조가 반대하면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정해 준 대로 사용자가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예정돼 있다. 바야흐로 이 나라에서 법을 집행해야 할 국가권력과 그 법을 준수해야 할 사용자 자본은 노동자와 노조의 반대에 대해 취업규칙 변경에서 길을 찾고 있다.

2. 법도 아니고 계약도 아니다. 감히 누가 취업규칙을 사업장의 법이라고 부르는가. 그러나 이 나라에서 법원은 오래전부터 법규범이라고 판결해 왔다(대법원 1977.7.26 선고 77다355 판결, 대법원 1977.12.27 선고 77다1378 판결, 대법원 2003.3.14 선고 2002다69631 판결 등). 사업장 질서유지를 위한 통일적인 복무규율과 근로조건에 관한 준칙을 정하는 것이므로 노사 간의 근로관계를 결정하는 객관적인 ‘법규범’으로 일반적인 효력을 갖는다고 법원은 판결해 왔다. 이와 같이 사업장의 ‘법’이므로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그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무시하는 해석이나 사실인정은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 마디로 우리의 법원은 취업규칙을 법이라고 규정짓고서 함부로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해 왔던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 취업규칙은 사업장에서 근로자의 복무규율과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정한 기준 또는 준칙이다. 근로기준법은 “상시 1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각, 휴게시간, 휴일, 휴가 및 교대 근로에 관한 사항, 임금의 산정 방법 및 지급시기, 승급에 관한 사항, 가족수당, 퇴직급여, 최저임금, 식비 및 작업용품 등의 부담, 교육시설 등의 사항에 관해 “취업규칙을 작성해서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93조). 이렇게 법은 사용자에게 취업규칙의 작성 신고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사용자에게 취업규칙이라는 사업장의 법을 제정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이를 위반한 사용자에게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근로기준법 제116조제1항제2호). 분명히 권한이 아닌 의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국가가 과태료를 부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혹시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 무효로” 하고, 이때 “무효로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며(제97조), 이를 두고 취업규칙을 법으로 승인한 것이라고 말하는가. 취업규칙이 ‘법’이라서 그것에 위반해서는 계약은 효력이 없다고 근로기준법은 선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 스스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계약 기준의 효력을 부인해서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 근로기준법 제97조라고 읽으면 될 일이다. 취업규칙은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반해서는 안 되고 (근로기준법 제96조제1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3조제1항),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위반하는 취업규칙에 관해서는 노동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근로기준법 제96조제2항), 그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8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근로기준법 제114조제2호). 이렇게 근로기준법은 어디서도 취업규칙을 법이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다. 근로계약에 미달하는 취업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근로계약이 법은 아니다. 사용자에게 취업규칙 작성 신고의 의무를 부과하고 그러한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이 근로자의 기존 권리보다 상회하면 그에 따라, 그에 미달하면 취업규칙 기준에 따르도록 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이런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을 두고서 법규범이라고 판결해 온 이 나라 법원의 판결들은 근로자를 위한 법을 사용자를 위한 법이라고 잘못 읽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휴가, 기타 취업 장소와 종사 업무,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각, 휴게시간, 교대 근로, 임금 산정방법 및 승급, 가족수당, 퇴직급여 및 최저임금, 식비 및 작업 용품의 부담, 교육시설 등에 관해서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제17조). 근로계약의 내용인 근로조건의 기준에 관해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를 통해서 정해야 한다. 이건 특별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은 오직 두 개의 질서만 존재한다. 권력으로 윽박지르는 국가권력관계의 질서가 아니라면 사적 자치의 질서가 지배한다. 근로계약도 계약인 한 당연히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계약 조건에 관한 합의를 전제로 한다. 그것으로 이 세상에서 근로계약은 정당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이 사용자에게 근로계약 체결시 명시하도록 한 사항들은 근로관계의 기준으로 근로자와 합의해서 정할 사항이다. 만약 이런 사항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근로계약서에 기재하고 말았다면 이는 근로기준법 제17조 위반이고, 사용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게 된다(제114조 제1호). 취업규칙으로 근로조건에 관한 기준을 작성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은 이러한 계약의 질서로서 근로계약의 정당성을 부정하기 위해서 규정된 것이 아니다. 근로계약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러한 계약의 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우 판례는 취업규칙을 법규범이라 선언함으로써 근로계약에 있어서는 이러한 계약의 질서를 부정해 왔다. 근로계약에 의해 정해진 근로조건 기준을 사용자가 취업규칙으로 작성 신고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규정을 법원은 근로계약에 갈음해서 근로조건 기준을 사용자가 취업규칙으로 작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읽어 왔다. 어디 법원뿐이겠는가. 학자들의 논의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나라는 근로자권리를 보장해야 할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근로자권리를 삭감하는 법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 황폐한 대지 위에서 근로자권리를 더욱 황폐하게 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는 취업규칙 변경이 문제되고 있다.

3.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은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할 거라고 알려져 있다. 이미 노동부는 ‘취업규칙 변경절차’에 관한 발제문까지 보도자료와 함께 5월28일 개최하려던 공청회를 앞두고 배포했으니 말이다. 마련할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에 따르지 않아도 사용자가 할 수 있다는 내용일 거라는 사실은 이 나라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언제 발표할 것이냐’는 궁금하지만 ‘어떤 내용일 것이냐’로는 궁금하지 않다. 노동부는 법원 판례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아니라고 판결하거나(대법원 1978.9.12 선고 78다1046 판결, 대법원 1988.5.10 선고 87다카2853 판결),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해 왔던 것을(대법원 1989.5.9 선고 88다카4277 판결 등) 내세우고 있다. 법이 분명히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 과반수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법원은 그에 따라야 한다고 판결해야 마땅했다. 그렇지 않고 근로기준법에 규정하고 있음에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으로 법적용의 예외를 허용한다는 것은 법원이 국회의 입법권을 행사해서 법을 창조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 나라에서 법원의 ‘법 창조’는 사용자를 위해서만 행해진다는 말인가. 그것이 나는 몹시 궁금하다. 법원이 판결해 온 사회통념상 합리성으로 노동부가 준비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살펴보자. 고용노동부가 보기에는 정년연장을 해 주고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니 그 취업규칙 변경은 사회통념으로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거나 불이익해도 과반수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노동부의 사회통념이 참으로 편파적이다. 내년부터 시행될 정년연장법은 60세 이상으로 근로자의 정년을 보장하라고 사용자에게 강제하고, 그 미만으로 정한 사업장의 근로자 정년은 60세 정년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60세 정년은 당연한 근로자의 권리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부가, 기획재정부가 사용자들에게 도입하라고 촉구하는 임금피크제는 65세·70세, 혹은 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법에 따른 60세 정년을 보장해 주겠다며 도입하는 임금피크제다. 도대체 정부가 말하는 사회통념은 사용자들의 통념일 수는 있어도 사회일반인의 통념일 수는 없다. 사실 65세·70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하면서 도입하는 임금피크제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것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임금의 동결이 아닌 임금의 삭감이다. 근로자가 근로계약상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서 65세·70세 이상이 돼도 근무를 한다면 고령자라고 해서 임금을 삭감당해야 할 합리성은 없다. 물론 사업장에 따라 엄청난 근력이 요구되는데 해당 근로자가 고령자인 데다 제대로 체력단련을 해 오지 않아서 그 일을 종전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그 제공하는 근로의 정도에 따라 임금을 감액하자는 사용자의 요구가 합리성이 없다고 매정하게 비난할 일이 아닐 수 있다. 이때는 사회통념으로 판단하면 될 일이겠다. 앞에서 말했다. 법도 계약도 아닌 취업규칙이다. 근로계약의 내용인 근로조건은 근로자가 직접 근로계약으로, 근로자대표가 단체협약 등으로 사용자와 합의로 정하는 것이고 취업규칙은 이렇게 정한 근로조건의 기준을 사용자가 하나의 문서로 작성해서 행정관청에 신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고?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에게 취업규칙 작성신고의 ‘의무’를 규정했지 근로조건 기준을 일방적으로 정할 ‘권한’을 규정하지 않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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