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2016년 최저임금 시간급 1만원, 월급 209만원은 가능할까.

노사관계 일반이 그러하듯이 내년도 최저임금 역시 큰 틀에서 보면 경제상황과 국민여론, 노동운동의 역량과 정치적 조건을 감안한 노자 간의 역학관계를 반영한 정권의 의지와 성격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역대 정권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재임기간 평균으로 YS 8.1%, DJ 9.0%, 노무현 정권 10.6%였다. 기업 프렌들리 MB 정권 때 5.0%로 반토막났다. 실질 최저임금 인상률은 정권의 성격을 더욱 명료하게 보여 준다. YS 3.1%, DJ 5.5%, 노무현 정권 7.7%에서 MB 정권 들어 1.4%로 급락했다.

명목인상률로만 보면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DJ 정권에서 16.6%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 MB 정권에서 2.75%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저수준일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률보다 낮아 실질 최저임금이 최초로 삭감됐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까지 감안하면 적정수준보다 무려 3.96%포인트나 적게 올랐다. 결국 최저임금은 논리와 근거 못지않게 제반 정세를 감안한 정권의 성격과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대폭 바뀌었다. 현장의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노사 양측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공익위원들도 과반이 바뀌었다. 새로 위촉된 공익위원들의 역할도 과거에 비해 매우 적극적인 것 같다. 이는 최저임금위 논의 활성화로 연결된다.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참고지표로 기존 중윗값에 평균값을 추가한 것과 월급-시급 고시 결정, 가구원수별 생계비 추계 등이 대표적 성과다.

2016년 최저임금 심의는 이번주에 그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수준을 결정한다. 얼마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전임 9대 위원들의 마지막 전원회의 발언은 최저임금 결정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잘~ 해 봐라." 몹시 힘들거란 얘기다. 노사가 내놓은 최초 요구안에서도 극명한 입장차를 확인할 수 있다. 시급 1만원과 5천580원 동결. 매년 되풀이되는 현상이고, 노동계가 시급 1만원을 요구한지도 제법되지만 이번엔 과거와 다른 긴장감이 있다. 왜 그런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 이후 이제 최저임금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양대 노총을 비롯한 최저임금연대의 지속적인 국민 최저임금 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실세 장관의 힘은 컸다. 정부도 과거와 달리 최저임금 심의요청서에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향상하고 노동시장 내 격차를 해소해 소득분배 상황이 단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전국 20개 지방자치단체의 생활임금은 시간당 6천500~7천원이다. 올해 상반기 제조부문 시중노임단가는 8천19원이다. 경기침체와 양극화 및 소득분배 악화 속에서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추세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일본·독일은 물론이고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게다가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까지도 소득분배 악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임금주도 성장에 대해 거들고 나섰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철학과 논리, 근거는 무엇일까. 최선의 결과 도출을 위해 몇 가지 검토를 해 보자. 인상률로만 보면 예년 수준, 낮은 두 자릿수와 높은 두 자릿수가 가능하다. 노사공 3자 합의가 바람직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공익위원들이 노사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선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다음으로 선택한 쪽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대안을 가져야 한다. 남는 기대치와 현실의 차이는 시간변수(단계별 목표 달성)와 정책조합으로 해결해야 한다. 도달 목표(임금평균의 50%, 시급 1만원 등)를 단계별(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 5개년 계획 등)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3~5개년을 목표로 해도 두 자릿수 인상은 불가피하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답은 역시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에서 구해야 한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거나 "적정수준의 임금인상 없이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혹은 "미국도 비슷하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아예 노골적으로 기업들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노믹스가 아닌 초이노믹스로 힘찬 출발을 했던 최 부총리의 최저임금 인상론의 배경을 추정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디플레이션 언급에서도 드러나듯이, 기존의 성장정책으로는 백약이 무효라는 인식을 정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경제상황에 대해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뜻한다.

또 하나는 국제적인 정책 흐름의 변화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39.3%가 넘는 최저임금 인상안을 주장했고, 일본의 아베 총리도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영국·독일 등은 임금인상 정책을 내놓았고, ILO·국제부흥개발은행(IBRD)·IMF도 임금인상과 가계소득 증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고 있다.

최저임금 적극 인상안은 최 부총리 취임 직후 내놓은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가 사실상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실패한 데 따른 두 번째 소득주도 성장정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기존 기업소득주도 성장정책은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수익성을 증가시켜 투자를 촉진한다는 측면과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 임금비용을 낮추고 이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높인다는 두 측면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 소득주도 성장정책(=임금주도 성장정책)은 가계소득을 회복시켜 소비지출(내수)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투자를 촉진한다는 측면과 임금인상을 통한 한계기업 퇴출, 산업 및 기업구조 조정과 기술혁신 촉진, 노동생산성 향상의 두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장은 립서비스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근거는 정책조합의 모순과 삼성 등 기업의 정부정책 뭉개기다. 먼저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가계부채 증가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부채주도 성장정책을 여전히 고수하는 것과 노동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정규직 과보호론에 입각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모순된다.

대기업 정규직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조원은 7% 내외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90%는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그리고 최저임금 적용대상 노동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14.5%에 해당한다. 90%는 내버려 두고 7%를 대상으로 되지도 않을 정규직 보호 철폐에 매달리는 것은 빵점짜리 정책이다.

기업의 냉소도 문제다. 당장 한국기업의 대표자 삼성전자는 임금을 동결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책임의식이 지극히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대기업이 적정 납품단가를 보장해 중견·중소기업에게 임금인상 여력을 만들어 주는 정책이 지금보다 훨씬 강화돼야 할 텐데, 경제민주화를 사실상 폐기해 버린 정부의 실행의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유철규, 2014). 제대로 된 고전적인 정책패키지는 전쟁을 막은 미국의 뉴딜정책이나 전쟁 후 일본경제에서 보이는 것처럼 재벌 해체 등 경제민주화와 경제력 집중완화, 노동운동의 활성화 보장이 함께 가는 것이다.

어쨌든 최근 정부 당국자의 최저임금 인상 발언 실종으로 우려는 거의 현실이 되고 있다. 하여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만이 이를 돌파할 수 있기에 마지막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의 전도사인 IMF의 올해 6월15일 보고서로 마무리하자.

소득불균형의 원인 및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낙수효과에서 말하는 부의 분배는 틀린 논리다. 낙수효과를 위한 경제정책이 성장을 가로막는다. 150여개국 사례분석 결과 상위 20% 계층의 소득 1%포인트 증가는 이후 5년간 연평균 성장률 0.08% 포인트를 감소시킨다. 반대로 하위 20% 계층의 경우 0.38%포인트 증가시킨다. 소득불평등은 경제성장을 가로막으며, 극심한 불평등은 세계 경제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

또 지니계수를 13포인트 이하로 떨어뜨리는 재분배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한국은 재분배로 인한 지니계수 하락 효과가 4포인트 이하다. 우리나라는 재분배를 지금보다 3배 이상 늘리더라도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고용불안·임금불안·미래불안 속에서 소비지출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의 소비성향은 104%, 상위 20%는 62%다. 평균은 73%로 역대 최저치다. 답은 자명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현 시기 가장 올바르고 확실한 정책대안이다.

끝으로 지금까지 최저임금 결정시 참고했던 영향률과 미만율의 문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영향률이 클수록 재분배 효과는 클 것이다. 높은 미만율은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조합으로 해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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