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직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장관이 메이저급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쪽 변호인으로 돌아왔다. 이상수(69·사진) 법무법인 우성 대표변호사다. 그는 현재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IBK기업은행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쪽 변론을 맡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금융업계 노사의 이목이 집중된 명실상부한 ‘통상임금 빅3’ 소송이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이 나온 지 1년6개월여가 지났지만 통상임금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고정적·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에 노동계는 쾌재를 불렀지만, 정작 이 판결로 ‘재미’를 본 노조는 많지 않다.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이른바 재직자 요건이나 지급제외자 규정을 명시한 경우 통상임금 판단지표 중 하나인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1심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도 지급제외자 규정 때문이었다.

이상수 변호사는 “현대차 사건에서 1심 법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고정성 논리를 수용하는 데 급급해 지급제외자 조항이 유효한지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형식적·기계적으로 판결했다”며 “항소심에서 현대차 지급제외자 규정의 위법성을 밝혀 심리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자신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우성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두 손에 창과 방패 함께 들었다”

▲ <정기훈 기자>

이 변호사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노동·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197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광주지법 판사로 임용돼 근무하다 82년 ‘횃불회 사건’으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판사복을 벗은 일이 계기가 됐다. 88년 재야 추천을 받아 정치권에 진출하기까지 부천경찰서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 구로동맹파업 등 굵직한 시국사건과 노동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87년 8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석규 대우조선 노동자 사건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동료 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노동부 장관을 지내고 변호사의 길로 되돌아온 지 6년이 지났다. 그동안 산재사망 노동자 유족 위로금 청구사건을 주로 맡았는데, 최근에는 통상임금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현대중공업·기업은행 사건에서 노조쪽 대리인을 맡고 있다. 이 중 현대차·현대중 사건의 사용자쪽 변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맡고 있다. 현대차 사건은 1심에서 노조가 졌다. 현대중은 그 반대다. 두 손에 창과 방패를 함께 들고 항소심에 나선 셈이다.”

이 변호사의 말대로 현대차지부는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사실상 패소했고, 현대중공업노조는 이겼다. 두 대공장 노조의 희비가 엇갈린 이유는 단순했다. 현대차 사건에서 법원은 “근무일수 충족 등 일정한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회사에 유리하게 판결했다. 반면 현대중 사건에서 법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른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이 인정돼 정기상여금 800%는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이 대목에서 이 변호사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통상임금 사건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베껴 넣기’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대차 상여금 지급제외 규정은 근기법 위반”

“통상임금 제도의 취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통상임금은 노동자의 생활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장시간 노동을 제어하는 것이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로수당 등을 계산할 때 가산임금의 기준이 된다. 가산율을 적용해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늘리고, 이를 통해 사용자가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상임금 제도의 근본 취지를 배제한 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문구에 집착할 경우 노동현장의 실상과 거리가 먼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얘기다.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차의 지급제외자 규정은 "15일 미만 근로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변호사는 해당 규정이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5조 ‘제재 규정의 제한’에 위배돼 무효라고 주장했다.

근기법 95조는 “취업규칙에서 근로자에 대해 감급(減給)의 제재를 정할 경우에 그 감액은 1회의 금액이 평균임금 1일분의 2분의 1을, 총액이 1임금지급기의 임금총액의 10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노동자가 일을 게을리하거나 회사 규율을 어겨 임금을 깎는 제재를 하더라도 생계보호를 위해 감급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행법규의 허용범위를 뛰어넘은 현대차의 지급제외자 규정은 무효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이어 “우리나라 판례와 노동부 회시, 외국의 학설과 판례 역시 근기법 95조에 반하는 취업규칙 등을 무효로 보고 있다”며 “현대차 취업규칙의 일환인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끼워 넣은 지급제외자 규정은 노사가 합의한 단협과 상충하고, 무엇보다 가산임금을 통한 장시간 노동 제어라는 통상임금 본연의 취지에도 역행한다”고 강조했다.

▲ <정기훈 기자>

“비정규직 문제 해결 첩경은 차별해소”

노동행정 일선에서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까지 멀어지기는 어려운 법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대한 전임 장관의 생각은 어떨까.

“노사정 대화가 실종됐다.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분배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퇴보했다. 이런 맥락에서 노조활동도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정년연장 시대에 부합하고, 일자리 나누기 효과도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적극적인 설득으로 노조의 이해를 구하고, 그 대신 다른 부분에서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협상의 기본 아닌가.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상생도 타협도 불가능하다.”

이 변호사가 장관 재임 시절이던 2007년 7월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됐다. 법 시행과 동시에 홈에버(현 홈플러스테스코)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가 터졌고, 노동자들은 매장 점거농성을 벌이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노동시장의 고용유연성을 고려하되, 노동자 간 평등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본다. 기업이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같은 공장 안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이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는데도 지금까지 시정된 것이 없지 않나. 정부와 법원의 잘못이다.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을 상대로 과감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이 변호사는 정치권의 각성도 주문했다. 특히 야당의 소극적인 태도를 질타했다. 13·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정치권이야말로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을 휘두르는 재벌대기업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며 “약자를 위한다는 야당이 비정규직이나 청년 문제에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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