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미 영화평론가

영화 <소수의견>은 손아름 작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설 <소수의견>은 용산참사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실화가 아니다. 소설은 실화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면서, ‘21세기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손아람 작가의 시나리오로 김성제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소수의견>도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며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다만 배경은 ‘북아현동 13구역, 뉴타운 건설을 위한 재개발 철거현장’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으로 바뀌었다.

철거현장에서 두 젊은이가 죽다

영화는 철거용역들이 쫙 깔린 철거현장에 중학생이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철거반대 투쟁을 하는 아버지 박재호(이경영)를 만나기 위해서다. 화염병과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진압경찰의 물대포와 취재진들의 카메라가 즐비한 그곳에서 사고가 났다는 교신이 들려온다. 시위대를 연행하는 경찰차 사이로, 시신을 실은 들것이 보인다. 박재호의 아들과 경찰 한 명이 사망했다. 박재호가 현장에서 체포된다. 경찰을 죽인 혐의다.

격렬한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가고, 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이 등장한다. 그는 지방대 출신 국선전문 변호사로, 박재호 사건의 국선변호를 맡았다. 박재호는 윤진원에게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아들 박시우를 죽이려는 경찰을 가격한 것으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박시우를 죽인 사람은 경찰이 아닌 철거용역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박시우를 죽였다는 철거깡패의 자백도 받아 놓았다. 철거현장에서 두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사건은, 철거반대 투쟁을 벌이던 철거민이 공무를 집행하던 경찰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으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윤진원은 처음에 박재호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 의혹을 느낀다. 두 사람이나 죽은 현장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거기에 당시 멀찍이서 현장을 봤던 공수경 기자(김옥빈)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경찰의 진압작전이 계속됐다며,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말해 준다. 공수경과 함께 야당 의원을 만난 윤진원은 철거 결정 과정에 시행사의 로비가 있었다는 정보를 듣는다. 윤진원은 사건송치자료를 열람하지 못하게 막은 담당 검사 홍재덕이 담당 판사와 친구라는 것을 알고 경악한다. 그는 국선변호사를 사임하고, 이혼전문 변호사인 선배 장대석(유해진)과 함께 경찰진압 현장에서 박시우가 죽은 사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청구금액은 100원이다. 돈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에서 국가에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경찰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박재호 사건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서북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사건이 윤진원의 적극적인 변호로 세간의 관심을 받자, 대형 로펌은 시민단체를 통해 박재호를 설득해 윤진원으로부터 사건을 가로챈다. 설상가상으로 윤진원은 추모집회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빠진다. 일개 국선변호사 윤진원에게 자존심을 구긴 검찰의 농간에 의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사건을 맡게 된 윤진원은 국민참여재판에 내세울 증거와 증인들을 확보해 나간다. 그러나 검찰은 윤진원이 내세우는 증인의 진실성을 공격하는 한편 압수수색을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압수해 간다. 또한 국민참여재판 전문검사를 내세워 부드러운 말투와 제스처로 배심원들의 감성을 자극해 나간다(여기서 사학재단의 딸이자, 판사 출신 국회의원인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윤진원과 검찰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과정을 보여 주며, 법이라는 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법이 반드시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며, 법의 작동방식에는 많은 제한과 모순이 존재함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법정이라는 무대와 규칙을 활용해 최대한 진실에 근접해 나가려는 노력이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을 팽팽한 긴장 속에 알려 준다.

재판 막바지에 이르러 검사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죽은 의경의 아버지가 “내 아들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거기에 없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리고 의경의 아버지가 박재호와 함께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우는 순간은 진실과 화해의 순간이지만, 영화는 이러한 따뜻한 감성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냉철한 결말과 씁쓸한 에필로그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잘못된 권력을 비호하면서, 그것을 애국이라 여기는 이의 마지막 일갈은 얼마나 오싹한가.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소수의견>은 철거현장에서 경찰과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을 통해 철거와 재개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이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법정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보여 준다. 즉 잘 짜인 서사를 통해 철거에 관한 진실을 폭로하는 사회극이자, 한편의 디테일한 법정영화로 훌륭한 만듦새를 보여 준다.

“사건은 대한민국 법률 및 학설과 판례를 다룬다”는 말로 시작된 원작소설이 그러하듯이 영화는 수많은 실제사건과 판례로부터 추출한 사례들을 영화에 압축해 낸다. 국선변호·대형로펌·공소시효·정당방위·수사자료열람금지·증인매수·양형거래·국민참여재판·국가배상 소송·전관예우·동업자의식 등 무수한 법적인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진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 속 수많은 용어들이 지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자료 열람을 막고 사건현장을 치워 버린 것이나, 청와대로부터 흉악범죄 사건을 키우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은 실제 용산참사 사건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가배상 소송에서 배상금으로 100원을 청구한 것 역시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이 조선일보에 10원을 청구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영장에도 없는 물건을 압수해 간 것이나, 숨겨진 녹음기에 담긴 검사의 거짓말이 사건을 뒤집은 것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영화는 수많은 현실의 사건들을 녹여 내며,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처럼 완성도 높은 영화가 배급을 맡았던 CJ E&M에 의해 2년간 개봉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이재현 회장의 재판과 그에 따른 정권 눈치보기 때문이라는 의혹까지 포함해 이보다 한국 사회 문제를 총체적으로 집약해 낸 영화도 보기 힘들 것이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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