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금도 투쟁현장에 가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구호가 나온다. 일요일은 쉬게 해 달라고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45년 전 전태일이 요구하던 것과 똑같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같은 소외된 노동자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 그게 전태일 정신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45주기 되는 해다. 전태일재단은 ‘세상의 모든 전태일, 하나 되는 불씨’를 슬로건으로 전태일 열사 45주기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 사무실에서 이수호(66·사진) 이사장을 만났다. 올해 3월 취임한 이 이사장은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사장과 손잡고(손해배상·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공동대표,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도 맡고 있다.

- 올해 3월 전태일재단 10대 이사장에 취임했는데.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전태일재단의 중심이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조헌정 전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조 전 이사장이 노동운동 출신이 재단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주요 활동가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도 재단의 의미를 살리고 활동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내게 이사장직을 권유했다.”

“전태일재단 정체성 세우는 게 시급했다”

나이도 있고 맡은 직책도 많아 일을 줄이려던 때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광주민중항쟁 이후 <전태일 평전>을 만난 것”이라며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전태일을 늘 마음에 담고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이소선 어머니와의 인연도 남달랐다. 그는 “이소선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내 어머니처럼 모셨다”며 “돌아가신 뒤 책임을 맡게 된 상황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 중심이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방문을 둘러싼 내홍을 말하는 건가.

“일부는 그렇다. 내부에서 전태일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다양하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일방적인 재단 방문 요청을 둘러싸고 입장차가 있었다. 극히 일부였지만 ‘전태일은 모든 사람의 전태일인데 박 후보의 방문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이 어땠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대한문 앞에서 빈소를 차려 놓고 농성을 하던 때다.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을 죽게 한 자의 딸이 재단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막았다. 박 후보는 결국 전태일 동상에 헌화만 했다. 이 일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재단이 어디까지 폭을 넓혀야 하는가를 두고 말이다.”

전태일을 노동운동 열사로만 볼 것이냐, 인간해방의 폭넓은 범주로 볼 것이냐를 두고 온도차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재단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문제와 맞닿은 사안이었다.

- 어떻게 정리가 됐나.

“(이런 혼란은) 이소선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정리가 됐는데 돌아가신 뒤에 그러질 못했다. 지금은 정리가 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이 노동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 사회변혁을 지향하고 나라와 사회를 바로 세우는 데에도 함께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태일을 바라볼 때 선택적으로 볼 게 아니라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을 중심으로 하되 사회를 바꾸겠다는 정신 역시 중요하다.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가야 한다.”

“지금은 전태일이란 이름이 호명될 때”

- 올해 전태일 열사 산화 45주기를 맞았다. 어떤 의미가 있나.

“전태일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를 포함한 재단 활동가 4명은 매일 아침 한정된 역량을 어디에 집중할지 점검한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비롯한 많은 기념사업회가 있다. 열사와 그 가족들이 잊혀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사업을 찾고 있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에 참여하고 있고, 이주노동희망센터와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그림자 같은 노동자들 곁에서 실천을 통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는 이사장 취임 직전에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을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전태일이 분신하며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는 요구가 45년이나 지난 오늘에도 구호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지금 시대에도 전태일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태일 열사 45주기 기념행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참여의 폭을 넓히려고 한다. 전태일이란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 계속 호명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전태일이 필요한 시기니까. 의외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전태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꽤 있더라. 9~10월 연극·뮤지컬·창작판소리·합창이 준비된다. 평화시장과 전태일다리를 중심으로 당시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같이 한판 잔치도 계획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소선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이소선 어머니를 통해 전태일 정신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며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의 뒤를 잇겠다고 약속했고 한평생 전태일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그런 만큼 내년 이소선 어머니 5주기를 앞두고 이소선 정신 조명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그 이상의 이소선 정신을 살려 내고 그것을 중심으로 폭넓은 발전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추방당한 이주노동자 활동 지원할 것”

- 지난해 8월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사장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

▲ <정기훈 기자>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빚이 있다. 차별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이주노조를 만들었다고 잘리고 추방당했다. 추방당한 이주노동자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자는 의미에서 2011년 이주노동희망센터가 출범했다.”

이주노동희망센터는 아동노동에 시달리거나 학교시설이 부족해 배우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해 희망학교를 짓고 있다. 2011년 방글라데시와 2013년 네팔에 희망학교를 세웠다. 학교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마을과 활동가들이 책임 있게 운영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올해는 미얀마에 세 번째 희망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는데, 최근 네팔이 지진참사를 겪자 건립지를 네팔로 변경했다. 강제추방이나 계약만료로 귀국한 이주노동자 활동도 지원한다.

필리핀에서는 이주노동자 권리 교육, 네팔에서는 예비이주노동자를 위한 한국어교실, 방글라데시에서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공부방을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자녀들을 돕는 활동을 한다. 이주노동자 건강검진과 미등록이주아동 실태조사,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노동계의 도움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네팔 지진참사 돕기에 적극 참여해 달라”

- 이주노동희망센터가 네팔 학교와 어린이 돕기 후원모금을 하고 있는데.

“네팔 지진참사를 돕기 위해 급하게 모금활동을 벌였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보태 대략 2천만원 정도 모았다. 이달 16~18일 조계사에서 바자회를 열어 700만원가량 모았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 보내 주기도 했다. 노동계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과 산별조직, 구호단체,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네팔 지진참사 한국연대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한국연대위원회는 24일 간담회를 열고 학교 건설을 포함한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노총은 산별조직별로 네팔 학교와 어린이를 돕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방침이다. 이수호 이사장은 “양대 노총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맞서 총파업을 내걸고 치열하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보면서 국제연대를 통해 아시아 노동자들끼리 손을 잡는 것도 중요한 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5일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에 계류된 지 8년 만이다. 이 이사장은 26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반갑다”며 “당사자들과 노동운동 동지들이 끊임없이 싸워서 쟁취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 판결로 모든 게 다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투쟁과 연대로 권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손잡고를 통해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

“손배·가압류는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행위다. 시민사회가 그 부당성을 알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손잡고를 발족했다. 손잡고는 지금까지 14억원을 모아 생계 위협을 받는 노동자를 지원했다. 또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4월에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8월22일에는 제1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가 열린다.”

“노조 원칙 지키는 전교조가 자랑스럽다”

이수호 이사장은 전교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 옛 민주노동당 혁신재창당위원장·최고위원을 지냈다. 그는 전교조와 진보정치, 민주노조운동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었다.

- 헌법재판소의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제2조 합헌 결정과 대법원의 법외노조통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파기환송에 따라 전교조가 풍전등화다.

“서울고법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정부는 곧바로 법외노조에 따른 전임자 해지 등 후속조치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발가벗긴 채 들판에서 싸워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노조의 최소한의 기본원칙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후배들이 그런 노조의 원칙과 본령을 지켜 나가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격렬히 싸워야 승리도 안을 수 있다. 애매하면 안 된다. 결판을 내야 한다.”

-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 멤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경종을 울릴 정치세력이 필요했다. 진보정당과 노동자 중심 진보정치운동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에도 공감했다. 그래서 노동자 일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당시 그 이상은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주노동희망센터 정관에도 정치활동을 못하게 돼 있고, 2012년 교육감 재선거에서 낙선한 뒤 현실정치나 공직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함께하지 않고 있다.

다만 국민모임이 4월 재보선에서 실패했지만 정의당·노동당·노동정치연대와 통합노력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들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진보정치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 진보교육감 1년을 평가한다면.

“교육은 그 자체로 보수적이다. 백년지대계라고 할 정도가 아닌가. 우리 사회가 진보로 진화해 나가는 데 있어 복지가 중요하다. 현재 진보교육감들이 교육복지를 위한 정책을 느리지만 올바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안별로 대응하는 것은 좋지 않다.”

“박근혜 정권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 메르스 사태가 1년 전 세월호 참사와 닮았다는 지적이 많은데.

“공교롭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4월16일은 내 생일이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 참담하고 아팠다.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저항세력을 막으려는 박근혜 정권의 힘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메르스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 민주노총이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민주화운동과 궤를 같이해 온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세계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국민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의 왜곡과 탄압이 그렇게 만든 측면이 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힘들어지면 국민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설득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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