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변죽만 울리다 깃털만 날리고 끝났다.' 최근 경남기업 특혜대출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검찰은 지난 22일 시중은행들에게 경남기업에 대한 대출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김진수 전 금감원 부원장보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조영제 전 금감원 부원장과 최수현 전 금감원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이상한 결론이다. 일개 금감원 기업금융개선국장에 불과했던 김 전 부원장보가 독단적으로 은행 임원들을 닥달해 6천억원이 넘는 돈을 경남기업에 대출하게 만들었다? 국장급 단독작품이라고 보기엔 그 규모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이다.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는 메르스 여파에 묻혀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이지만, 최근 엉뚱한 곳에서 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한국금융연수원이다. 차기 금융연수원장에 유력하게 거론되던 조영제 전 부원장이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실제 선임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오전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만난 서용석(49·사진) 금융노조 금융연수원지부 위원장은 "설마 설마했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게 생겼다"며 "법적 책임이 없다고 도의적 책임까지 없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관치 구설, 대출 압력 논란에도 연수원장 '유력'

서 위원장에 따르면 올해 4월25일 임기가 만료된 이장영 원장 후임으로 조 전 부원장이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 3월부터였다. 그러다 4월초 조 전 부원장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들리면서 연수원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문제있는 사람이 왜'라는 수근거림이 이어졌다. 조 전 부원장은 지난 2013년 이장호 BS금융지주회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해 물러나게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치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예전부터 '관치'로 여러번 구설에 올랐던 사람이 차기 원장에 거론되니까 걱정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고 (조 전 부원장이)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한숨을 돌렸죠.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이 도덕·정직·신뢰가 생명인 우리 기관에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서 위원장은 곧바로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정정했다. 6월 들어 조 전 부원장이 '버린 카드'가 아니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곧이어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서 위원장은 지금의 분위기라면 조 전 부원장의 선임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기 연수원장 선임이 이렇다할 이유없이 3개월 째 미뤄지고 있는 것도 조 전 부원장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단법인인 금융연수원은 국내 시중·특수·지방은행 등 20개 기관이 사원기관으로 가입돼 있다. 금융연수원장은 사원기관 멤버인 은행장들이 사원총회를 열어 선임한다. 아직 사원총회 일정이 잡히진 않았지만 언제 불시에 총회가 잡힐 지 모른다고 했다.

"은행장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할 말을 해야 합니다. 경남기업 불법대출로 피해입은 은행이 한 두 군데 입니까. 은행권의 자존심과 정의가 달린 사안인 거죠. 용기있는 은행장들이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금융연수원 3년간 암흑기 될 수도…"

서 위원장은 금융연수원 내부 기강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은행원들의 승진과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국가공인자격이나 자체자격제도를 운용하는 만큼, 금융연수원 직원들에게는 여타 금융기관 못지 않은 도덕성이 첫 번째 덕목으로 요구된다.

"직원들에게는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수장이 되면 내부적으로도 령(令)이 서겠습니까."

서 위원장은 지난 4월말 사원총회 의장인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앞으로 이 같은 우려를 담은 서신을 보낸 바 있다. 연수원장 선임에 대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는 요청도 담았다.

서 위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금융노조와 총력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전 부원장이 선임된다면 앞으로 3년간 연수원은 암흑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전체 금융권이 합심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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