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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인 듯 아닌 듯? 법원인 듯 아닌 듯?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최근 불법파견에 관한 소송에서 사용자들이 계속 강조하는 판결이 있다. 바로 2015년 2월26일 선고된 KTX 승무원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묵시적 근로계약을 인정한 판결(서울고법 2010나90816)과 묵시적 근로계약뿐 아니라 근로자 파견까지 부정한 판결(서울고법 2011나78974)이 있었는데, 대법원은 전자의 판결은 파기환송(대법원 2011다78316)을 하고 후자의 판결은 상고 기각(대법원 2012다96922)을 했다. 같은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판결과 남해화학 사건을 애써 감추려는 듯이 사용자들은 KTX 판결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위 KTX 판결은 판결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문이니 분명 판결문일 텐데, 왠지 판결문 같지가 않다. 바로 '이유'가 없어서 그렇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판결문을 “법원이 판결을 내린 사실, 이유 및 판결 주문 따위를 적은 문서”라고 명시하고 있고, 민사소송법은 “판결서의 이유에는 주문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로 이유를 쓰라고 돼 있다. 즉 이유가 없는 판결문은 원칙적으로 판결문이 아닌 것이다. 상당한 이유가 없는 판결문은 그저 선언에 불과하다.

대법원은 올해 2월26일 3건(KTX 판결을 2건으로 보면 4건)의 판결을 선고하면서 근로자 파견에 관한 일반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고 장황하게 설명한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그런데 정작 KTX 판결(대법원 2012다96922 판결임. 대법원 2011다78316 판결은 근로자 파견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음)을 보면 장황하게 설명한 근로자 파견의 일반법리에 근거한 별다른 추가적인 판단도 없이 묵시적 근로계약도 아니고 나아가 근로자 파견도 아니라는 식으로만 판단했다. 애당초 서울고법(2011나78974 판결)이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묵시적 근로계약도 아니고 근로자 파견도 아니다”는 식으로 쓴 것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장황하게 근로자 파견의 일반법리를 내세운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불행히도 이런 '판결문인 듯 아닌 듯한' 판결이 너무 많다. 2013년 12월 선고돼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 뜨거운 감자인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고정성 개념을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아마도 대법관들이 평생 통상임금이라는 것을 고민할 필요없이 살아와서 그렇게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재직자 조건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3인의 대법관이 상당히 격렬하게(?) 반대할 정도로 그 법률적 근거가 없는 신의칙은 하급심 판사들조차 “어떻게 재판하라는 것인지 답답하다. 법리라고 볼 수 없다”고 한탄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변경되지 않고 있는 “정리해고 반대파업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 역시 소위 낙수효과에 근거해 “경영권과 노동 3권이 충돌하는 경우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정치적 선언을 한 바 있는데, 이 또한 '이유 없는 판결'이다. 이유를 기재하지 않는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이 전체 대법원 사건(민사행정) 중 60~70%를 차지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유 없는 판결의 문제는 심각하다. 대법원 판결이 이럴진대 하급심 판결은 불문가지다.

노동사건의 경우 유독 위와 같은 사실상 이유 없는 판결이 많다. 노동사건이 (사용자들의 회피행위로)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에 비해 민사적인 마인드 혹은 사용자 편향적 관점에 사로잡혀 있는 법관들이 결론을 정해 놓고 이유를 찾다 보니 끝내 그럴 만한 이유를 쓰지 못하는 것 같다.

KTX 판결은 도급이라는 민사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정리해고 반대파업이 불법이라는 판결은 (법률적 관점이 아닌) 사용자 편향적 관점에서 그냥 선언해 버린 것이다. 통상임금 판결은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나섰다가 근거도 없고 현실과도 맞지 않는 기이한 법리로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판결문인 듯 아닌 듯한' 판결이 계속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오고 있다는 점이다. 판결문인 듯 아닌 듯한 판결을 선고하는 법원은 결국 스스로를 '법원인 듯 아닌 듯한' 처지로 전락시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태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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