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제조업이 위기라는 얘기에 공감합니다. 제조업이 성장하려면 정부는 토양을 만들고, 사업주는 기술혁신에 몰두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생산성을 높여야죠. 마치 톱니바퀴를 굴리는 것처럼 노·사·정이 서로 융합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재계는 노동시장만 개혁하면 다 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어요. 노동자를 옥죄는 방식의 경제성장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제조산업 몰락만 가속화할 겁니다.”

김만재(50·사진)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김 위원장은 요즘 시쳇말로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에 꽂혀 있다. 정부는 '마이웨이'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7일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8월께 발표하는 2차 추진방안에는 완화된 일반해고 절차·기준을 담겠다고 예고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4월부터 연맹 산하 지역본부를 순회하며 동분서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노총 총파업 찬반투표 참여와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동투쟁본부가 주최하는 7·4 제조노동자대회 참석을 독려 중이다. 17~18일에는 양대 노총 제조공투본 소속 산별 위원장들과 함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LG화학 청주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달 20일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95.3%의 찬성률로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1년 뒤 (대의원들에게) 재신임을 받겠다”는 내용의 폭탄발언을 했다. 노동계에서 중간평가 형식의 재신임투표를 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매일노동뉴스>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연맹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노동자가 불안해지면 결국 사회가 불안해진다”며 “불안한 노동시장을 만들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반드시 막아 내겠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제조산업 몰락 가속화하는 일”

- 지역순회 중인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연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단위노조 위원장들은 (정부가) 해도 너무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취업규칙 변경은 노사가 결정할 문제인데 정부가 으름장을 놓으면서 노사관계를 경색시키고 있다. 정부와 재계가 한편이 돼 노동자를 옥죄는 격이다. 합법적인 투쟁으로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막아 내자고 말하고 있다.”

- 노동부가 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던 노동시장 개편 의제를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정부는 일반해고 요건이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를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은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나라다. 이미 근로기준법상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마음껏 할 수 있지 않나. 지난해 연맹 산하 많은 단위노조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글로벌기업인 롤스로이스마린코리아는 생산라인을 통째로 외주업체에 넘겼다. 일진전기는 사업부 전체를 없앴다. 지금도 해고가 이렇게 쉬운데 완화해서 어쩌자는 건가. 기업에 해고면허를 주겠다는 말인가. 노동부가 내놓은 정책은 일자리를 없애는 방안이다.”

-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체협약으로 정년을 60세로 정한 사업장에서도 정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맹 산하 단위노조 중에도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사업장이 있다. 그런데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에도 청년고용이 전혀 늘지 않았다. 그동안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정부와 학계에 줄기차게 요구했다. 어느 누구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청년들은 대부분 인턴 또는 비정규직으로 금융권이나 기업체에 입사한다. 제조업종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업종에 관계없이 청년들이 질 낮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상황이다. 임금피크제가 문제가 아니다.”

- 노동계가 노동시장 개편에 반대하는 이유가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 않다. 고용불안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고용불안이 더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의 목표는 제조업종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이들의 임금이 높다고 주장한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낮은 시급으로 인해 연간 3천시간(주당 55~57시간) 넘게 일한다. 연장근로를 해서 임금을 벌충하는 실정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문화생활을 포기하면서 일만 한다.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봐도 위험한 시도다. 제조업이 상당히 어려운 시기다. 철강·조선 할 것 없이 제조업 전체의 위기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고, 기업은 기술혁신을 통해 중국을 따돌려야 한다. 제조업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일 뿐 아니라 국부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경영계는 당장 어렵다고 노동자를 쥐어짠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는 고용불안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 제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멀리 봐야 한다. 노동계는 생산성을 높이고, 중소업체는 설비와 기술혁신에 투자해야 한다. 노사정이 힘을 모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나아가야 한다. 해고는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으로 노동시장을 개악하면 제조업에 미래는 없다. 재계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영을 할 때가 됐다.”

“한국노총 최대 산별로서 역할 다할 것”

- 제조공투본이 7월4일 제조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데.


“단위노조에서 한국노총 총파업 찬반투표를 결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1천800만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경제상황이 어렵고, 노사관계가 좋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조공투본 역시 노동현장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 제조공투본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벌이나.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막는 투쟁을 넘어 정부 산업정책에 관여할 것이다. 제조혁신위원회에는 정부·사용자·전문가그룹은 참여하는데 노동계는 참여하지 못한다. 아예 배제했다. 공투본에서 제조산업 발전방안을 연구해 정부와 경영계에 요구할 것이다. 내년 총선에도 개입할 생각이다. 반노동 정책을 밀어붙인 정당을 심판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융합형 신제조업을 창출하고 제조혁신 기반을 고도화하는 것을 목표로 제조혁신위를 출범시켰다. 공동위원장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다. 산·학·연·관 전문가 26명으로 구성돼 있다.

- SK하이닉스 노사가 임금인상분 일부와 회사 기여분을 모아 협력사에 지원하는 임금공유제를 도입했다. 어떻게 보나.

“노조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정부가 원·하청 불공정거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니 노사가 나선 것이다. 원·하청 관계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기구다. 노사정위 자동차부품업종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원·하청 관계 정상화를 요구했다. 성과 없이 끝났다. 정부는 SK하이닉스가 임금공유제를 도입한 것을 계기로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를 손봐야 한다. SK하이닉스 사례를 노동시장 개혁의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임금인상분 10%와 회사 기여분 10%를 협력사에 지원하는 상생협력 임금공유 프로그램 협약을 체결했다. 노조와 회사는 임금인상분의 10%씩 협력사에 지원한다.

- 지난달 재선에 성공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의 신뢰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1년 뒤 재신임을 받겠다고 공약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노동운동을 하겠다. 그게 내 노동운동 철학이다. 한국노총의 최대 산별노조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다.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반드시 막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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