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공주가 나라님 자리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내심 기대가 컸다. 전임자가 워낙 죽을 쑤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닌 상태에서 그보다는 잘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큰 장점으로 작용하리라 본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공주가 창조경제를 들고 나오자 속으로 ‘어라! 제법인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름대로 시대 흐름을 정확히 짚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주는 경제 활성화에 목을 걸면서 시도 때도 없이 창조경제를 외쳤다. 그런 공주 앞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확산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공주의 찌푸린 인상이 떠오른다. “이 마당에 왜 이런 일들이!” 공주는 그런 일쯤은 담당 부서에서 알아서 처리하고 자신은 오직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고 싶어 한 듯싶다. 그래서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6일이 지나서야 담당 장관의 대면보고를 받았고, 메르스 공포로 온 국민의 얼굴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상황에서도 12번째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여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안타깝게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주의 뜨거운 열정에 감동받은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수 국민의 눈에 공주의 행보는 무언가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국민이 무식한 탓에 뭘 잘 몰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공주의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어 그런 것일까.

공주가 집요하리만큼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정말 제대로 알고나 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그동안 우리가 익숙해 있던 경제는 기본적으로 돈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경영철학·전략·시스템 모두 돈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포괄적 의미에서 ‘돈 중심 경제’라고 표현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같은 돈 중심 경제를 극한으로 몰고 간 경우다.

창조경제의 필수요소는 창조력 발산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작업자가 자발적 열정을 갖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자는 자신이 기업활동의 목적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고 활동의 중심에 있어야 하며 작업과 관련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거꾸로 작업자가 그 무엇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느끼고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해 있는 데다 아무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 자발적 열정을 갖고 있다면 몰입을 기대하기 힘들다. 가령 디자이너가 기획 과정에서 완전 소외된 채 주어진 결정에만 따른다면 제대로 작업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돈 중심 경제에서 기업은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며 구성원은 그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더불어 돈의 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이 움직인다. 제조공장에서 가장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값비싼 기계장치다. 권력 또한 돈으로부터 나온다. 최고의결기관으로 1주 1표 원칙에 입각해 운영되는 주주총회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처럼 원론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돈 중심 경제는 창조경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돈 중심 경제는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이다. 다시 말해 돈 중심 경제는 창조경제의 적이다. 공주가 창조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모든 기회를 활용해 돈 중심 경제를 공격해야 했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확산은 그럴 기회를 제공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요인을 추적하면 하나같이 생명은 안중에 없고 오직 돈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추악한 몰골이 떠오른다. 참사의 한 요인이었던 수명이 다 된 중고선박을 구입해 과도하게 운항한 것이나 규정 이상으로 화물을 적재한 것 모두 돈에 대한 탐욕이 빚어낸 현상이었다. 수백 명 학생들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해 놓고 자기 몸만 쏙 빠져나온 선장의 첫 행동도 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는 것이었다.

메르스 확산 배경에도 철저한 돈 중심 논리가 작동했다. 메르스 확산의 허브(?) 기능을 한 삼성서울병원은 음압병실조차 갖추고 있지 않을 정도로 공중보건과 철저히 거리를 둔 채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공주가 진정으로 창조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국민 복리를 증진시킬 의지가 있다면 이렇게 외쳤어야 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이 돈 중심 경제의 실상입니다.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돈 중심 경제에 갇혀 허우적거릴 것입니까. 서둘러 빠져나와야 합니다!”

현실은 선무당 사람 잡는 꼴이다. 나라가 창피할 정도로 수준 이하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 진보개혁 성향 정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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