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한 달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21일 현재까지 메르스 환자는 169명이다. 격리자는 매일 4천명에서 5천명(해제자 제외)을 오르내린다. 정부가 초기방역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의료노동자들은 최일선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이들은 "한 달 전에도 지금도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이수진(46·사진) 전국의료산업노련 위원장을 만났다. 의료산업노련에는 세브란스병원·인하대병원 같은 대형 민간병원 노조들이 가입해 있다.

길어지는 메르스 사태에 지쳐 가는 병원

- 정부는 메르스가 진정세로 돌아섰다고 보고 있는데. 메르스 사태가 이달 중으로 종식될 것 같나.


"의사들 사이에서는 7월 중순까지는 이어질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급격히 확산되는 것은 아니고 산발적으로 조금씩 확진환자가 나올 것이다. 다만 지역사회나 가정 내 감염 위험은 여전하다. 4차 감염자까지 나왔고 자가격리자가 4천~5천명이다. 방역체계를 벗어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 병원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사태가 길어지면서 많이 지쳐 있다. 메르스 환자 치료병원의 간호사와 의료진은 오랫동안 집에도 못 가고 음압병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격리돼 일한다. 너무 힘들어한다. 의료진 감염사례가 계속 나오니까 솔직히 두려움도 크다. 주위 시선도 걱정스럽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모임할 때 너는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는 분도 있다. 치료병원이 아니라 해도 병원 방역업무가 만만치 않아 다들 피로도가 높다. 세브란스병원만 해도 너 나 할 것 없이 병원 출입구·주차장에서 방문객 발열검사에 매달리는 실정이다."

"수익 줄어든 병원, 대뜸 임금 깎자고 한다"

이수진 위원장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의료진·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노동자들의 노력이 무색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내놓은 것은 중소기업 대출지원이나 외국인 관광객 보험 등의 지원책 정도다. 메르스 치료를 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상대로 하는 경영지원대책은 발표된 것이 없다. 메르스 환자를 받은 병원들은 환자수 급락으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를 보전할 법·제도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병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 메르스 치료병원이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게 있나.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전체의 10% 수준이다. 감염예방 같은 공공의료 영역을 민간이 분담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는다. 감염 대비 의료장비는 비싸서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 연세대가 최근 1억원을 들여 열측정시설을 긴급히 구매했다. 장비를 확보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적어도 지금 같은 비상사태라면 정부가 물량이라도 확보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병원이 모든 걸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메르스 환자를 치료한 건국대병원은 환자가 평소의 60%, 인하대병원은 30% 줄었다. 수익이 줄면 당장 노동자들 임금 깎자는 소리부터 나온다. 한 병원에서는 이번에 환자가 크게 줄었으니 임금 20%를 삭감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병동이 폐쇄되거나 입원환자가 줄어드니 강제휴가를 주고 연차를 소진하게도 한다. 국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응했다면 그걸 근거로 노사 간 협의라도 해서 이런 일을 막을 텐데, 모든 걸 민간에게 떠넘겨 버리니 결국 노사갈등으로 번지는 것이다. 노조 차원에서 내부 논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생각이다."

환자와의 법적 분쟁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를 치료한 한 병원에서 그 환자로 인해 추가 감염된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위원장은 "당시 삼성서울병원 환자 정보가 공유된 것도 아니고 그 환자도 삼성서울병원에서 왔다는 얘기를 안 했는데 그럼에도 책임을 해당 병원이 다 지게 생겼다"며 "이러니 민간병원에서 환자 수용을 꺼리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는 이런 문제를 포함해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고 보상의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 공공의료시스템 강화해야"

그는 특히 "정부가 민간병원을 충분히 지원하고 활용했다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근본 원인은 잘못된 의료정책과 구멍 난 공공의료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메르스 사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나.

"이번 기회를 통해 일단 병원인력을 확충하고, 피해병원 수가보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예방관리와 대응시스템을 운영하도록 만드는 방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력충원이다. 우리나라는 간호사 한 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충분한 치료를 제공하는 데에도, 의료진 감염 위험을 줄이는 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민간병원에 책임을 미루지 말고, 인력충원을 유도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간호 수가를 현행보다 서너 배 늘려 간호사 인력을 확충하든지, 간호 인력 3등급 미만인 곳에는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식으로 인력충원을 강제해야 한다. 또 정부가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할 때 의료인력의 질과 양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상적으로 기준치를 충족하는 병원 운영과 감염예방 관리가 가능하다. 의료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경향이 있는데, 비정규직 비율을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이 위원장은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제 역할을 한다면 메르스 사태가 좀 더 빨리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영역을 경제논리로만 보면 안 된다. 병원이 비용 지출이나 수익 악화를 두려워하면 적극적 예방이 아니라 방어적 역할밖에 못한다. 그 안에서 의료노동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현재 메르스 중증환자들을 치료하느라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 노동자들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의료는 공공영역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제대로 된 정책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의료계 노사와 힘을 합쳐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앞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제2·제3의 메르스를 막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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