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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밑장 빼기? 정부의 ‘노답 상생고용’
▲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사실 박근혜 정부는 생각보다 훨씬 성실하다. 메르스 확산 방지에 국가행정의 모든 공력을 집중해도 버거워 보이는데, 그 와중에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정부 방안에는 5대 분야에 36개나 되는 ‘개혁’ 과제가 등장하는데,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으니 그 ‘개혁’이란 것을 그대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정도 되겠다.

정부가 발표한 추진방안은 시작부터 끝까지 ‘상생’이라는 좋은 말로 잘 포장돼 있다. 정년연장·임금피크제와 연동한 청년 신규채용 확대는 ‘세대 간 상생고용’으로 아름답게 표현됐다. 청년이 처한 고용절벽을 완화하고 중·장년층 고용안정을 함께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에는 무능하지만, 홍보선전 영역에서만큼은 박근혜 정부의 유능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장그래가 등장했던 주요 일간지 1면 광고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런 건 잘 본받아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함께 살자는 ‘상생’을 위해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가 ‘동시’에 어떠한 책임을 질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상생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합의되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가 사회적으로 중요할수록(보다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를 포괄할수록), 그것을 이루기 위한 책임분담이 공정하고 합리적일수록 합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상생에는 정년이 보장된 공공부문에 대한 임금삭감만이 명확할 뿐 나머지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정부의 방안을 살펴보면 노동자들이 입게 될 손실은 분명한 데 반해 비용절감 이익을 누릴 기업·사용자측은 ‘얼마나’ 책임을 분담하는지 그리고 청년 신규채용이 실제로 ‘어떻게’ 확대될 수 있는지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오로지 임금피크제만이 관철되고 정작 청년고용은 늘지 않는 처참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부가 시작부터 밑장을 몰래 빼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정부가 창출되길 기대하는 청년고용의 질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기준이 없다. 이미 별도직군(초임직군) 신규채용이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 계획 속에는 청년 일자리의 질을 보장하는 장치가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일자리를 창출하면 그만이라는 접근 방식은 용도 폐기돼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 부분을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제도’라는 정부 고용보조금이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분담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기업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국가예산으로 퍼주는 ‘사중손실’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정부가 설계한 지원제도는 임금삭감과 고용보조의 이중적 혜택을 얻게 되는 기업·사용자만이 행복한 승리자가 되는 정책이다.

모든 세대가 겪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진정 상생의 원리에 의해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이는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세대 간 합의가 필요한 사안을 두고 정부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불필요한 세대 간 갈등만 유발할 뿐 문제 해결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정부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노사정 협상이 결렬된 후 고작 두 달여 만에 일방통행에 가까운 추진방안을 단독으로 내놓았다. 본 사안에 대한 책임 있는 사회적 대화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졸속추진을 당장 그만두고 경제주체 당사자들을 폭넓게 포괄하는 진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라. 청년은 기업의 책임은 사라지고 세대 간 갈등만 부추기는 정부의 ‘노답 상생고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정부는 청년고용을 볼모로 삼는 '밑장 빼기'를 중단하라. 영화 타짜에 등장하는 아귀의 명대사를 정중하게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정준영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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