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5. 선고 2014가합584855 판결

1. 사건의 경과

국립 서울대학교는 2011년 말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서울대법)을 통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로 법인화됐다. 그리고 종전의 국립 서울대학교에서 ‘기성회 직원’으로 불리며 근무하던 직원들은 서울대법 부칙 제6조 기성회 직원의 임용 특례 규정에 따라 종전의 서울대학교 기성회 직원에서 퇴직하고,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직원으로 임용 처리됐다.

위 사건은 퇴직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퇴직금 과소지급 부분 등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법인전환 전) 국립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하던 기간 동안 발생한 퇴직금 등의 임금지급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가 ‘서울대학교 기성회’인지 아니면 ‘대한민국(국립 서울대학교의 설치·운영주체)’인지 여부였다.

2. 판결의 주요 내용

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법인전환 전) 국립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하던 ‘기성회 직원’이라 불리던 근로자들의 사용자는 서울대학교 기성회가 아니라 국립대학교의 설치·운영 주체인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명백히 했는데, 그 근거로 삼은 것을 정리하면 다음의 5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① 기성회 직원들을 임용한 것은 서울대학교 총장이므로, 위와 같은 총장의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울대학교의 대표 자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법률상 효과 또한 원칙적으로 서울대학교의 설치·운영자인 대한민국에 귀속된다고 할 수 있다. ② 기성회 규약에서는 총장으로 하여금 확정된 기성회 사업에 대한 예산 편성·집행권한만 부여하고 있을 뿐인데 이 권한은 예산의 편성·집행의 전제 내지 근거가 되는 사업을 시행하거나 그와 관련해 기성회를 대표해 외부적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과는 구별된다. 그런데 총장이 기성회 직원들을 임용한 것은 기성회에 귀속될 수 있는 예산의 편성·집행권한과는 무관하다. ③ 기성회 직원 규정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기성회 직원의 인건비는 기성회재원(기성회 회계)으로 충당하게 되나, 이러한 사정 또한 기성회 직원의 소속 여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기성회 직원에 소요되는 인건비 상당액을 사실상 기성회측에서 부담·지원한다는 내용 이상의 의미가 아니다. ④ 기성회 직원 규정을 제·개정하고, 기성회 직원들 소속 노동조합과 단체협약 체결도 하고, 기성회 직원들의 전보·휴가 등 인사명령을 실시하는 등의 업무상 지휘·감독 및 근무성적 평정까지 담당하고, 4대 보험 가입·관리도 담당해 왔던 것은 기성회가 아니라 국립 서울대학교였다. ⑤ 제반 증거자료 등에 비춰 봐도, 기성회 직원이라는 명칭은 공무원인 교직원과 구분되는 서울대학교 소속 직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대법 부칙 제8조에서는 종전의 국립 서울대학교 경영과 관련한 권리·의무를 법인전환 후에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모두 포괄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원은 이 사건 임금지급채무도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모두 승계한 것이므로 그 지급의무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에게 있다고 했으며, 위 판결은 서울대학교측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3. 판결의 의미

그간 각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소위 ‘기성회 직원’이라 불리는 근로자들의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왔다. 명백한 법적판단이 이뤄진 판례 등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학교측은 ‘기성회 직원’으로 채용됐으니 ‘기성회’가 사용자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도 피고측은 비법인사단인 ‘서울대학교 기성회’가 사용자이므로 기성회에 임금청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최근의 기성회비 반환소송에 관한 법원 판결들에서 기성회비 반환의 주체는 대학교가 아니라 기성회라는 점이 재차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성회 직원으로 불리는 근로자들의 경우, 기성회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기성회가 직접 그 업무지휘나 감독을 하지도 않는다. 만일 위 사건에서의 피고측 주장대로 기성회 직원들(위 사건의 원고들)을 채용한 사용자가 ‘서울대학교 기성회’였다면, 그럼에도 기성회 소속 근로자들을 독립된 별개의 사업자인 국립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하게 하며 서울대학교의 지휘·감독을 받게 하고 서울대학교 고유업무를 수행하게 한 것이라면, 기성회 직원들의 고용주체인 ‘기성회’와 기성회 직원들의 사용주체인 ‘대한민국(산하 국립 서울대학교)’ 간에는 기성회 소속 직원의 인력공급과 관련한 무슨 계약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성회 직원들과 관련한 인력공급 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성회는 인력공급업체가 아니라 대학설립자의 부담으로 미치지 못하는 긴급한 교육시설·학교 운영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후원회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기성회는 각종 후원목적의 경비 지원시 기성회 직원이라 불리는 근로자들의 인건비도 함께 지원해 왔을 뿐이고, 기성회 직원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성회 직원들의 인건비를 국고회계와 별도로 운영되는 비국고회계(기성회 회계)에서 지급해 왔기 때문일 뿐인 것이다.

대상판결은 새로운 내용의 판결은 아니다. 대법원은 일찍부터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성 판단에서 근로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판단 요소들이 사용자성 판단에서도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밝혀 왔다(대법원 1999.2.9 선고 97다56235 판결, 대법원 2006.12.7 선고 2006도300판결 등 다수). 즉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사용자, 업무의 내용을 정하고 취업규칙 등을 적용하며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하고 있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사용자로서의 권한행사자가 사용자로서의 의무와 책임도 이행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자 사용자책임을 면탈하고자 하는 여러 편법적 시도들에 대한 실질적 제재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 대상판결 역시 위 일련의 대법원 판결들과 맥을 같이해 (법인 전환 전) 기성회 직원들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해 온 것은 대한민국(산하 국립 서울대학교)이었으므로,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도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뿐이다. 다만 십수 년간 기성회 직원들과 관련해 이뤄진 사용자성 논란을 일부 해소하고, 사용자책임 회피시도를 제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더욱이 국·공립대 기성회비 반환소송 때문에 지급여력이 없는 기성회들이 파산신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어 본 사건에서 만일 기성회가 사용자라고 인정됐다면 그 임금지급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대상판결은 노동법관계에서의 사용자책임에 관한 판단법리는 일반 민사상 채권·채무관계에서의 판단법리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면서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참고로 2015년 3월13일자로 제정·시행된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종전 국립대학에서 별도로 구분·운영하고 있던 국고회계와 비국고회계(기성회 회계)를 폐지하고 단일의 ‘대학회계’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률 부칙 제4조에서는 국립대 기성회 직원들이 기성회에서 퇴직한 후 ‘대학회계직원’으로 채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부칙규정의 여러 문제점은 별론으로 하겠다. 다만 이 법률 시행 이후에는 더 이상 ‘기성회 소속 직원이라는 이유’로 대학측에서 사용자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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