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드디어 고용노동부로 하여금 Q&A까지 발표하게 했다. 지난 12일 금요일 저녁 기침소리를 겁내며 용인행 좌석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노동부 홈페이지를 찾아서 읽었다. 메르스 관련 휴업은 불가항력인가. 졸려 흐리멍텅한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그 첫 번째 질문은“사업장 내 메르스 확진 근로자 및 메르스 의심환자 등이 발생해 불가항력적으로 휴업하는 경우 근로자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는지요”였다. 이에 대한 노동부 답변은 “자연재해 등에 준하는 불가항력적인 사유에 해당하며 사용자의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근로기준법 제46조에 따른 휴업수당은 발생하지 않”고, “다만 지역과 사업장 내 밀접 접촉자가 없어 감염가능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휴업하는 경우에는,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였던 것이다. 메르스야 사용자가 감염시킨 것도 아니고 회사 일로 감염된 것도 아니며 중동 여행객이 이 나라에 끌고 들어왔다는 것이고 평택성모병원·서울삼성병원 등의 사용자도 아니니 일반 사업장의 사용자들은 당연히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제46조). 메르스는 사용자가 저지른 짓이 아니니 메르스 확진 근로자 및 메르스 의심환자 등이 발생해 휴업하더라도 귀책사유가 없다고 휴업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노동부는 답변한 것이다. 한마디로 엉터리 질문이고 답변이다. 질문은 “사업장 내 메르스 확진 근로자 및 메르스 의심환자 등이 발생해 불가항력적으로 휴업하는 경우 근로자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는지요”가 아니라 “사업장 내 메르스 확진 근로자 및 메르스 의심환자 등이 발생해 휴업하는 경우 근로자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는지요”라고 물어야 했다. 메르스로 인한 휴업은 불가항력적이라는 걸 전제하고서 하는 질문이니 답은 ‘불가항력적이니 사용자에 귀책사유 없는 휴업이라서 휴업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일 수밖에 없다. 사업장 내 메르스 확진 근로자 및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발생했다면 그 근로자를 휴직처리하고 사용자는 다른 근로자들을 근무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업장을 휴업한 거라면 다른 근로자들에 대해 사용자의 경영판단에 따라 한 것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사정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더구나 메르스는 공기 전염은 없다고, 환자의 비말 기침만 조심하면 감염은 없다고 국가가 공인하고 있는 감염병 아닌가. 사용자가 사업장 내 감염방지조치만 취해서 관리만 하면 휴업하지 않고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다는 질병이라니 어떻게든 불가항력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부당하게 불가항력적인 사정이라고 해서 휴업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이 나라 사용자들에게 Q&A를 만들어 공지하고 말았다.노동부 눈으로 보자면 이 지구는 사용자를 위해 돈다.

2. 메르스 Q&A에서만 불가항력이 있었던 게 아니다. 사용자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불가항력은 어디에도 있었다. 사용자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노동부는 수많은 Q&A 등으로 사용자에게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답변했다. 노동부의 행정지침·행정해석·예규·업무매뉴얼·가이드라인 등 이름은 제각각 다르지만 사용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던 것들이 수도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몰고 간 노동부 예규인 통상임금 산정지침이나 휴일근로는 연장근로가 아니라는 행정해석은 너무도 악명이 높은 것이고, 최근에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하겠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가이드라인, 일반해고 관련 가이드라인 등을 행정지침으로 마련해서 발표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나같이 사용자 부담을 면해 주기 위한 것이다. 법이 있어도 무시하고 판례가 나와도 소용없다. 노동부의 눈으로 보자면 사용자를 위하는 것이 이 지구의 도리이다.

3. 지난 5월28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하는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가 무산됐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자들의 반대로 열리지 못했던 이날 공청회는 노동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지침 마련을 위한 의견 수렴 등을 위한 절차로서 예정된 것이었다. 정년연장법에 따라 내년부턴 60세 정년이 보장되는 것인데도 사업장에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 할 수 있다고, 노동부는 이날 정지원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의 발제문을 사전에 배포함으로써 그 가이드라인이 무엇인지를 미리 보여 줬다. 예정된 대로라면 이달 17일 노동부 지침이 발표된다. 시행될 법은 분명히 정년 60세가 보장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그 법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관리해야 할 노동부다. 그런데도 임금 삭감하고서 법정 정년제가 보장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이 정한 과반수노조나 근로자집단적인 동의라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없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 나라에서 정년 60세는 임금 삭감에 따른 보상인 셈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관련 행정지침은 결국 사용자에게 정년연장법 시행에 따른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것이고 이는 사용자에게 불가항력적인 정년연장법 시행에 대해 노동부의 사용자를 위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부의 눈으로 보자면 이 지구는 사용자가 짊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그 무게를 덜어 줘야 한다.

4. 노동부는 일반해고에 관해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며 지난해 12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 발표했다. 이후 노사정위원회에 정부안으로 제출하고서 전문가그룹 등에서 논의해 왔다. 노동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반해고 관련 가이드라인은 "근로계약 해지의 기준 명확화"를 위한 필요였다. 관련 노사분쟁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내세운 필요라면 일반해고 관련 행정지침을 마련해 발표할 필요가 없다. 일반해고는 근로기준법상 해고로 파악돼서 이미 구체적으로 그 정당성이 판단돼 왔기 때문이다. 판례의 법리가 형성돼 왔으며, 저성과자 등에 관해서도 근로기준법 해고규정과 그에 따른 판례를 통해서 충분히 규율될 수 있다. 법적 효력을 갖는 입법도 아닌, 기껏해야 노동부의 행정해석의 나열에 불과한 행정지침을 마련해서 발표한다고 해서 노사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부가 직접 발표해서 밝힌, 일반해고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의 필요는 "인력운용이 합리화 및 예측 가능성 제고를 위한 관련 기준·절차 명확화 추진"이라는 표현에서 나타나 있다(2015년 6월2일 당정협의 주요현안보고). 가이드라인이 단순히 노사분쟁 예방 정도가 아니라 사용자로 하여금 인력운용을 합리화할 수 있는 기준·절차로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노동부의 눈으로 보자면 이 지구는 때와 장소를 따져가며 눈치껏 돌고 있다. 통상해고나 저상과자 해고에 관해 법과 판례의 기준을 살펴보면 그 정당성 요건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굳이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을 참조해야만 인력운용의 합리화를 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가이드라인이 법과 판례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에 따른 해고는 부당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은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인력운용의 합리화를 위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용자들에게 이를 활용하도록 한다는 것은 법적 제한을 넘어서 인력운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은 이를 위해서만 존재이유가 있다. 그동안 노사정위원회 등에서 논의, 특히 노동부가 위탁해 제출된 연구용역보고서(해고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통해서 보면, 현행 해고제한 규정에 따른 판례의 해석론이 저성과자 해고가 매우 어렵다며 시장 환경이 점차 경쟁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저성과자에 대한 통상해고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므로 정부 차원에서 통상해고의 유형과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불확실성을 완화해 기업이 통상해고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넓혀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행 해고제한 규정과 그에 따른 판례의 태도에 의하면 저성과자 등 통상해고가 쉽지 않으므로 이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행정지침으로 우습게 무시하거나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은 짓이다. 이 나라에서 사용자가 해고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실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 규정에도, 대부분의 해고는 정당하다. 메르스가 난리를 쳐도 지금 이 나라에서 문제는 해고의 제한이 아니라 해고의 자유다. 그런데도 해고가 자유로워야 기업이 산다며 노동부는 사용자를 위해 이 지구를 돌리려 하고 있다. 아무리 메르스가 무서워도 법을 집행해야 할 국가권력은 제대로 법대로 말해야 한다. 이 지구는 노동자를 짓밟고서 돌아서는 안 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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