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노사의 실험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임금인상분 10%와 회사 기여분 10%씩 66억원을 조성해 협력업체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노사는 해마다 특별도급비 형태로 협력업체에 지급하기로 했다. 임금공유분은 협력업체 직원의 처우와 복지향상에 쓰기로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SK하이닉스와 5개 협력업체는 오는 16일 협약식을 체결하기로 했다.

이처럼 노사는 합의안에 지속성을 부여했고, 실천방안도 마련했다.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이래 지난해 계열사 중 실적이 가장 좋았고, 올해도 양호한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그룹 총수와 경영진의 결단이 아니라 노사가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한 점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이는 SK하이닉스 노사의 실험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SK하이닉스 합의는 이명박 정부 시절 정운찬 국무총리가 제안한 초과이익공유제를 떠올리게 한다. “대기업과 협력해 성과를 이룬 중소기업에 그 기여도에 따라 초과이익을 돌려줘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진출, 그리고 고용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게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주장이었다. 초과이익을 낸 대기업이 연말에 임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처럼 대기업의 이익공유 대상을 협력업체까지 넓히자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하자는 취지다.

노동계도 지난 2012년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산하 지부 집단교섭 요구안으로 ‘취약계층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채택하기도 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불공정거래로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조건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고려해 산별 노사가 해법을 마련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는 산업별 혹은 기업별 노사가 공동기금을 조성해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정 전 국무총리나 노동계의 제안은 경영계의 반발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당시 경영계는 정 전 국무총리나 노동계의 제안을 불순한 의도로 해석했다. 정 전 국무총리의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경영계는 사회주의적 분배이자 반시장경제 방안이라고 반발했다. 또 노동계의 사회연대기금에 대해서는 “기업의 경영상 부담 증가로 고용에 악영향을 주고 부당노동행위까지 우려된다”고 반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당시 "비정규직 지원을 위한 특별기금이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조설립에 사용될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SK하이닉스 노사의 합의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SK하이닉스 노사 합의안을 보면 정 전 국무총리가 제안한 초과이익공유제와 유사하다. 노동계가 제안한 사회연대기금과도 맥락은 유사하다. 그간 경영계가 강하게 반대한 것이었지만 SK하이닉스는 노사 합의라는 형식으로 실천한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주식시장에서 시총 기준으로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고환율과 반도체 경기가 나아진 덕택이다. 이런 SK하이닉스가 임금공유를 앞장서 실천한 것이다. 경영계가 정 전 국무총리의 초과이익공유제든, 노동계가 제안한 사회연대기금이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 없게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는 것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합의를 계기로 경영계는 이익공유 방안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갖기를 바란다.

그간 대기업 노사가 사회공헌기금 조성에 나름 기여했지만 그 쓰임새와 효과는 미미했다. 대기업 노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내걸고 기금 조성에 합의했으나 그 효과는 기업 홍보에 그쳤다는 평이다. 기업 단위에서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해 쓰임새를 결정하다 보니 이런 한계가 나타났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는 기업 단위를 넘어서 산업별 차원에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 대기업 노조와 산별노조가 먼저 제안하고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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