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있다. 초기 대응부터 드러난 부실함과 무능력 탓에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비난이 터져 나온다. 대책은 구멍이 숭숭하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방안을 물었더니 “대응지침을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으라”고 답변하기도 한다.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라는 충고로 들린다. 지금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대책은 무엇일까.

자가격리 했다고 불이익 받아서는 안 돼  

▲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메르스는 병원 내에서 감염된다. 노동자들은 메르스 확진환자나 의심환자로부터 전염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간호사를 포함한 노동자들은 환자를 돌보는 게 사명이기 때문에 환자를 안 볼 수 없다.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근무 중 마스크를 쓰는 것도 메르스 전염을 막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메르스 확진환자와 의심환자를 접촉한 경우 반드시 자가격리해서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염되는 걸 막아야 한다. 노동자가 메르스 전염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할 경우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아서는 절대 안 된다.

메르스는 전염률이 높아 의심증상이라도 나타나면 노동자가 먼저 사업주에게 말해 자가격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업주에게 말하기 어렵거나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워 혼자서 앓아서도 안 된다. 그래야 메르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 역시 안전할 수 있다.

파업대응만큼만 신경 써도 검역체계 완비될 것 

▲ 신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

인천공항을 통과한 이용자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것이 지난달 말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아무런 대책도 내지 않고 있다가 지난주 지부가 메르스 대책이 없다는 비판 성명을 내고 나서야 부랴부랴 마스크·손세정제를 노동자들에게 지급했다. 그마저도 공사가 직접채용하거나 공사 사내하도급업체 직원 6천명만 대상이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4만명 가운데 3만4천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항공사나 면세점 등에서 일하는 직·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지금도 메르스 대책에서 빠져 있다.

공사가 하청노동자 파업에 대비해 신경 쓰는 만큼만 메르스 대응에 투자했어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공사는 하청노동자 파업에 대비해 현장을 수시로 체크하고 위험한 구역을 특별관리하도록 하는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놓고 있다. 공사 사장을 정점으로 해서 인천공항의 모든 기관과 유기적 대응을 준비하고 시나리오별 대처법도 만들어 놓았다. 이런 열정을 메르스 등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안을 만드는 데 쏟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원청인 공사가 노동자를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권한도 없는 하청업체가 고용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메르스 문제로 불거졌듯이 하청업체는 위기관리에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위기상황이 되면 우리 같은 하청노동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 공사는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안전과 국민건강을 위해 위기상황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병원노동자 보호로 지역사회 감염 차단해야  

▲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백화점 노동자나 은행 접수창구 직원과 같은 서비스·대면 노동자들에게는 사용자가 마스크도 못쓰게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단순히 고객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본인은 물론 사업장을 찾아온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에게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용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메르스 확산의 주요 원인이 병원내 감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보호자 등은 잘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병원에는 의사·간호사뿐만 아니라 많은 직종의 노동자들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수납·안내 등 일상적인 대면업무를 하며 환자에게 쉽게 노출되는 인력들은 물론 보조업무에 속하지만 대부분 병원의 직접고용 상태가 아닌 청소노동자·보안요원·요양보호사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환자들의 채액이 묻어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병원을 오가는 많은 이들을 대면해 안내하고, 필요시 직접 몸을 부대끼며 환자이송 업무를 하고 있어 감염위험에 쉽게 노출돼 있다. 하지만 다수의 ‘보이지 않는 인력’은 병원의 감염관리 시스템에서 제외된 채 안전대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메르스 확산의 주요 원인이 병원내 감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렇게 감염 위험에 쉽게 노출될 우려가 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은 의료기관내 감염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메르스 사태로 공공의료 기관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 고위험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국가지정병원은 17개에 불과하고, 공기전염을 막을 수 있는 음압격리병상은 105개밖에 없는 실정이다. 신종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국가방역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기가 있었지만 정부의 시스템은 제자리걸음이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환자·노동자·보건의료종사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국가방역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노동현장에 대한 메르스 감염 예방대책 강화할 때 

▲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

정부가 연일 메르스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확산하는 추세다. 메르스 발생 이후 정부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을 뿐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초기대응에 실패한 정부의 무능이 부른 인재다. 노동현장의 경우 메르스 감염에 대한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이에 대한 예방대책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노동부는 메르스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기업대응 지침을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빠져 있다. 메르스 예방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책임과 역할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노동현장의 메르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메르스 감염 사업장에 대한 정보를 노동부가 파악하고 이에 대한 예방대책을 철저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부처 간 소통 부재로 인해 노동부조차 메르스에 감염된 사업장 명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과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또 메르스 격리자의 경우 노동부는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했으나 이는 매우 무책임한 행정이다. 국가적인 비상사태임을 감안할 때 메르스 격리자의 경우 유급휴가를 원칙으로 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비스·간병인·병원노동자 등을 비롯해 메르스로 인한 감염의 위험이 있을 경우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또 사업장의 보건관리 업무 강화도 필요하다. 하청노동자의 경우 원청에서 메르스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마스크 같은 예방용품을 지급하게 해야 한다.

부실한 정부 때문에 노동자는 위험하다 

▲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정부는 걱정 말라고 장담했지만 메르스는 창궐했다. 집단노동에 불특정 대중을 상대하는 노동자는 이런 때일수록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사용자들은 매출을 이유로 기본적 예방조치를 꺼리거나, 마스크조차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려 지급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노동자는 전염병에 더해 탐욕과도 싸워야 할 처지다. 때문에 책임 당국은 이윤추구에 매달려 노동자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사업장은 없는지 관리하고, 단호한 대응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기업은 노동자의 예방대책 협의에 응해야 한다. 기본 예방물품을 차별 없이 지급하고, 필요에 따라 예방시설을 갖추고 교육·검진도 실시하도록 성실히 협의해야 한다. 감염 가능성이 높다면 즉각 격리해 전체 안전을 확보하고, 시급히 검진과 치료를 받도록 충분한 유급휴가도 보장해야 한다.

나는 사용자의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부의 권고가 제대로 이행된 일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노동부는 유급휴가를 ‘권고’만 한다. 아파도 불이익을 걱정하며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한국 노동자의 신세다. 이 부당한 현실을 당국은 직시하길 바란다.

장시간 노동 세계 2위라는 한국 노동현실도 새삼 걱정된다. 과로를 강요하는 업무지시는 중단돼야 한다. 그런데 어쩌나. 노동부 장관께서는 “메르스는 업무상질병이 아니”라고 한다. 발생학으론 맞겠지만 전염은 그렇지 않다. 과잉대응은 피곤하면 그뿐이지만, 부실대응은 생명을 위협한다. 부실한 정부니 노동자는 더 위험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