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은정 공인노무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얼마 전 사무금융노조 A지부가 피키캐스트에 ‘베일에 싸인 신의 직장’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다. 본사 일부 부서를 제외하고 출근시간이 여유롭고, 금융업계 최상위권 연봉과 복지를 보장하고 있으며, 게다가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기에 직원들의 권리보호가 확실하다는 것이 신의 직장으로 소개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A지부는 어떻게 신의 직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A지부가 지금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투쟁해 온 역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2007년 한미FTA 반대투쟁이 진행될 때 A지부는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전 직원이 1박2일 파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확산될 때에는 임금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맞바꾸기도 했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1년 365일 중에서 실제로 집에 가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살인적인 주말 일정을 소화하며 동분서주했다.

이러한 이유로 A지부의 연봉은 매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유지됐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노동탄압에도 복지 수준을 지켜 낼 수 있었다. 2013년부터는 일정 시간에 일을 모두 강제로 중단시키는 PC-OFF제를 사측과 합의해 조기퇴근 투쟁을 진행한 것이 신의 직장이 된 이유다. 지난 10년 동안 필자가 본 가장 헌신적인 노조간부가 있었던 노동조합, 그래서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있었던 곳이 바로 A지부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노동조합 역시 A지부처럼 노조간부들의 희생과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오늘날 임금·복지수준을 만들 수 있었고, 건강한 노동운동의 기풍을 만들어 왔다.

지난해 12월29일 박근혜 정권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하고, 노사정위원회를 거쳐 국회에서 논의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에는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와 그 노동조합 효과로 만들어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내용은 임금 양극화가 극심하므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근속연수가 길고 고용경직성이 강하므로 노동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임금 하향평준화와 노동조합 무력화다. 박근혜 정권은 양극화 문제를 일부 기득권층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책임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양극화가 정규직 노동조합 때문인가. 87년에 27%까지 올라갔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3%로 떨어진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탄압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본과 정권은 2006년 12월 노동계의 반대에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을 제정하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개악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 심각할 정도로 비정규직이 확산된 것이다.

고용불안과 오르지 않는 임금으로 인해 비정규직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반면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종래의 임금제도를 지켜 왔다. 현재 노동조합이 그마나 좋은 근로조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 3권을 보장한 헌법과 법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결과다. 노동조합이 투쟁으로 지켜 온 현재의 근로조건이 왜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돼야 하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현재 경기부진 문제는 자본집적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업유보금은 매년 늘어 가고 있지만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과 소수자본가들은 배당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소득분배율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기업이 곳간을 열어 투자하게 하는 것이고, 고용을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올해 최경환 부총리도 내수를 성장시키기 위해 임금인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효수요 창출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용률만 높인다고 내수가 진작되는 것은 아니다. 양질의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상향평준화시키는 방향으로 다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또한 현재 정부가 압박하고 있는 비정규직 확산정책과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악, 임금피크제 실시는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정부 논리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임금피크제는 세대 간 갈등을, 성과급제 도입은 직장 내에서 저성과자와의 갈등을, 그리고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과의 갈등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임금을 깎는다고 해서 내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실적이 부진한 노동자들을 해고시킨다고 내가 그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일자리에서 고용과 노동력 재생산의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함께 단결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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