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요즘 들어 제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은 것 한 가지가 새롭게 생겼다. 고기는 아니다. 어제 먹다 남은 소고기를 아침에 반찬으로 먹는 필자는 육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욕심이 없다. 치아와 잇몸도 아직 튼튼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마음껏 씹어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2016년 1월1일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4일 최저임금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가 열렸다. 지난달 진행된 연구조사와 현장방문 결과를 보고하는 한편 의결사항으로 ‘2016년 적용 최저임금안 심의안’이 상정됐다. ‘액수’라는 결론을 향한 위원회 내부 논의가 시작됨에 따라 2015년 최저임금 인상 운동도 본게임에 이르렀다.

최저임금 결정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임금통계상으로 최저임금의 90~110%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는 ‘최저임금 수혜자’는 120만명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위임금의 3분의 2 기준점에 미달하는 상태로 규정되는 ‘저임금 노동자’는 500만명에 달한다.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하는 사람 4명 중 1명의 월급이 12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들 또한 최저임금에 의해 자기 임금이 직접적으로 결정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은 최소 120만명을 넘어 적어도 500만명의 삶이 걸려 있는 문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정아 박사는 최근의 연구(2015)를 통해 최저임금에 의해 단순히 임금구조 하단이 잘려 나간다는 기존 전제를 비판하며, 실증적으로는 최저임금이 임금결정의 준거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즉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에 적용되는 임금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임금구조 변화와 함께 1천800만 모든 노동자의 임금이 함께 오른다. 결국 최저임금은 ‘우리 모두의 임금’이다. 따라서 노·사·정이 참여하는 최저임금 결정과정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하게도 ‘사회적 임금협상’이다.

끝없이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최저임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걸스데이 혜리(!)의 활약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알게 됐다. 올해 초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발언들이 터져 나왔다. 언론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이 모든 소란스러움에도 정작 최저임금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을 조건 짓는 최저임금이 어떤 논의의 결과로 결정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중대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위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위원회의 각종 회의는 ‘밀실 논의’와 다를 바 없이 비공개를 기본으로 운영된다. 녹취록은 심의가 끝나고 국회에서 자료요청을 해야 열람할 수 있다. 공식적인 회의록은 논의내용을 과하게 축약하는 수준으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방청은 불가능에 가깝고, 위원이 소속된 단체 실무자의 배석조차도 까다롭다.

새롭게 구성된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최저임금위원회부터 바꾸자’는 취지로 속기록 수준의 자세한 회의 기록을 매 전원회의 종료 후에 사회에 공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와 관련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대해 박준성 최저임금위원장은 "회의를 완전히 공개한 관행은 없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관행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최저임금 당사자를 비롯한 모든 시민들의 ‘알 권리’다. 최저임금위는 회의를 투명하게 공개해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위원회의 논의내용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5일 열린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에 배석했다. 노동자위원이 소속된 노동조합의 담당자가 회의에 배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것조차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속기록 공개와 실무자 배석 문제를 논의하는 운영위원회에서 정부와 사용자측 위원은 발언자를 식별할 수 있는 속기록을 작성해 사회에 공개하는 것에 거세게 반대했다고 한다. 다른 건 다 되는데 누가 말한 내용인지 드러나는 것만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렵기에 회의내용 공개에 반대하는 것인가. 논의내용이 회의장 안팎으로 소통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위원들에게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부여할 수 있는가.

나는 솔직히 ‘누가 말한 것인지’ 드러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본인들의 논지가 어떠한 삶의 이해관계에 근거하고 있는지 그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해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보통 사람들의 것은 아닐 것이다.

최저임금은 모두의 임금이다. 모든 사람들이 최저임금위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보고 듣고 알고 말하고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위는 회의내용을 공개하라.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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