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5월28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 계획이던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가 무산됐다. 이날 공청회의 공식적인 주최자는 한국노동연구원이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지침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고용노동부가 사전에 발표자료를 배포하고 안내했던 터라 사실상 노동부가 주최하는 공청회라고 알려져 있었다. 공청회는 양대 노총 조합원들의 항의로 무산됐다. 공청회에서는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이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에 대해 발제할 예정이었다. 이 공청회 발제문은 사실상 노동부가 예고했던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의 가이드라인 내지 지침의 초안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이 발제문은 이미 노동부가 전날 언론에 배포했었다. 공청회가 무산돼서 발표하지 못했지만, 정 정책관은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실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으니 근로기준법이 정한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을 위한 절차, 즉 과반수노조 또는 집단적 회의방식에 의한 근로자들의 동의라는 절차 없이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배포된 발제문에서 충분히 말하고 있었다.

2. 이 공청회에 앞서 지난 5월7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공공기관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이른바 정년연장법, 즉 정년 60세 이상을 보장하도록 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서 기재부가 발표한 것이었다. 정년연장법에 따라 60세 정년 간주 내지 60세 이상 정년연장의무에 대응한 기재부의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권고(안)에서 기재부는 임금피크제를 모든 공공기관에 도입하고,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도입하라고 했다. 이미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고 있는 공공기관에서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하고, 이미 일부 직급에 대해서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정하고 있어 나머지 직급만 정년을 연장하는 경우에도 이미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정하고 있는 직급 직원까지 포함해서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관의 경우에도 권고(안)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종전 제도를 수정·보완하라고 하고, 일부 직급에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관의 경우에도 전체 직원으로 그 적용대상을 확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다만 급여 수준이 최저임금의 150% 수준 이하로 매우 낮은 경우 등은 임금피크제 적용에서 제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임금이 매우 낮은 경우 등에 해당하지 않는 공공기관의 전체 직원에 대해서 정년연장과 관련해 기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고한 것이다. 나아가 기재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정년을 종전 60세 이하에서 60세를 초과해 연장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3. 이처럼 지난 5월 노동부는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지침 마련으로, 기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권고(안) 발표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지만 그것은 모두 정년연장에 대한 정부 대책을 마련하거나 권고했던 거였다.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지금 정부의 시계는 임금피크제를 위해서만 돌고 있다. 다만 공공기관 노동자의 정년과 임금에 관해서 실질적으로 사용자 공공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기재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고 권고(안)을 마련해서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도록 했고, 이 나라 노동자들의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지침 마련을 위해 노동부는 노력해 왔다.
기재부가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도입하라고 권고한 임금피크제는 정년 60세를 3~5년 앞둔 시기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권고(안)을 통해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 정년연장법 시행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노동부가 사용자가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서 도입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임금피크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올해 초 노동부가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매뉴얼을 보면 이러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주되게 언급하고 있다. 노동부든, 기재부든 지금 정부는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 권고(안)을 발표하고 지침을 마련해 왔다. 모두 정년연장법에 대한 대책을 말했다.

4. 그러나 노동부도, 기재부도 법은 말하지 않았다. 정년연장법을 집행해야 할 노동부·기재부는 법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법을 제대로 읽고서 말해야 했다. 그런데 권고(안)에서, 지침에서 기재부·노동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년연장법은 2016년 1월1일부터 300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나머지 사업장은 2017년 1월1일부터 사업주는 60세 이상으로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제19조 제1항, 부칙).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60세로 정년을 정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동조 제2항, 부칙). 이처럼 이 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1일부터는 공공기관 근로자의 정년이 60세 미만인 경우 법에 의해서 60세 정년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 19조 제1항에서 법은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런데 위 권고(안)에서 기획재정부는 임금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정년은 60세를 초과해서는 안된다고 공공기관의 사업주에게 권고하고 있다. 노동부가 발표했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지침 마련을 위한 공청회 발제자료 등을 보면 60세 정년연장과 관련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관해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해 말하고 있다. 법은 사업주에게 60세 이상으로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도록 정하고 있다는 것을 기재부는 무시하고서 공공기관에 권고했다. 2015년 5월은 아직 정년연장법이 시행되기 전이다. 그러니 지금은 엄격히 보자면 기재부가 법을 무시한 것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기재부의 권고(안)는 법을 무시한 것이 된다. 정년연장법이 시행되는 내년에는 용납할 수 없다. 이번 권고(안)을 통해 기재부가 내년에도 공공기관 사용자가 이에 따르도록 권고하는 것이라면 이는 법을 준수해야 할 국가가 공공기관 사용자에게 법을 준수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부당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정년연장법이 시행되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60세 미만으로 정한 근로자의 정년은 60세로 간주된다. 60세 정년은 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부·기재부는 정년연장과 관련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말하고 있다. 지금은 아니라도 정년연장법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법을 집행할 국가기관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고, 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말이다.
또한 정년연장법은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정하면서 노사 간에 임금체계 개편 등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지(제19조의2 제1항) 기재부가 권고한 대로, 노동부가 밝혀온 대로 종전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만을 도입하도록 정하고 있지 않다. 임금체계 개편이 임금피크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임금피크제라고 해도 임금을 삭감하는 것만인 것도 아니며, 제반 임금체계의 개편방안이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법은 노사 간에 임금체계 개편 등 조치를 취하도록 한 것이라서 반드시 임금체계 개편만이 정년연장과 관련해 노사 간에 취해야 할 조치인 것도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 등 다양한 방안이 그 조치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부·기재부가 말해 온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법이 정한 정년연장과 관련한 임금체계 개편 조치로는 너무 편파적이다. 사용자만을 위해서 노동부와 기재부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편협하게 권고하고,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임금 삭감을 임금피크제라고 개념을 왜곡하고 법이 당연히 보장한 60세 정년을 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서 보장하도록 하라고 기재부는 공공기관 사용자에게 권고하고, 노동부는 모든 사업장 사용자에게 지침을 마련해서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니 거짓의 포장을 거둬 내고 보자면 정년을 앞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라고 사용자에게 권고하고 지침으로 안내해 주는 것이다. 도대체가 뭘 주겠다면서 노동자에게 임금을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째야 한단 말인가.

5. 사업장에서 조합원·노동자권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노동조합은 권고(안)에 따라, 지침에 따라 사용자가 도입해야 한다고 압박할 것인데 어째야 한단 말인가. 뭐 골치 아플 것 없다. 내년 1월1일이 될 때까지 임금피크제니 뭐니 사용자가 협의하자고 해도 노조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 뭐 가만히 있기가 심심하면 합의 없이 협의나 협상장에 앉아 있으면 된다. 나는 노동자권리를 위한 교섭과 투쟁이 노조의 일이라고 헌법과 노동법 교과서에 써 있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임금 삭감이 정년연장법에 대한 대책이라고 말하는 권력에 대하여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조합의 대책은 당연한 노동조합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뻔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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