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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소송남용 규제해야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지난해 6월 선고된 서울행정법원 2012구단26138 판결(요추간판탈출증으로 불승인돼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건, 1심 공단 패소)과 같은해 7월 선고된 서울행정법원 2013구단50336 판결(좌견관절 충돌증후군 등으로 불승인돼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건, 1심 공단 패소).

최근 필자가 수행했던 두 건의 행정소송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조정을 요청했다. 항소심에서 패소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위 첫 번째 사건은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공단이 소송을 취하한 것이다. 두 번째 사건에서도 패소가 확실해지자 공단은 승인처분을 한 이후 이를 증거로 제출했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을 취소하고, 소의 실익이 없으므로 각하한다”고 판시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공단의 소송수행자들은 패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들에 대해 ‘조정’이라는 우회로로 소 취하 또는 각하 판결을 유도하고 있다. 공단은 ‘근로자의 신속한 권리구제’라는 측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거짓임과 동시에 산재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공단의 항소제기율은 일반 행정소송 평균 항소제기율에 비해 20% 이상 높다. 최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공단은 지난해 1심에서 패소한 사건 250건 중 212건을 항소했다. 1심 패소 사건의 84.8%에서 항소를 제기한 것이다. 2013년에는 288건 중 249건, 2012년에는 262건 중 194건을 항소했다. 항소제기율은 86.5%와 74%다. 서울행정법원 연평균 항소율은 60% 미만이다. 공단이 명백히 항소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단의 1심 패소사건은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다. 즉 진료기록감정회신 등 의학적 근거에 의한 판결이다. 공단 소송사무처리규정에 따르면 ‘사실관계 및 의학적 감정소견이 쟁점이 돼 패소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은 지역본부장의 승인을 받아 소송원인 부서장에게 처분 취소를 권고할 수 있다. 이 경우 원처분지사장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 별도로 조정을 받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항소를 해서 다툴 실익도 없다는 뜻이다.

공단은 조정 형식을 취할 경우 소송비용을 각자 부담하자고 요청한다. 공단의 위법한 처분 때문에 생긴 피해에 대해 보상은커녕 일체 비용을 산재 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형사사건 소송비용보상제도와 비교하더라도 매우 불합리하다. 형사사건에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무죄판결이 난 경우에는 일비·여비·변호사 비용까지 국가가 보상한다.

공단이 항소심에서 원고측에게 조정을 유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패소 확정판결과 조정권고에 의한 소 취하 판결이 소송수행자에게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인사고과가 달라진다. 취하와는 달리 패소 확정판결이 누적되면 인사고과에서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 승소시 사건당 포상금 몇 만원 받는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공단의 행정소송은 형식적으로는 국가기관의 소송이므로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공단은 유독 자신들의 승소가능성이 일부라도 있는 사건에서는 조정을 요청하지 않는다. 삼성 백혈병 사건에서도 패소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검찰 지휘를 받는다는 이유로 항소를 제기한 바 있다. 실제로는 검찰에 공단 입장을 관철할 수 있다. 필요할 때만 ‘검찰 지휘’를 내세우고, 정작 자신들이 패소할 사건에서는 실질적인 ‘조정 권한’을 행사한다.

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은 2012년 16.2%, 2013년 13%, 지난해 11.2%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러나 공단이 심상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취하 등’으로 분류한 사건은 2012년 375건, 2013년 446건, 지난해 586건이다. '취하 등' 사건은 앞서 본 것처럼 실질적으로 공단 패소사건이다. 이를 산입하면 행정소송 패소율은 2012년 40%, 2013년 41.1%, 지난해 46.6%로 상승한다. 통계의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공단이 산재를 불승인하면 산재 노동자들은 몇 년에 걸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경제적 손실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몇 년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산재 노동자들이 정말 듣고 싶어 하는 것은 공단의 잘못된 처분에 대한 진정한 사과다. 공단은 항소와 조정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진정 산재 노동자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권동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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