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정 협상 실패의 원인을 제공했던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이 윤곽을 드러냈다. ‘정년 법제화 및 임금체계 개편 관련 취업규칙 지침’ 개정안이다.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 도입하고 직무성과급제를 시행하는 것이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28일 지침 개정안이 발표될 예정이던 공청회도 무산됐다. 가이드라인은 현장에서 법 개정 이상의 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는 “노사가 이를 참고해 취업규칙을 개정하도록 지원하고 지방노동관서에서 취업규칙 심사시 활용하겠다”고 했다. 취업규칙 개정을 독려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가이드라인을 통한 규제, 과연 정당한가.


근로기준법 강행규정 무력화 부당 

▲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이를 무시하려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근로기준법 강행규정을 정부가 사실상 무력화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가이드라인 자체가 법률적 효력이 없는데도 노동현장에서는 상당한 규범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노사 간 다툼이 발생하고 결국 재판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혼란을 조장하는 셈이다. 임금피크제 등은 가능한 한 근로자들을 설득해서 합의·시행하면 된다.

그런데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은 산업현장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사용자의 해고 효력을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산업현장의 민주정신에도 반하고 근로자 보호라는 근로기준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오히려 산업현장의 혼란을 더 조장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취업규칙 가이드라인 제정을 철회해야 한다.

임금피크제, 노사 조율할 사안 … 일방에 유리한 지침 부적절 

▲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기준·절차와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존중해 추진해야 하는 문제다. 특히 내년 60세 정년제 도입을 앞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사업장 내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은 사안이다. 그런데 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들어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를 지침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것은 원칙과 예외가 전도된 것이다.

정부는 지침에서 불이익이 아닌 단순한 ‘변경’으로 ‘사회통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합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스스로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사회적 통념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합의를 요하는 ‘불이익’변경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예외’적인 것이다. 지금같이 불이익변경이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해 근로기준법 규정과 단체협약을 초월해 동의가 아닌 형식적 협의과정을 거칠 우려가 있는 사안을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지침으로 인해 단체협약이 무력화되고, 노동조합마저 없는 대다수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취업규칙 변경이 형식적 협의절차를 거쳐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정부는 전혀 조심성을 보이지 않는다. 정년연장 시행을 앞두고 기업이 사업장내 정리해고나 명예퇴직 절차를 밟는 것도 노동시장에 미치는 역효과가 크기 때문에 노동계도 법 시행 시점을 앞두고 대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사가 상호조율을 해야 할 사안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어느 일방에 유리한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모습은 부적절하다.

대혼란 부를 취업규칙 제도 변경 중단해야 

▲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인 임금피크제는 엄연한 노동조건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노동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과반수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에 근거해 일부 예외를 인정하고는 있으나 극히 제한적이다. 각종 판결문에서 엄격히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동자 임금을 깎는 것은 절대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포함될 수 없다. 노동부의 어설픈 취업규칙 변경 기준·절차 행정해석은 잘못된 판단으로 대혼란을 부른 ‘통상임금·휴일근로 연장근로 미포함’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게 뻔하다. 혼란은 가중되고 법적 소송은 난무할 것이다.

임금피크제가 좋은 제도라면 정년 65세인 교수와 60세인 공무원부터 도입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교수 임금피크제는 반값등록금 실현에, 공무원 임금피크제는 1천조원에 달하는 국가부채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노동계에만 임금피크제를 강요하면서 이대로 취업규칙 변경 기준 완화를 추진한다면 한국노총은 총파업으로 저지할 수밖에 없다.

취업규칙 가이드라인 공청회, 구조개악 강행 요식행위 

▲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정부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앞세운 노동시장 구조개악 야합 시도가 무산되자, 취업규칙 가이드라인 마련 공청회라는 요식행위로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강행하기 위한 억지 명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누구에게 무슨 의견을 듣겠다는 것인가. 의견을 들을 자세도, 듣는다고 바꿀 생각도 없는 정부다. 이미 정부는 단체협약 중 인사·경영권과 연관된 내용을 조사해 시정시킴으로써 사용자에게 해고의 자유를 더 넓혀 줄 계획을 진행 중이다. 공공부문에서는 아예 들을 것도 없다며 묻지마 식 2단계 정상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명분용 요식행위 공청회도, 노동시장 구조개악 정책도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

과연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추진 과정이 공정한 의견 형성 과정이었는지 묻고 싶다. 고용불안과 저임금·비정규직 확산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더 많은 부를 차지하려는 기업들을 위한 것인지 말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정부 기만행위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릴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노동자 등 다수 국민의 외침에 귀 기울여 노동시장 구조개악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6월에서 7월로 이어질 노동자들의 투쟁을 피할 길은 그것뿐이다.

정부안보다 합리적인 개선방안 필요 

▲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정부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노동조합 동의 없이 할 수 있도록 바꾼다고 언론마다 대서특필을 하고 있다. 노동계도 이에 강하게 반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노동연구원 주최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 전 미리 공개된 발제자료를 살펴보면 어디에서도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가능하도록 한다거나, 임금피크제 도입은 사용자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내용은 없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비록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은 가능하다고 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은 정년연장 등 법률 개정에 따라 불가피한 것이므로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조치로 인정될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뿐이다. 노동계와 언론이 고용부의 입장 중 특정한 일면만 과도하게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영계는 취업규칙 변경 절차가 더욱 합리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법률 환경의 변화나, 기업 경영상 불가피한 취업규칙 변경의 경우에도 반드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판례의 태도를 따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을 경우에는 동의요건 적용 완화도 법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불이익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단편적으로 당장의 변화만 볼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생애 전체의 소득과 근로제공 가능기간 등을 고려한 종합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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