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 칼럼니스트 겸 작가

지성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할 만큼 ‘멋있는 반항아’ 면모를 두루 갖춘 알베르 카뮈는 호텔에서 일하는 걸 좋아했다. 심지어 20대에 낸 자기 생애 첫 번째 책 <안과 겉>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로서는 거기서 죽더라도 괜찮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 그것은 호텔 방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호텔은 우리가 생각하는 호텔과 아주 많이 다르다. 아랍 사람들, 혹은 스페인 사람들의 아무 장식 없는 호텔을 좋아했던 그는 이른바 부르주아적인 장소에서 오히려 따분함을 느낀다고 했다. 알제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이 한 번도 장애가 된 적이 없었다며, 어린 시절 머리 위로 내리쬐는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일종의 헐벗음’ 속에서 ‘풍성한 호화로움’으로서의 자유와 고독을 만끽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됐다고 고백한 그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비슷한 정서가 있다. 17년 동안 패션잡지 에디터로 일한 덕분에 이른바 특급호텔이라고 불리는 곳에 투숙할 기회가 정말 많았다.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호화롭게 널찍한 공간을 혼자 독차지하는 상황 속에 놓이면 내 마음은 늘 기묘하게 불편했고 때로는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발리나 카프리·상하이에서, 심지어 내 평생 다시 갈 일이 있을까 싶은 요하네스버그에서조차 나는 스위트룸에서 혼자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독주를 몇 잔 마시고 억지로 잠을 청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반면 너무도 평화롭게 만족감을 느꼈던 호텔도 있다. 안나푸르나 등반객들이 모이는 도시, 네팔의 포카라에 있던 인드라호텔. 이름과 달리 호텔이라기보다 호스텔에 가까운 곳이었다. 숙박비가 겨우 10달러였지만 햇볕에 잘 말린 하얀 시트가 깔린 더블 룸이었고 낡은 나무 책상 위에 녹슨 촛대와 초, 그리고 작은 성냥갑이 놓여 있었다. 촛불을 켜 놓은 밤이면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다. 호텔 옥상에서 보던 안나푸르나의 모습은 얼마나 또 사랑스러웠던가. 맑고 큰 눈의 네팔 청년이 끓여 주던 김치찌개 맛은 또 어떻고….

요즘 유럽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포시텔에서라면 혹시 이런 종류의 만족감이 다시 느껴질까. 일반 호스텔보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숙박환경을 제공하고 가격은 호텔보다 저렴한 게 특징이어서 ‘우아한’ 혹은 ‘상류층’이라는 의미를 지닌 포시(Posh)와 호스텔(Hostel)을 합쳐 포시텔(Poshtel)이라고 불린다는 곳 말이다. 부티크 호텔 못지않은 디자인 감각을 자랑하는 객실에 조식은 물론 석식까지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는가 하면 공동주방과 서재,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는데 숙박료는 일반 호스텔보다 약간 더 비싼 수준이란다. 심지어 현지 가정과 제휴해 가정집에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갖춘 곳도 있다.

하기야 별이 몇 개가 됐든 기존의 호텔이나 호스텔은 이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여행자들에게 게스트하우스로 개조된 현지의 일반 가정집을 빌려 주는 숙박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의 위력이 얼마나 기세등등한지 전 세계 호텔들이 엄청난 위기감 속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시골에 사는 나 같은 여자도 여행 욕구가 슬며시 고개를 쳐들면 에어비앤비에 접속해 개인 숙박시설부터 찾아보게 됐으니까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알베르 카뮈가 혹시 살아서 한국을 방문한다면 어떤 곳에서 머물면 좋을까. 그래, 안동의 구름에리조트가 있다. 수백년 고택의 품격을 간직한 이 한옥 리조트의 직원은 모두 지역주민이고 식재료부터 이부자리까지 지역 제품이다. 게다가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처마 너머 산세가 펼쳐지고 창문을 열면 레이어를 통해 보이는 원경과 차경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곳. 그 정도는 돼야 겨우 40대에 행복과 사랑을 테마로 하는 소설을 구상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 나의 우상이 자기만의 고독 속에서 못다 쓴 글을 쓸 수 있겠지. 선비들의 벗, 서안 앞에 앉아서….

칼럼니스트 겸 작가 (@kimkyu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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