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미 영화평론가
<산다>는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질곡을 그린 영화 <무산일기>로 데뷔한 박정범 감독의 차기작이다. <무산일기>에 이어 <산다>에서도 주연을 겸한 박 감독은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를 무대로, 가까스로 현실의 무게를 버티고 서 있는 불안정 노동자의 삶을 그린다. 정철은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진다. 영화는 살기 위해 악해지는 것도 불사하는 한 노동자의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린다.

자본주의 피라미드 밑바닥에서

영화가 시작되면 눈 쌓인 산속에서 홀로 나뭇등걸과 돌무더기를 치우는 정철의 모습이 보인다. 3년 전 산사태로 부모님이 흙더미에 깔려 돌아가시고, 집도 거의 무너져 내렸다. 정철은 반파된 집 안에 텐트를 치고 기거하면서, 조금씩 혼자서 집을 고치고 있다. 정철은 원래 건설노동자다. 공사장에서 수개월간 일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다. 알음알음 소개와 하청으로 맺어진 고용관계에서, 용욱이란 사람이 중간에서 돈을 받아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철에게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누나와 조카가 있다. 연극배우를 꿈꿨던 누나 수연은 공장을 다니며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 하나를 낳았다. 3년 전 부모님의 죽음은 수연의 정신질환을 더 악화시켰다. 수연은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는 죄책감으로 피가 나도록 자해를 하거나,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로 발작을 일으킨다. 혼자서 길거리를 헤매거나 터미널에 앉아 있다가 아무 남자하고나 정사를 나눈다. 수연은 증상이 심해지면서, 예전부터 다니던 된장공장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정철은 수연의 몫을 벌충하기 위해, 수연을 사랑하는 친구 명훈과 함께 된장공장에 가서 일을 한다. 나이 많은 노동자들보다 손이 빠른 정철은 사장이 노동자 2명을 해고하려는 틈을 타 자신이 아는 건설노동자들을 데려가 일자리를 빼앗는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는 것

영화는 강원도 변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내몰린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 준다. 건설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하자, 자재를 내다 팔려고 소장과 실랑이를 벌이다 몸싸움이 붙는다. 정철 역시 돈을 받지 못한 피해자지만, 정철의 소개로 현장에 온 노동자들은 정철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사라진 용욱과 정철이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정철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용욱의 집에 남아 있는 아들을 겁박한다. 아직 청소년인 용욱의 아들에게 지나치다는 명훈의 만류에도, 정철은 아예 현관문짝을 떼어 가며, 자신이 용욱과 무관함을 보인다.

된장공장은 겨울철에 일이 없는 강원도 지역에서 일당 8만원을 벌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다. 그런데 딸의 결혼자금이 필요한 강 사장은 무리한 생산량을 계약한다. 수공업 방식으로 메주를 만드는 된장공장에서 납품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작업속도를 늘려야 한다. 십수년째 일해 온 나이 든 노동자들이 느리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된다. 노동자들이 동요하는 사이 정철은 사장 앞잡이 노릇을 하며 해고자를 늘리고 그 자리를 건설노동자들로 채운다. 사태의 발단은 강 사장 딸이 부자와 결혼하기 위해 3천800만원짜리 TV를 비롯한 호화 혼수를 마련하는 데 있었지만, 그 사실은 알려지지 않는다. 노동자들끼리 몸싸움이 붙고, 더 힘없는 노동자들이 쫓겨난다.

사태는 여기서 봉합되지 않는다. 메주를 빨리 만들기 위해 덜 말린 메주를 사용하고, 발효 온도를 높여 해결하겠다는 사장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메주가 썩어 버리자, 강 사장은 자신의 판단착오를 시인한다. 그러나 강 사장의 딸은 사장의 입단속을 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메주가 썩은 원인과 책임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장 딸은 처음에는 수연을 ‘언니’라고 부르고, 사장이 2명을 해고하려 할 때 장기 근속자를 퇴직금도 없이 해고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입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공장 매출이 곧바로 자신의 혼수자금이라는 것을 인지한 뒤 태도가 돌변한다. 취향이 까다로운 시어머니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최고급 혼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그는 아버지보다 더 가혹하게 노동자들을 쥐어짠다.

하루 종일 CCTV로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딸에게 사장은 “CCTV는 원래 도둑을 잡기 위해 달아 놓은 것이지,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단 게 아니다”고 말하지만, 딸은 “저 사람들이 도둑인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답한다. 공장이 문을 닫고 모두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으면 메주를 썩게 한 책임자를 찾아내라는 사장 딸의 말에 노동자들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추리를 해 나간다. 결론은 가장 약자인 수연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휴머니즘을 지향하되, 낭만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 주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하다. 임금체불과 해고도 끔찍하지만, 자본가와의 관계를 조망하지 못한 채 노동자들끼리 싸우거나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에 놓인 게 더 끔찍하다. 정철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영화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위계뿐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의 위계를 보여 주며 밑바닥에 깔린 존재를 보여 준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수연과 아비 없는 하나와 바보 취급을 당하는 명훈이다. 이들은 동물의 처지에 공감한다. 하나는 굶주린 앵무새를 놓아 주고, 명훈은 병아리를 부화시키려 하며, 수연은 부화 직전 패대기쳐진 병아리들을 묻어 주며 운다.

영화는 명훈의 입을 통해 도덕적 당위와 낭만의 말을 들려준다.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어요. 우리가 지켜야 해요.”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건 다 별이에요.”
“너는 누나가 아픈 것을 알아야 해. 너는 안 아프냐. 나는 네가 진짜로 아파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명훈이 아닌 정철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이어 간다. 악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명훈의 착함을 가치 있게 여기지만, 이를 준거로 삼기에는 노동자의 현실이 너무나 팍팍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살기 위해 악해지는 것도 불사하는 정철의 모습을 보여 줄 뿐, 그에게 도덕적 판단을 가하지 않는다. 앵무새를 풀어 준 하나는 회개를 강조하는 목회자의 강론을 듣고 오히려 헌금을 훔친다. 하나가 생각하기에 앵무새를 풀어 주는 것은 절도가 아니요, 헌금을 훔치는 것도 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철 역시 스스로의 도덕적 판단을 통해 행동한다. 영화는 정철이 무너져 내리는 집에 기둥을 받치느라 안간힘을 쓰고, 집 나간 수연의 귀가 길을 밝히기 위해 가로등을 다는 노동의 과정을 생생한 육체의 질감을 살려서 담는다. 그렇게 버티며 산다. 온통 절망뿐이지만, 가까스로 희망을 이어 가며 산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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