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만(56·사진) 한국노총 위원장은 “벽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더 이상 논의는 의미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7일 밤 10시 김 위원장은 그렇게 제4차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린 서울 중구 사보이호텔을 나섰다. “이제 그만합시다”는 한마디를 남긴 채…. 당시 노사정 협상 막판 쟁점은 일반해고 요건 완화(저성과자 퇴출)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기준·절차 완화였다. 함께 자리했던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대환 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손목을 잡았다. 한국노총은 그러나 이튿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정 협상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그리고 빨리 해결하려는 정부의 조급증이 협상을 결렬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처음부터 의제설정이 잘못됐다”며 “정부는 청년실업을 정규직 과보호 탓으로 돌리면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싸움 붙이기에만 열을 올렸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협상 막판까지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기준·절차 완화 의제를 놓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고 술회했다.

“노사정 협상 결렬, 나도 아쉽다”

노사정은 올해 1월부터 노사정위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한국노총·한국경총·중소기업중앙회·대한상공회의소·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가 협상에 참여했다.

노사정위가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협상을 지속할지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이다 그해 12월2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을 담은 기본합의문을 채택했다. 6일 뒤인 같은달 29일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고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각자 논의할 의제를 던지면서 협상은 본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결말은 결렬이었다.

김 위원장은 한 달 반이나 지났는데도 협상 과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조급증이 협상을 결렬시켰다”고 비판했고, “나 역시 협상이 결렬로 끝나 아쉽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러면서 “한국노총은 대화를 거부하는 조직이 아니다”며 재협상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물론 전제는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때”였다. 다시 노사정 협상 결렬 당일로 돌아가 보자. 왜 지난달 7일이었을까.

- 노사정 협상 결렬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협상 막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네 번 했다. 회의 때마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3차 회의까지는 전체 안건을 쭉 훑으면서 조율할 것은 하고 이견이 있는 사항은 상호 의견을 듣는 식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지난달 7일 열린 4차 회의는 노사정 간 이견이 가장 큰 핵심 쟁점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일반해고·취업규칙 두 의제는 반드시 들어내야(빼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들어낼 수 없다면 차후 논의과제(이번 협상 다음 과제로)로 넘기자고 했다. 실제 기간제·파견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하는 비정규직 의제는 9월 국회로 넘기지 않았나. 그럼에도 정부와 노사정위는 계속 문구를 수정하는 식으로만 접근했다. ‘근본적 차이가 있구나. 이 벽을 넘을 수 없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더 이상 논의는 의미 없다는 생각을 했다.”

최경환 부총리, 실적 올리려 노동계만 압박

- 정부는 두 가지 의제를 왜 고수했을까.

“처음부터 의제를 잘못 설정했다. 정부는 청년실업을 정규직 과보호 탓으로 돌리면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싸움 붙이기에 열을 올렸다.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하겠다며 두 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앞장서 그런 주장을 펼쳤다. 경영계는 오히려 입장이 (정부에 비해) 두루뭉술했다. 지난해에만 금융권에서 3만여명이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같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도 해고는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가 아니라 기업 과보호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조급증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 노사정이 협상시한으로 정한 3월 말이 다가오자 한국노총은 논의시한 연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3월 말까지 끝내야 한다”고 노동계를 압박했다. 협상은 4월 초까지 진행되다 결렬됐다. 지금은 오히려 정부가 대화를 지속하자고 요구하는 실정이다.

그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그것도 빨리 해결하려고 했다”며 “욕심이 너무 앞섰다”고 지적했다. 당시는 정부가 내세웠던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데다, 공무원연금 개편도 어려움을 겪을 때였다.

김 위원장은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날을 세웠다. 그는 “협상장 밖에서 정규직 과보호론을 설파하면서 노동계에 합의를 종용했다”며 “실적 올리기(노사정 합의)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최 부총리는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노사정 합의사항, 있었나 없었나

노사정위는 한국노총이 협상 결렬을 선언한 후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논의 초안’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다. 문서에는 △청년고용 활성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노동시간단축·통상임금·정년연장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등 5개 항목에 걸쳐 50여개 세부과제에 대한 논의사항이 담겨 있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노사정 간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시행하고 이견이 있었던 사안은 의견을 수렴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노사정대표자회의 과정에서 합의한 사항이 있나.

“패키지 딜(일괄 타결)을 주장한 것은 정부다. 한꺼번에 하자고 해 놓고 사안별로 합의했다 안 했다를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설령 특정 사안에서 의견접근이 됐더라도 패키지 딜에서는 전체적인 균형이 맞아야 한다. 의제를 하나씩 훑어보다가 ‘이건 이견이 없었으니 합의된 사항’이라고 정리하는 게 말이 되나. 노사정 협상의 결론은 결렬이다.”

정부, 실업급여 최대 2조5천억원 증액 제안

- 협상 과정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혹시 분위기가 좋았던 적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이 의제로 나오지 않았을 때다. 그때 그나마 분위기가 괜찮았다. 이기권 장관은 노동현안에 밝았고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 김대환 위원장과 박병원 회장도 마찬가지다. 입장은 달랐지만 진지하게 협상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단가 후려치기나 불공정 거래를 없애야 한다. 이런 내용에서는 노사정 모두가 공감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분위기가 좋았다. 게다가 정부는 실업급여 지급기간과 액수를 늘리겠다고 제안했다. 최대 2조5천억원을 더 지급하겠다고 했다. 최근 들어 보니 합의를 못했으니 그것도 안 하겠다고 하더라.”

- 노사정 협상이 결렬로 끝나 아쉬운 점은 없나.

“노동현안이 국민적 이슈로 떠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협상 과정에서 노사정 대표자는 물론 실무자들도 최선을 다했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한편 국민에게 노동현안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였다. 한국노총 입장도 널리 알려졌다. 그 결과로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했다. 비정규직 800만명, 최저임금 노동자가 230만명인 시대다. 사회 양극화가 심하다. 청년실업도 해결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와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안을 내놨다. 그래서 합의가 무산됐다. 실업급여 확대 같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쉽다.”

노사정 대표자들 잇단 조우, 협상 재개?

김 위원장은 인터뷰 하루 전날인 20일 노사정 협상 결렬 후 이기권 장관을 처음 대면했다고 했다. 한 언론사가 주최한 페터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회 위원장 강연회 자리였다. 인터뷰 당일인 21일 오전에는 롯데그룹 상생경영 노사문화 선포식에서 이 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박병원 경총 회장도 참석했다. 모처럼 협상 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길게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고 간단하게 인사만 나눴다”고 말했다.

인터뷰 다음날인 23일에는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페터 하르츠 조찬간담회를 이유로 김 위원장과 이 장관,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또다시 모였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최근 노사정 대표자들이 잦은 만남을 갖고 있다.

▲ <정기훈 기자>

- 노동부는 대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재개 가능성이 있는가.

“한국노총은 대화를 거부하는 조직이 아니다. 어차피 입법과제는 국회에서 풀어야 한다. 노사정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 대화 재개 여부보다는 노사든 노정이든 진정성 있게, 신뢰를 갖고 대화에 나설 자세가 돼 있는지가 중요하다. 협상 결렬 때도 노동계 요구를 분명히 밝혔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를 포함한 5대 수용불가 사항을 철회하면 언제든지 다시 대화할 수 있다. 반면 이를 강행한다면 총파업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지금 노사정 분위기로는 대화 재개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 한국노총이 다음달 15일부터 총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하는데.

“다음달 초부터 임원들과 사무총국 간부들이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총파업 투표와 압도적 찬성을 독려할 계획이다. 총파업 찬반투표 참여율과 찬성률은 현장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정부는 벌써부터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를 몰아붙일 기세다. 공무원연금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노동계에 대한 공세를 시작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을 저지할 것이다.”

노사 신뢰·발전 위해 경영참가 확대 필요

- 한국노총 위원장으로서 어떤 활동을 펼쳐 나갈 계획인가.

“양극화에다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까지…. 노동현안이 쌓여 있다. 비정규직·미조직 조직확대와 한국노총 조직혁신 같은 공약도 아직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해야 할 일이 많다. 노동계 지도부로서 장그래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다.

최근 관심사는 노조의 경영참여다. 하르츠 개혁이 열풍인데,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제도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신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경영상황을 노사가 함께 공유하고 같이 결정할 때 기업경영이 투명해지고 상호 신뢰도 생긴다. 하르츠도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때 기업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김 위원장은 23일 하르츠와의 조찬에서도 독일 노사 공동결정제도의 중요성을 묻고 한국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독일식 강력한 산별노조와 경영참가 제도가 보장돼야 한국 노사관계가 한층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덧붙일 말이 없냐”는 질문을 받고서는 “매일노동뉴스가 올해로 창립 23주년 아니냐”며 “어서 빨리 모든 노동자가 아침에 볼 수 있는 언론사로 자라나길 희망한다”는 덕담을 건넸다. 그는 “매일노동뉴스만큼 노동자에게 애정을 갖고 취재하는 언론은 없다”며 “일취월장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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