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같은 정책도 어떤 조건에서 추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좋은 약도 상황에 따라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과 폭스바겐 아우토5000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광주광역시의 구상이 그렇다.

광주시 계획은 지역의 노사협력 모델을 만들어 현대차그룹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게 핵심이다. 얼마 전 현대차가 발표한 81조원 투자 계획을 타깃으로 한 듯하다. 임금을 기아차 노동자의 절반 정도로 하고, 노조의 쟁의를 통제할 수 있으며, 시 당국을 비롯해 지역사회 전체가 공장 증설에 협조하면 괜찮은 공장 입지조건이 된다는 구상이다. 광주시는 이런 식으로 자동차산업밸리를 만들어 광주를 자동차 특화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수출대기업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이 계획은 가능성 여부를 떠나 과연 광주시에 적합한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미 광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수출대기업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 500인 이상 기업의 고용 비중이 전국 평균 16%인데, 광주의 경우 이보다 훨씬 높은 25%다. 전남도 20%나 된다. 광주·전남권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것을 감안하면, 수출대기업 중심 일자리 창출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수출대기업들의 부가가치 낙수효과가 낮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일부에게 좋은 일자리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과연 이런 게 광주시가 시민 모두를 위한 일자리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다음으로 노조의 양보와 타협을 투자 유치의 핵심으로 두고 있는데, 이 또한 상당히 문제가 있는 방향이다. 올해만 해도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조합원 두 명이 비정규직 문제와 노조탄압에 항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광주전남 일대에 있는 공장들의 노조탄압도 포스코·쓰리엠 등 꽤나 유명한 사례가 많다. 노조의 양보와 타협 이전에 노동기본권도 보장이 되지 않고 있는 게 광주 노동자 다수의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먼저 개선하지 않은 채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의 양보와 타협만을 강조하면, 다수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아예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게 된다.

한국의 노동권 현실을 보면 독일의 사례를 가져오는 것도 사실 적당하지 않다. 슈투트가르트나 볼프스부르크 아우토5000의 전제는 지역 금속노조가 가진 막강한 교섭권이었다.

슈투트가르트 지역에서는 90년대 초반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위협받자 금속노조 지역지부가 대안을 제시했었다. 당시 금속노조가 제안한 주요 내용은 비용절감을 비용 자체가 아니라 생산성 문제로 봐야 하고, 기업은 새로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 및 시장전략을 개발해야 하며, 지역 주력 산업을 하이테크산업으로 이동해 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노동 및 직업구조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속노조가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건 초기업적 교섭권 행사가 가능했고, 제조업 기업 대부분이 그 크기에 상관없이 노조로 조직돼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 조직률이 10%도 되지 않고, 그나마 있는 노조들도 틈만 보이면 탄압을 받는, 초기업적 교섭권은 애시당초 자본에게 논의대상 조차되지 못하는 한국과는 천지차이다.

그렇다면 노동기본권도 보장 못 받는 상태에서 독일식 노사타협의 껍데기만 가져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볼프스부르크 아우토5000 프로젝트는 똑같은 폭스바겐 공장에 비해 80%의 임금만 받으며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노동시간으로 일을 하는 공장을 짓는 노사합의였다. 이 프로그램은 8년 동안만 운영되고, 금속노조 영향력하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종료되자 2009년부터 이 공장은 폭스바겐으로 통합돼 똑같은 노동조건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공장이 세워지면 아마도 영원히 차별받는 비정규직 공장으로, 노동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며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도 매번 진행되는 공장이 될 것이다. 이미 광주에도 이런 비정규직 공장, 소리 소문 없이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공장이 부지기수다. 노조의 감시가 없으면 이렇게 된다.

광주형 일자리는 겉만 독일을 따라한다면 오히려 노동권 하락만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광주를 노동권의 모범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먼저 나왔으면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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