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무등지사)

대상판결/ 광주고법 2012나4847 근로자지위확인

Ⅰ. 사안의 개요와 쟁점
A회사 사내하청업체에 재직 중인 근로자들은 파견법상의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A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제1심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으나 상급심은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면서 옛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지위에 있음을 인정하고 개정된 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들에게 고용의무가 있음을 인정했다.

근로자들은 A회사와 사내하청업체가 위장도급으로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으나 상급심은 이를 배척했다. 하지만 판단 이유는 불분명했다. 여기서는 묵시적 근로관계와 근로자파견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Ⅱ. 판결의 요지 및 판결 이유

상급심은 묵시적 근로관계와 관련해 “협력업체들은 사업주체로 활동하면서 사업자등록을 하고 4대 보험료를 납부한 점, 독자적인 취업규칙을 마련해 근태관리권을 행사한 점, 각종 수당을 지급하고 4대 보험료 등을 원천징수한 점, 도급계약 자체의 효력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점, 피고의 근로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고 근무내역을 확인하며 근무복 등 소모품을 구입·지급하고 도급계약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피고에게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기도 한 점,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행위를 한 점 등을 비추어 피고의 협력업체가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Ⅲ. 비판적 고찰

1. 근로자파견을 인정한 사유

상급심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A가 교부한 공정개요·공정흐름도·제조공정기술지침·관리표준·안전관리지침 등에 따르거나 당일의 구체적 작업물량에 따라 작업하므로 사실상 피고로부터 작업수행 자체에 관해 지시를 받은 것과 다를 바 없었던 점, 피고 직원들이 직접 또는 현장대리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개별적·구체적인 작업내용을 구두 또는 표식부착 등의 방법으로 지시하거나 부적절한 작업수행 결과에 대해 지적을 했고, 돌발상황이나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작업수행에 관여해 작업내용을 변경하거나 협력업체 근로자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했던 점, A의 지시나 관여 없이 임의로 해당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 대법원에서 근로자파견으로 인정된 사례를 고려할 때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해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상급심은 이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항을 추가해 판단했다.

1) 원고들이 A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여부와 관련해

A의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A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피고 직원들이 근무하는 시간동안 A가 제공한 재료와 작업도구를 사용해 A가 제시한 각종 작업기준·안전기준·시설관리기준을 준수하며 작업을 수행한 점, 원고들은 일련의 타이어 제조공정 중 하나 또는 하나의 공정 중 세분화된 작업단계에 참여했는데 그 전후에는 A사 직원들이 참여하는 공정 내지 작업단계가 접속해 있었으므로 사실상 A사 직원들과 혼재돼 타이어 제조작업 내지 특정한 공정을 협업해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점, 원고들이 수행한 작업은 종전에는 A사 직원들에 의해 수행되던 것이거나 A사 직원들과 교대로 수행되던 것이었으므로, 원고들은 사실상 A사 직원들과 같은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원고들이 작업과정에서 잘못해 작업에 장애가 생길 경우 A사 직원들이 이를 해결하기도 한 점, 원고들은 비록 추가 발주 형태를 취하기는 했지만 도급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으므로 피고를 위해 사실상 도급업무 밖의 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어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원고들은 A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

2) 사내하청업체가 근로자의 선발과 근로자의 수, 작업·휴게시간,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여부에 관련해

사내하청업체들은 별도의 취업규칙을 마련하고 근로자를 선발해 인력배치표를 작성하고서 도급업무에 투입한 뒤 이들의 휴가신청 등을 허가하고 안전교육을 실시하며 근무내역을 확인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원고들은 근무하기 시작한 이래 그 담당공정이 변경된 적이 없어 보이는 등 사내하청업체로부터 업무수행과 관련해 업무배치권을 실질적으로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A는 사내협력업체 선정과정에서 상당한 재량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고 그 운영과정에서도 사무실 등 일부 물적 시설을 제공하고 근로자들의 인건비·학자금·작업복 구입 등의 복리후생비·운영소요비용 일체는 물론 계약상 지급의무가 없는 격려금·운영손실보전금까지도 지급해 줬으며 협력업체 교체과정에서도 그 소속 근로자들이 신규 협력업체에 그대로 고용승계돼 해당 직무에 계속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실상 협력업체 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 점, A는 종래 도급계약 체결과정에서 인건비를 감안한 일정한 액수를 도급비로 정한 뒤 이를 산정·지급하기 위해 A사 직원을 통해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출퇴근·휴가 등 근태상황을 파악하도록 해 용역사별 근태종합표를 작성·관리한 점, A는 일부 도급비 산정기준을 작업물량으로 변경한 이후에도 추가도급비와 관련해서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태상황을 기준으로 도급비를 산정·지급하고 있어 여전히 그 근태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사내협력업체는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작업·휴게시간, 근무태도 점검 등에 있어 피고의 영향을 받았다

3) 원고들이 맡은 업무가 A사 직원이 하는 업무와 구별되고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어 독립된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여부와 관련해

원고들이 수행한 작업은 A사 직원이 예전에 수행했거나 다른 공장에서는 상시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업무로서 동질의 것에 불과하고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으로서 특별한 전문성·기술성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닌 점, 피고의 협력업체의 도급목적은 세부적으로 구분된 작업단계들 중 일부의 수행으로 특정돼 있어 독자적으로 진행·완성시켜야 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세부작업에 필요한 단순한 ‘노무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A는 종래 피고의 협력업체에게 손해배상의 담보를 요구한 적이 없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도 없었으며 사내하청업체로부터 계약이행보증보험증권 등을 제공받은 뒤에도 2012년 5월까지는 여전히 협력업체의 작업불량·파업 등과 관련해 협력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A는 종래 사내협력업체가 투입한 근로자의 수 등 근로정도에 따라 도급비를 지급했고 그 도급비산정기준이 작업물량으로 변경된 이후에도 추가도급비를 같은 방법으로 산정해 지급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맡은 업무가 독자적인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고 피고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업무내용이 피고 직원의 업무내용과 구분된다거나 최근 일부 도급비에 관한 계약서 소정의 산정기준이 작업물량으로 변경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이를 뒤집기 어렵다.

2. 묵시적 근로관계 부인 사유와 근로자파견 인정 사유의 충돌

상급심이 묵시적 근로관계를 부인하기 위해 인정한 사실은 중 사업자등록은 A의 경비 처리를 위해 필요한 점, 상급심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A가 4대 보험료·갑근세 등을 산정해 지급하고 이를 사후 정산하기 때문에 4대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 등을 납부해야 하는 점, 근로기준법에 의해 취업규칙을 신고해야 한 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 점 등은 모든 사내협력업체가 법상 당연히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것에 불과하다. 반면 근로자파견을 인정한 이유로 A가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해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는 것 외에 △원고들이 A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된 점 △사내하청업체가 근로자의 선발, 근로자의 수, 작업·휴게시간,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지 못한 점 △원고들이 맡은 업무가 A사 직원들이 한 업무와 구별되고 않고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결여돼 독립된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 △사내하청업체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아니한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외형상으로는 사내도급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묵시적 근로관계를 인정한 현대미포조선 사건(대법원 2008.7.10 선고 2005다75088 판결)의 경우에도 사내하청업체는 사업자등록을 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해 4대 보험료를 원천징수했으며 취업규칙을 제정해 적용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했다는 점에서 상급심이 묵시적 근로관계를 부인한 이유가 미흡하다고 할 것이다. 반면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 든 네 가지 사항(작업에 있어 지휘·명령은 제외)은 근로자파견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묵시적 근로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Ⅳ. 결 론

상급심이 A사에 대해 근로자파견을 인정하면서 묵시적 근로관계를 부인했으나 근로자파견을 인정한 4가지 사유는 묵시적 근로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이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법원이 묵시적 근로관계 판단 기준과 근로자파견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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