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1일 비가 내렸다. ‘나를 울려 주는 봄비’일 리는 없었다. 세상이야 통곡을 하든 말든 내리는 비일 뿐이었다. “하이디스 생존자 2일째 실종. 실종신고 상태예요. 이를 어째, 지회도 멘붕 상태네요”라는 소식에 이어 “하이디스 전지회장 배재형 동지 자결, 설악산에서 발견됐다네요” 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문자로 지난 10일 오후에 실종을 읽고, 11일 오후에 죽음을 읽었다. 10일에는 ‘어디 바람 쐬러 갔겠지’ 생각했었고, 11일에는 ‘그는 무슨 일을 당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냐’고 물었다. 회사가 공장을 폐쇄하고서 노동자들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로 내쫓은 사업장, 이천 하이디스테크놀로지㈜에서 그는 지난 3월31일 정리해고로 쫓겨나지 않고 살아남은 ‘근로자’였다. 하이디스에서 30여명은 희망퇴직·정리해고되지 않고 공장시설과 함께 남겨졌다. 시설유지 등을 위해서였다. 그는 노동절에 남겨진 조합원들과 함께 쉬었다. 그 일로 공장시설 작동이 멈춰 업체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사용자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운운하는 협박을 조합원들은 받았다. 회사 전아무개 대표이사는 최근 사내게시판에 올린 본인 명의 글에서 “단순한 개별 무단결근에 그치지 않고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생명·신체·재산상 피해를 야기하는 위법행위로 결코 허용될 수 없다”며 “무단결근자에 대해 사규와 법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회사측은 “무단 휴무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신청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지난 13일 매일노동뉴스는 보도했다. 결국 하이디스의 ‘근로자’였던 배재형은 “저의 순간의 실수(잘못)로 인해 투쟁에 찬물을 끼얹어 죄송하다”며 “5월1일 일은 제가 다 주동했고, 제가 다 책임지고 가겠다”고 유서에 쓰고 죽었다. 그는 전 지회장이었다. 지회와 조합원들에게 손배 청구를 하지 말라고 실종되기 직전까지 사용자에 호소해 왔다고 했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직접적으로는 손배 청구 협박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인가.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문해 봤다. 하이디스지회를 자문해 온 내가 사측의 손배 청구는 조금도 겁먹을 것 없다고, 사측의 공갈일 뿐이라고 보다 단호하게 조합원들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던 것이 이런 일을 초래하고만 것이냐고 자문했다. 내 책상에 탁상용 달력에는 지난 4일 오후 6시30분 하이디스 교육이라고 일정이 기재돼 있다. 그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천공설운동장의 민주노총 이천시지부 교육장에서 나는 말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조합원으로부터 내 말을 전달받지 않았던 것인가. 배재형의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던 그날, 그의 주검이 머물고 있다는 속초도 비가 내리고 있다던 그날, 나는 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를 찾아서 스스로에게 묻고 세상에 물었다.

2. 노동절에 한꺼번에 휴일로 쉬었다. 그래서 회사가 설비관리 공급하는 업체 가동이 중단됐다고 100억원 이상 손해가 발생했다며 손해 배상시키겠다고 했다니, 그것이 결국 하이디스의 ‘근로자’ 배재형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니, 그가 살았고 아직도 그가 “억압·착취·탄압이 없는 세상으로 먼저 가 미안하다”고 유언을 했던 조합원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는 이상하다.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 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한다.” 법률명에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던 시절에 제정돼서 3월10일에서 5월1일로 개정된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은 노동절을 이렇게 유급휴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시행일을 명시한 부칙을 제외한 이 법률의 전체 내용이다.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근로자는 휴일이라니 쉬고 유급이라니 급여를 지급받는 날이다. 그렇게 국가가 법률로 정한 날이다. 2014년 10월7일 노사가 체결한 하이디스의 단체협약도 노동절 '5월1일'을 유급휴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제45조 제5호). 휴일이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근로제공을 하는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한 근로제공의무가 없는 날을 말한다. 법은 근로기준법에서 주휴일을, 위와 같이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에서 5월1일을 유급휴일로 정했다. 법에서 근로자가 근로계약상 근로제공의무에서 벗어난 날로 정하고 있으니 휴일에 쉰다는 것이, 근로자에게 무슨 법적으로 문제될 일이 아니다. 그저 법이 보장한 근로의 권리로서 휴일에 자유롭게 쉬면 되는 일이다. 휴일에 쉬겠다고 사용자에게 사전에 알릴 필요도 없다. 사전에 알리지 않고 쉬었다고 무단결근이라고 징계할 수도 없다. 징계하더라도 부당한 징계로서 무효라고 법원은 판결한다. 사전에 승인받지 않고 쉬었다고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법원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하이디스의 ‘근로자’ 배재형은 “저의 순간의 실수(잘못)로 인해 투쟁에 찬물을 끼얹어 죄송하다”며 “5월1일 일은 제가 다 주동했고, 제가 다 책임지고 가겠다”고 유서에 쓰고 죽을 일이 아니어야 했다. 휴일에 쉬었다고, 휴일에 조합원들이 쉬도록 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죄송하다 할 일도 아니었다. 5일1일에 조합원들이 쉬도록 주동했다고 해서 무슨 책임을 질 일도 아니었다. 국가 대한민국이 법으로 보장한 ‘근로자’의 휴일에 살아남은 하이디스의 ‘근로자’들이 쉬었다고 법적으로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휴일은 본래 그래야 했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무엇이라고 손해배상 청구니 민형사상 책임이니 사용자는 운운하고 하이디스 ‘근로자’ 배재형은 죽고 그의 조합원들은 통곡하고, 도대체 어째서 이 나라는 이 사달이란 말인가.

3. 대법원은 휴일근로를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쟁의행위라고 판결했다. 이 대법원 판례가 하이디스 ‘근로자’에게 휴일을 쉬었던 일이 법적 책임 운운하는 사용자의 협박으로 돌아오게 했다. 끔찍한 그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자. 대법원은 “노사 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에 작업상 부득이한 사정이 있거나 생산계획상 차질이 있는 등 업무상 필요가 있을 때에는 사용자인 회사가 휴일근로를 시킬 수 있도록 정해져 있어서, 회사가 이에 따라 관행적으로 휴일근로를 시켜 왔음에도,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정당한 이유도 없이 집단적으로 회사가 지시한 휴일근로를 거부한 것은, 회사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것으로서 노동쟁의조정법 제3조 소정의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1991.7.9 선고 91도1051 판결). 이 판례가 휴일에 이 나라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쉬는 것을 법적으로 비난하도록 만들었다. 이 대법원 판례가 없었다면, 대법원이 휴일에 쉬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법적 권리라며 혼자 쉬든 집단적으로 쉬든 자유라고, 사용자는 쉰 노동자에게 급여나 지급할 일이지 징계니 손해배상 청구니 할 일이 아니라고 선언했다면 하이디스를 포함한 이 나라 노동자들은 마음대로 휴일로서 노동절에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법원은 집단성 등을 문제삼아 쟁의행위라며 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휴일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날로, 근로제공의무를 다해야 하는 날로 만들고 말았다. 어디 법에 노동자들이 제 주장관철을 위해 집단적으로 쉬면 쟁의라서 그것은 휴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더란 말인가. 휴일을 보장한 법을 구체적으로 해석·적용한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휴일의 사용방법을 제한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번에 하이디스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절에 한꺼번에 쉰 것이 법적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위 대법원 판례는 어디까지나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집단적으로 회사가 지시한 휴일근로를 거부한 것이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휴일을 사용한 것이 쟁의행위라고 볼 일이 아니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노동절에 노동조합의 지시에 따라 임단협 등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집단적으로 휴일근로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쟁의행위라며 법적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하이디스지회조차도 이런 일이 발생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유서의 말을 다 믿는다 해도 기껏해야 그저 우리도 한번 노동절에 쉬어보자고 배재형이 “다 주동”해서 쉬었던 일이 하이디스에서 5월1일에 있었을 뿐이다.

4. 법이, 단체협약이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노동절로 휴일이라고 정하고 있는데도 이 나라 노동자는 그 휴일에 쉬는 일이 당연하지 않다. 이것이 오늘 하이디스에서 배재형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많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으로 휴일 사용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근로제공의무가 없는 날이라고 휴일을 선언해 놓고 한꺼번에 사용한다고 쟁의행위라며 협박하고 법적 비난을 하는 나라는 이상하다. 헌법 제32조에서 근로의 권리를 근로자의 기본권으로 선언한 나라에서는 이상한 일이어야 마땅하다. 법이 보장한 휴일을 집단성 운운하며 근로일로 변질시키는 판례는 이상하다 비난받아야 한다. 부정돼야 한다. 집단적으로 노동절에 쉬었다고 하이디스 ‘근로자’ 배재형이 "다 책임지고 가겠다"며 죽을 일은 결코 아니다. 자신보다 조합원들을 더 사랑한 노동자 배재형, 그가 법적 비난을 받을 일이 아니다. 이 나라 법원이 책임질 일이거나, 손해배상, 민형사책임 운운하며 협박하는 사용자가 비난받을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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