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전 민주노총 위원장)
우리나라 헌법 제33조1항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 보장을 위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즉 노동 3권을 인정하고 있다. 헌법의 구속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 이주노동자도 포함된다. 이주노동자는 당연히 노동 3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 당연한 권리가 대법원의 직무유기로 외면당하는 사이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보당한 채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1990년 이후 이주노동자가 급증하고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던 중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지만 노동 3권은 보장하지 않는다.

고용허가제의 주요 문제점은 첫째 사업장 이동 제한이다.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면서도 정부 차원의 근로감독과 근로조건 개선 노력이 없는 가운데 사업장 이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매일 수밖에 없고, 강제근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둘째는 단기순환 원칙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거의 10년간 체류하더라도 계속적으로 임시노동자로서 불안정한 지위를 가지며 정주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가족초청이나 동반 역시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셋째는 불안정한 체류자격으로 인한 취약한 노동권리다. 고용주가 동의해야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경우가 많고, 고용주가 동의해야 체류연장이 보장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고용주는 근로조건 개선 없이도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2015년은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1년이 되는 해인데도,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인권은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7월2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 제도다.

이러한 노동기본권 침해와 차별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워야만 하는데, 그 주체인 노동조합 설립을 안타깝게도 대법원이 가로막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에 근거해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들은 2005년 4월 노동조합을 창립하고, 그해 5월 노동부에 설립신고를 했다. 노동부가 억지 논리로 설립신고를 반려한 이후 법원으로 넘어가 결국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남겨 놓고 있다. 대법원은 신속히 판결을 내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 부당한 차별과 탄압에 맞서도록 해야 함에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판결을 미룸으로써 이주노동자를 법 밖에 방치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올라 있다. 170만명이 넘는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제약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노동탄압국으로 남아 있다. 더군다나 법의 정신에 따라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대법원이 8년 이상이나 판결을 미루고 있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될 수 없다. 대법원이 하루빨리 이주노조 설립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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