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배를 만들 돈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회사 문을 닫을 지경으로 경영상태가 엉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채권단이 추가 자금지원 결단만 해 주면 2년 안에 정상화할 수 있어요. 저기 도크 보이시죠? 빈자리 하나 없이 수주물량이 넘치는 상황입니다. 통영 인구가 어림잡아 14만명 정도 되는데요. 통영 최대 제조업 사업장인 성동조선이 이렇게 무너지면 2만4천명에 달하는 성동조선과 협력업체 직원들의 생계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정동일(42·사진)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장의 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4일 오전 경남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 성동조선해양 지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년치 일감 쌓아 놓고 문 닫을 판"

용접기 생산업체 성동산업을 모태로 하는 성동조선해양은 2003년 선박블록 제조공장을 설립하며 조선산업에 뛰어들었다. 기존 중대형급 조선소와 비교하면 후발 신생 조선소이자 중형급 조선업체다.

성동조선은 설립 이후 중형급 상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8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위기에 내몰리기 시작했다. 수주계약이 잇따라 취소되고, 당시 국내 수출 중견기업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키코(KIKO)로 약 1조5천억원에 달하는 환차손 피해를 입으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성동조선이 2011년 3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게 된 배경이다.

“2011년 자율협약이 시작되고 2013년까지 성동조선과 사내하청업체 직원 9천명 중 5천500명이 구조조정됐어요. 동료들이 떠나가는 것을 뼈를 깎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채권단이 저가수주에 반대해 일감을 더 들여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무구조 개선작업이 진행됐죠.”

이런 과정을 거쳐 성동조선은 지난해 재도약의 계기를 맞은 것처럼 보였다. 수주 실적도 향상됐다. 이달 기준 성동조선의 수주잔량은 75척이나 된다. 2년치 일감이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방문한 성동조선 조립공정과 도크는 작업 중인 배로 가득 차 있었다.

중형조선소 줄도산 현실화하나

지난 5년간 성동조선에는 2조원이 넘는 자금이 지원됐다. 채권단은 성동조선의 청산가치보다 기업존속가치가 크다고 보고 자금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추가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채권단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깨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채권단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역보험공사도 그렇고 민영화를 앞둔 우리은행도 그렇고 해당 조직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도 노동자 2만4천명의 생계가 달린 문제입니다. 어느 한쪽이 살아서 다른 한쪽을 죽이는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럴 때 정부가 나서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부가 이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성동조선의 최근 상황은 조선업계 특유의 대금회수 방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선박 수주시 계약금액의 10~20%만 받아 배를 만들고, 나머지 금액은 선주에게 배를 인도할 때 받는 헤비테일(heavy-tail) 방식이 일반화돼 있다. 일감은 많은데 돈이 없는 이유다.

성동조선이 처한 위기는 우리나라 중형조선소가 이미 겪었어나 앞으로 겪을 위기를 대변한다. 통영에 위치한 신아SB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사 위기를 겪은 SPP조선·대한조선·STX조선해양이 채권단 자율협약 방식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이들 업체의 동반몰락이 현실화하면 대규모 고용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 업체의 주력 선종인 중소형 선박시장을 경쟁국인 중국에 모조리 빼앗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 지회장은 “시장을 한 번 뺏기면 그 시장을 다시 찾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조선강국의 자존심을 지켜 갈 수 있도록 정부와 채권단의 결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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