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위기설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고부가가치 선박을 제조하는 조선선진국과 후발주자로 맹렬하게 추격하는 중국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라는 게 위기론의 근거다. 그런데 위기론이 현실이 되고 있다. 중소조선소들이 첫 피해자들이다. 물량을 확보하고도 조선업 특유의 대금회수 방식 탓에 자금난을 겪고 있다. 세계 9위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마저 법정관리될 처지에 놓였다. 그야말로 고사 위기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중소조선소 위기 탈출 해법은 무엇일까.

통영지역 최대 사업장의 몰락, 정부는 두고만 볼 건가

정동일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장

통영지역 최대 사업장인 성동조선해양은 통영시 전체 기업 매출의 60%, 수출의 91%를 담당해 왔다. 직영과 사내·외 협력업체 사원 2만4천여명의 고용을 직·간접적으로 책임져 왔다. 2010년 자율협약(채권단 관리)을 체결한 뒤 임금동결과 구조조정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며 노사가 함께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해 실시한 기업실사에서 성동조선은 청산가치보다 계속기업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고, 2013년부터 최근까지 총 4조8천억원(5월 기준 75척) 규모의 선박 수주를 확보한 상태다. 그런데 채권단인 우리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성동조선에 대한 자금지원에 반대함에 따라 성동조선은 일감을 확보해 놓고도 법정관리를 맞을 수 있는 비정상적인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노동자들은 채권단의 비금지원 부동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조선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기업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성동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선다는 것은 시장논리에 따라 일개 기업이 위기에 봉착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또 2만4천명에 달하는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이 길바닥으로 내몰리고, 통영 지역경제 역시 늪으로 빠져드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채권단과 관리 대상 기업이 자본의 논리로 대치하도록 방치하면, 우리나라 중소조선소의 내일은 없다. 정부가 조정자로 나서야 고용안정과 조선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생존과 재생을 위한 전략 필요하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조선산업은 전체적으로 침체상황이 이어져 왔다. 특히 중소조선소의 경우 시황 외에도 부채 누적에 의한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다는 난제를 더 가진 상태다. 시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채권단이 금융지원을 하면서 중소조선소를 끌고 가기에는 부담이 매우 클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조정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중소조선소가 건조하는 선박은 주로 범용선박으로 전체 해운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범용선박 시장을 중소조선소가 받쳐 주지 않으면 전 세계 조선산업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은 상당히 나빠질 것이다. 조정을 하더라도 설비와 인력을 유지하는 쪽으로 해야지 업체를 없애는 식으로 한다면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기반이 상당 부분 훼손될 것이다. 가급적 업계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응을 하면서 업계를 생존시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정부 일자리 지키기 관점으로 적극 개입해야 

허민영
경성대 교수

조선업종의 위기는 2009년부터 시작됐다. 금융위기로 무역량이 준 것이 원인이다.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같은 이른바 ‘빅3’의 경우 해양플랜트 등의 사업을 병행해 침체 속도가 완만했던 반면 배 만들기 외의 방도가 없었던 중소조선업소들은 타격이 심했다.

활황기에는 중소조선업소만 20~30개에 달했는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정부가 시장 원리에 따라 업소들끼리의 경쟁을 방치하고 살아남을 곳만 살아남으라는 식으로 중소조선업소의 위기를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이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조선업소가 문을 닫는 것은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를 의미한다. 위기에 처한 성동조선해양만 해도 상시고용인원이 1만여명이다. 정부가 중소조선소에 닥친 문제를 일자리 지키기의 관점으로 보고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조선강국이었던 일본의 경우 조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적극적으로 중소업체 간 통합을 주도했다. 우리 정부도 경쟁력을 갖춘 중소조선소들이 사라지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몸을 합쳐 살아남을 수 있는 여러 제도적인 지원책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는 기업 간 인수·합병은 필연적으로 일자리 절대량의 감소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재교육이나 전직지원은 인수합병의 전제조건이다. 선박회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곳은 주로 수출입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다. 정부가 정책 기조를 중소조선소를 살리는 방향으로 돌린다면 이들 금융기관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선업종의 전망이 단기간 급속도로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부가 스스로가 알아서 나설 가능성을 적다. 노조의 강한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내하청 정규직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체질 개선해야

정흥준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

중소규모 조선소의 위기는 2~3년 전부터 예견됐다. 2011~2012년의 실적부진이 지금 결과로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전에는 조선업종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도로 따라오고 있고, 지금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빅3 조선사조차도 경영난으로 허덕이고 있다. 왜 지금과 같은 위기가 발생했고, 왜 대비하지 못했는지 지적하고 싶다.

조선업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그런데 사내하청 비중이 굉장히 높다. 조선사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고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숙련도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배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투자를 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조선업종이 잘 나갈 때는 설비투자를 하지만 수주가 안 될 때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고용한다. 세계 9위의 성동조선해양도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을 것이다. 단순히 지금 어려우니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으로 살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국과 어떻게 차별화를 할 것인지, 앞으로 컨테이너 선박을 만드는 것을 뛰어넘어 해양플랜트 사업을 하고, 고부가가치 위주로 체질 개선을 할 수 있을지 계획을 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중국과의 경쟁에 밀려 지금과 같은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을 받은 대우조선이 회생한 것처럼 이미 선례도 있다. 고부가가치 조선사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기술력, 다시 말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숙련도를 높여야 한다. 정부도 조선업종의 불황을 개별 기업에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조선업종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조선업종의 미래 계획을 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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