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연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이달 7일 서울고등법원은 2012년 문화방송의 공정방송 파업에 대해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쟁의행위의 목적은 원칙적으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으로, 일반적으로 근로조건 등이 이에 해당되나, 반드시 임금 등 근로자의 경제적 지위의 유지·향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일반 사기업과 달리 전국적인 방송 송출을 함으로써 국민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도의 공공성을 가지고 방송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경우에는 그 사업 목적과 지위에 대한 법률상의 보장과 규율을 고려해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의 범주를 획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한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여러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근로환경 내지 근로조건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됐거나 또는 그러한 우려가 농후하게 됐다면, 근로자가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다가 그 시정이 거부됨으로써 쟁의행위에 나아가는 것은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에 해당하며, 목적상 정당한 쟁의행위가 된다"고 판단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 역시 "파업권의 행사를 통해 근로자가 옹호하는 직업상 이익 및 경제적 이익은 근로조건의 향상이나 직업적 성질을 가지는 사항에 대한 집단적인 요구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 문제와 근로자에게 직접적인 관심사인 기업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과도 관련돼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우리 정부에 상기한 바 있다.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기업이 직면한 문제’는 대부분 구성원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공정책의 문제를 함축한다.

법원은 방송사업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사용자의 공정방송의무 위반과 방송의 자유 침해행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에 관한 것으로서 정당한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법원은 열차사고의 근본원인 규명과 근본적 안전대책 수립 요구 등이 철도산업 종사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유지·개선에 해당하므로 정당한 조합활동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서울고법 2011라1409).

단적인 예로 20일째 파업 중인 서울대병원의 ‘성과급제’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협업시스템으로 의료의 질이 담보되는 공공의료 분야에서 과연 개인별 성과 측량의 기준은 무엇인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국립대병원의 성과 위주 시스템이 환자의 선택과 배제로 이어지지 않을지, 성과급제가 실시된 해외에서 과잉진료가 늘어나고 오히려 의료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 현재 제기되고 있는 질문을 하나씩 짚어 보더라도 국립대병원의 성과급제 문제는 비단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공공의료에 대한 정책철학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고도의 공공성을 갖고 있는 일터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 이전에 그들이 제공하는 ‘노동’ 자체가 이미 공공정책을 구현하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방송사업 종사 노동자는 사용자와 더불어 방송법상 공정방송의무를 부담한다. 철도산업 종사 노동자는 사용자와 더불어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철도안전법상 각종 의무를 부담한다. 교육·의료·환경에너지·교통·안전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그렇다. 공공정책은 서로 관련된 많은 의사결정 간 상호작용의 결과다. 사회적 합의를 이뤄 가는 과정에서 공공부문 종사자들인 공공부문 노동자야말로 자신들의 전문성과 책임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헌법상 노동기본권은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들의 업무가 파업으로 중단되면 ‘국민 불편’을 언급하면서 업무의 공공적 성격을 호출하는 정부는, 공공정책 입안 과정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을 일주체로 대우하지 않는다. 2013년 수서고속철도 민간개방 추진 당시 국토교통부는 철도노조를 하나의 대화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업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노조를 ‘정부 정책의 걸림돌이 되는 기득권 강성노조’로 왜곡하는 보도를 조장함으로써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정부 관료들의 명예훼손 불법행위가 인정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FTA 대책반이 통상전문가들에게 FTA에 찬성하는 신문기고문을 쓰게 한 뒤 건당 원고료를 홍보비로 지불하고, 고용노동부가 정규직 해고조건 완화 등을 포함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사업을 추진하면서 언론사에 수천만원을 주고 기사를 작성하게 하는 이 나라에서, 정책은 관료가 결정하고 국민은 홍보 대상일 뿐이라는 이 정부에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공공정책에 대한 파업권’을 논하는 것은 참으로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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