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어제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2015년 5월11일이었다. 비정규직노조 활동으로 해고됐을 때도, 불법파견 판결을 선고받았을 때도 뉴스가 됐지만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대법원 확정판결로 복직하던 어제는 아니었다.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통해서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고서 최초로 현대차의 정규직으로 복직한 날이었다. 그러나 수시로 개최하는 노조의 기자회견도, 웬만한 일에는 발표하는 노동단체의 성명서도 없었다. 분명히 이 나라 비정규직운동 역사에서, 나아가 이 나라 노동운동 역사에서 기록돼야 할 날이었다. 사내하청업체 소속이었다가 비정규직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김준규 등 3명은 사용자 현대차의 복직명령에 따라 첫 출근을 했다. 김준규는 2003년 6월3일에, 김아무개는 2003년 6월30일에, 심아무개는 2003년 7월3일에 해고됐으니 해고되고서 12년째의 일이었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노조가 조직되던 때부터 자문을 하고 수많은 민·형사소송 등 사건을 변호하고 대리해 왔던 내게도 어제는 다른 날과는 다른 날이어야 했다. 불법파견 근로자지위 소송을 대리해 왔던 자로서는 누구보다도 어제는 그래야 했다. 그러나 9년2개월 동안 재판을 진행하면서 언젠가 오리라던 ‘그날’이 주목받지 않은 날로 지나갔다. 그러니 나만 소송 대리의 변호사여서 어제를 ‘그날’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 조짐은 있었다. 지난 2월26일, 대법원이 파견근로라며 현대차 근로자라고 확정판결을 한 직후부터였다. 사용자 현대차가 4월 며칠이라고 복직 일시를 통보하고 서류제출 등 복직절차를 밟으라고 당사자들에게 연락되지 않는다며 소송대리인이었던 내게 통보해 왔던 때 이런 사실을 전달하면서, 절차 문제가 논란거리가 돼서 자칫 복직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해고자들의 대표, 2003년 6월9일 해고된 오지환에게 당부했었다. 울산공장 최병승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013년 1월9일자의 복직명령을 거부하고 있다고 뉴스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터에 소심해져서 한 말이었다. 최병승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최병승은 행정소송을 통해서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명령에 따라 사용자 현대차가 복직명령을 한 것이고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해서 아직 항소심에서 다투고 있으니 현대차 근로자라고 법원의 판결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미 민사소송을 통해서 현대차의 근로자라고 법원의 판결로 확정된 것이라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나는 비정규직 투쟁의 대의는 고려하지 않은 채 대리인 변호사로서 법적 노파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도 최병승처럼 언젠가를 알 수 없는 그날까지 비정규직 투쟁의 대의를 위해 버텨야 한다고 차마 나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 복직문제를 두고서 현대차에서 노사협상 소식이 들렸다. 해고 기간 미지급 임금문제도 있었지만, 주된 것은 원직복직 문제였다. 현대차 단체협약은 해고가 노동위원회 또는 법원의 판결에 의해 부당징계로 판명됐을 때는 “판정서 또는 결정서 접수 당일부로 징계무효 처분하며 원직복직 명령을 내”리도록 정하고 있다(제36조제1호). 이를 두고서 법원이 불법파견이라며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현대차 근로자라고 판결한 것이라서 이 단체협약을 적용해서 원직에는 복직해 준다고 합의해 줄 수 없다고 사용자 현대차가 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현대차는 사용자로서 어제까지 복직하라는 명령을 했다. 원직에 복직한다고 보장해 주지 않는데도 일단 복직할 것이냐, 부당한 복직명령에 불응할 것이냐.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현대차의 정규직이 된 4명의 노동자들에게 사용자는 선택을 강요했다. 그리고 김준규 등 3명은 어제, 역사적인 복직을 했던 것이고, 오지환은 복직을 하지 않았다. 감히 누가 어제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그들과 함께 비정규직 투쟁을 전개해 온 그들의 동지들만이 그 선택이 투쟁 전술로 적절한 것인지를 두고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복직해서 원직이 아닌 곳에 배치하면 그것이 부당하다고 싸우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원직 보장이 없는 복직명령을 부당하다며 복직을 거부해서 싸우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10년간 그들이 근로자지위 소송을 통해서 현대차에서 노동자의 권리, 나아가 이 나라에서 불법파견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권리를 열어 왔던 것처럼 원직복직이라는 문제를 두고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열어 갈 방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주에 김준규를 만나서도, 어제는 오지환과 전화를 하면서도 나는 복직에 관해서 물었다. 역사적인 날을 비정규직 투쟁의 승리의 날로 당당히 선언하고서 복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묻고 물었다. 내가 그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내가 그들이 될 수 없는 것이니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들의 선택이 무엇이라도 현대차에서 불법파견을 폐지하고 정규직화를 쟁취해 내는 그날까지, 노동자권리를 위해 함께 하는 한 그들의 투쟁을 법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내 일이라고 다짐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조짐은 있었고 염려했던 일이 어제 일어났다. 하지만 어제로 이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정규직을 대체해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세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김준규도, 오지환도, 또한 최병승도 결국은 그 길을 가는 것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3. 사용자 현대차가 원직복직을 명령했다면 어제 같은 일은 없었다. 현대차에서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까지 갖다 댈 것도 아니었다. 근로자지위 소송사건에서 법원은 현대차의 자동차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로서 근로는 사용자 현대차에 파견근로자로 사용된다고 했고, 따라서 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 현대차의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해당 공정에서의 근로관계가 파견법상 파견근로자로서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인정되게 된 것이다. 당연히 해당 공정에서 사용되는 사용사업주의 근로자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차에서 2003년 해고될 당시에 근무하던 공정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용자 현대차는 원직복직을 명령해야 했다. 그걸 약속하지 않고서 회사가 몇 곳을 정해서 통보할 테니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해서 따르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집단소송을 통해서 1천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추후에 현대차의 근로자로 판결받고서 일하게 될 것인데 그때도 원직복직이 아니라 사용자 현대차가 임의로 배치하게 될 수도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그 방법이 무엇이든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마땅히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투쟁할 일이고 이를 통해서 현대차가 사용자로서 의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4. 사실 비정규직 투쟁이 승리한다면 새가슴이 돼서 가슴을 졸여 댄 일은 쓸데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10여년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을 전개해 온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승리해야 마땅하다. 파견법 위반의 불법파견 사업장이라고, 비정규 근로자는 현대차의 근로자여야 한다고 법원이 판결을 선고했다. 울산공장 최병승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재심판정취소의 행정소송에서, 아산공장 김준규·오지환 등 4명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의 민사소송에서 대법원은 그렇게 판결했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정한 법대로라면 현대차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비정규직 투쟁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고 나는 새가슴이 될 일도 아니었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승리한다면 오지환도 최병승도 원직복직하게 될 것이니 가슴 졸일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오지환과 최병승의 일을 염려해서 현대차에서 10여년의 비정규직 투쟁으로 복직하던 날을 ‘그날’이 아니라고 부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힘든 일이다. 이 나라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불법파견 근로자지위 소송에서 승리해서 정규직이 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법대로 판결받고서 정규직이 된다는 일은 이 나라 비정규 노동자 중 극히 일부에게만 해당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조차도 이 나라에서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노동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10여년 동안 이 나라 비정규직운동의 중심이 돼 온 현대차에서의 승리가 분명히 희망이 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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