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주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공공기관에서 1년 하고도 11개월20일을 근무한 근로자가 있다. 10일만 더 일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기대’로 끝나고 말았다. 사용자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해고(계약종료)를 통보했다. 이 근로자가 하던 일은 계속되고, 그 자리에는 다른 기간제가 채용됐다.

공공기관에서 7년 동안 총 8회에 걸쳐 1년 또는 6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하면서 근로를 제공하던 기간제 근로자가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4조에 의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로 지위가 인정돼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사용자는 덫을 놓았다.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기간제법 제4항1호)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라는 것은 ‘1단계 10년, 2단계 10년’으로 예정돼 총 20년간 계획해 둔 사업이다. 이런 사업이 과연 법이 예외로 규정한 바로 그 사업 기간의 완료 및 특정업무 완성에 필요한 ‘사업’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다양한 양태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기간제 근로자들을 만나면서 필자는 기간제법에 대한 문제를 다시금 상기하게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자라는 용어 앞에 기간제·파견·도급·용역·단시간 등 고용형태를 표현하는 수식어구가 붙기 시작했다.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일반화는 사회구조 속에서 양산된 것이지만 그로 인한 고용불안과 차별의 문제는 오롯이 개별 근로자들의 것이었다.

신분을 이유로 하는 차별은 기본권에 대한 침해로 부당한 것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이들에 대한 차별·해고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법의 보호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 이러한 고용 및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에 맞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다. 그 결과 비정규직 문제는 개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닌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2006년 12월21일 비정규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기간제법이 제정됐다.

필자는 기간제법 제정 당시 법 내용의 아쉬움과 많은 문제에도 사실 법이 시행되면 기간만료만을 이유로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하는 해고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올해로 기간제법 시행 9년을 맞는다. 해고사건 중 기간만료에 의한 근로관계 종료, 즉 해고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매우 높다. 그 이유는 법 제정 당시에도 우려를 낳았던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제한하지 않고 사용범위를 무한히 열어 둔 점, 근로기간 2년 미만인 기간제에 대한 보호규정을 두지 않았다는 점,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 보호와 관련한 예외조항이 너무나 광범위해 사용자가 이를 충분히 악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법적 한계는 우려를 넘어 또다시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고, 그 결과 이들은 근로자지만 기본권 보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근기법과 기간제법 등 그 어떤 법률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자로 남아 있다.

기간제들을 진정 고용불안에서 보호하고자 만든 법이라면, 그것은 법률 명칭보다 내용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보호와 목적은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범위’를 제한하는 기본원칙만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위 사례들은 모두 공공기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비정규직 대책을 외치고, 고용안정을 정책으로 내세우는 공공기관에서 오히려 기간제에 대한 권리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기간제법 시행 9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비정규 근로자들에게 묻고 싶다. 차별과 고용불안에서 벗어나셨습니까. 살림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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