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사무금융노조 현대라이프생명보험지부(지부장 황근영)의 철야농성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2014년 임금·단체교섭이 해를 넘겨서도 진행되지 않은 데다 옛 녹십자생명 직원과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전입 직원 간 승진차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작된 농성이다.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은 2012년 현대차그룹이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설립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연대 단체들이 농성장을 찾았고, 조합원들의 지지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관심 덕분인지 그간 지부의 거듭된 임단협 본교섭 재개 요청에도 꿈쩍하지 않던 회사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농성 24일 만인 이달 6일 첫 실무단위 교섭이 열렸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본점 지부사무실에서 만난 황근영(51·사진) 지부장은 "지부 또한 회사의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시원하게 양보했다"며 "회사도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원하게 양보했다"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난해 임금교섭과 단체교섭을 함께 진행하는 해라서 단협 요구안이 많았다. 20여개 요구안 중 17개를 과감하게 철회했다. 임금인상과 조합원 가입범위 확대, 피시오프제 실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시 임원면접 삭제 요구만 남겼다. 이 정도면 거의 다 양보한 셈이다."

- 회사 반응은 어떤가.

"회사는 임금인상이나 피시오프제 등 비용이 드는 문제는 증자계획이 확정된 뒤 구체적으로 논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직무그룹 성과연봉제 실시를 논의하자고 한다. 현재 비조합원에 대해서만 직무그룹 성과연봉제를 적용·실시하고 있는데 이를 전체 직원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동료들 간 무한경쟁을 시키고 저성과자들에게는 현격한 차등을 줘서 돈으로 직원들을 부리려는 게 성과연봉제다. 반대할 수밖에 없는 안이다. 그런데 회사는 2013년과 2014년 승진이 확정된 본사·영업점 총무들의 승진 발표를 유보한 채 이를 성과연봉제 실시와 연계시키고 있다. 지부가 성과연봉제에 합의하면 승진인사를 실시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법이 어디 있나."

황 지부장에 따르면 최장 20년 이상 총무로 근무한 여직원들 가운데 2013년과 지난해 승진 확정 통보를 받은 직원은 17명이다. 하지만 회사가 승진발표 미루고 성과연봉제와 연동시키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초 발표된 정기승진에서 옛 녹십자생명 직원들과 현대차그룹이 녹십자생명을 인수한 이후 전입한 현대카드·캐피탈 직원 간 차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심각한 상태다.

- 차별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현대차그룹은 2012년 2월 녹십자생명을 인수했다. 주요 경영진과 팀·실장을 비롯한 관리직을 대부분 현대카드·캐피탈 전입자들이 차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주주 변경에 따른 변화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노골적인 차별로 이어질지 몰랐다. 지난달 승진인사만 봐도 녹십자생명 출신은 승진대상자 162명 중 16명만 승진했다. 총무와 영업직은 한 명도 승진하지 못했다. 반면 현대카드·캐피탈 출신은 대상자 47명 중 절반 가까운 20명이 승진했다. 승진인사를 보고 그간 참고 있었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 불만이 높은 상황인데도 지부가 양보안을 낸 이유는.

"회사 적자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기진작책이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임금·복지는 보장해야 한다. 회사가 발전하려면 직원들이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힘들게 일하는데 대우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업무 성취도나 생산성 향상에도 좋지 않다. 직무그룹 성과연봉제는 지부가 요구한 대로 평가등급별로 기본급 차등을 두지 않고, 각 직군에 '승진가급금액'을 동일하게 적용한다면 동의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지부가 양보한 만큼 경영진도 지혜로운 고민과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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