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특수고용·파견·하도급 등 고용형태가 복잡해지고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증가하면서 현행 노동관계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도 노동법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 노동기준인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거나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한국노총 출신으로 새누리당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봉홍(72·사진) 의원은 이와 관련해 “노동관계법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최근 근로계약법 도입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려다 친정인 한국노총의 반발을 샀다. 일본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도입한 근로계약법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데다, 발제 내용에 정부·사용자측이 요구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규제완화와 저성과자 퇴출 같은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대표적이다.<본지 4월29일자 6면 '최봉홍 의원 근로계약법 제정 추진하려다 주춤' 참조>

최 의원은 이에 대해 “노동관계법 재정비 방안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발제문에 의도치 않은 내용이 포함됐다”고 해명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최 의원의 요청으로 지난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근로계약법 논의, 아이디어 단계"



- 지난달 말 근로계약법과 관련한 토론회를 준비했는데. 왜 근로계약법이 필요한가.

“노동 관련 제도개선 논의를 지켜보면 금융·공공 같은 일부 산별에서만 관심을 갖는다. 나머지 조직에서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노동관계법이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40여년간 노동운동을 한 뒤 국회에 들어오면서 노동관계법 재정비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현행 노동관계법이 ‘노동악법’이라는 오명을 지우려면 노사자율에 의한 합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노동관계법 개선 방향을 원점에서 연구하기 위해 예닐곱 명의 노동법학자를 중심으로 연구단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13년 12월 ‘근로자·사용자 개념의 확립과 노동법의 관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노동관계법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자리였는데, 무려 227가지 항목이 지적됐다.

이번 (근로계약법) 토론회 역시 같은 취지로 준비했다. 그런데 발제 자료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나 일반해고 요건 완화 같은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토론회를 연기한 것이다. 토론회 타이틀에 ‘근로계약법’이라는 단어를 붙였는데, 그건 참여자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이었다. 입법까지 수년이 걸릴지 모른다. 현재 구체적인 명칭도, 내용도 없다. 연구단체에서 결과물이 나온 뒤 노사정 합의를 거쳐야 입법이 가능하다.”



- 노동계는 근로계약법이 노동조건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산업현장 고용형태가 천태만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기법상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수고용직·파견 같은 형태의 중간착취 문제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동관계법이 주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보호를 위해서만 쓰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체 2천만명의 노동자 중 노조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소수다. 모든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급변하는 산업현장에 적용시킬 만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근기법보다 나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가능한가.

“노사자율 원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계약 과정에서 노사평등이 보장되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일대일 관계가 돼야 한다. 제도적인 장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한국식 근로계약법이 도입된다면 법 안에 반드시 이런 내용을 넣어야 한다. 근로계약법이 도입되면 노조의 힘이 강한 대기업은 자율적인 계약을 통해 현행 노동관계법을 웃도는 근로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반대일 가능성이 큰데, 인권헌장을 기준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정부, 노사정 협상 중재자였는지 의문"



-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파행으로 끝났다. 협상 과정을 어떻게 지켜봤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말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해 조용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 냈다. 문제는 후속 협상인데 공무원연금 개혁과 맞물리고 주무부처가 이원화되면서 노사정 협상이 결렬됐다.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모두의 동등한 역할을 전제로 이뤄지는데 균형을 잡는 곳이 없었다. 정부가 대화의 중재자로서 논의에 참여했는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 역시 상황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임했다. 역지사지가 부족했던 것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노사정 간 소통과 공감이 부족했다. 이참에 대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 노사자율에 맡겨야 할 사안이다.”



- 노동부가 7월까지 취업규칙 변경·일반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밝혔는데.

“100일간 노사정 협상에 실패했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하면 정부 스스로가 현행법 위반 시비를 부르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수년에 거쳐 노사정이 대화하고, 외국 사례까지 연구하고 나서야 노동관계법 조문 하나를 고쳤다. 그런데 정부가 이렇게 나오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어떻게 되겠나. 앞서 말했듯 정부는 진정한 중재자의 입장에서 노사정 대화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 의제 선정부터 원점에서 다시 논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해서는 안 된다. 노동계와 경영계에 이해와 협조부터 구해야 한다.”



"특고 산재보험 확대적용 법사위 반대는 월권"



-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확대적용을 명시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중 대형 보험업계 종사자들은 회사뿐 아니라 스스로가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보험업종에서 일하다 산재를 당할 일이 얼마나 있겠냐는 것이다. 실제 40만명 가량의 보험업계 근로자 중 단체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일부 대기업 보험사를 제외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이 같은 논리로 몇몇 의원들이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에서 재심사하는 것은 분명한 월권이다. 수십만명의 당사자가 반대 서명까지 한 상황이라 돌파가 쉽지 않다. 반대 의원들을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



- 새누리당 노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가장 바람직한 노사관계는 가족과 같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모든 근로조건을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정형화된 노동관계법으로는 복잡다양해진 산업구조를 수용할 수 없다. 법원의 이론·해석으로는 노사현장의 난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1987년 이전에는 노사자율 합의가 우선시됐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노동시장 다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졸속 입법이 횡행하더니, 노동관계법이 누더기가 됐다. 노동관계법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현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노동관계법 연구팀을 꾸린 상태다. 조만간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외연을 넓혀 제대로 연구하고 훌륭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연구기관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노동관계법의 근간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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