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대상판결/ 대법원 2012두26142 판결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주식회사 ○○에서 정비기사로 근무하던 근로자다. 원고는 1982년 7월 대기실에서 낮잠을 자다가 다른 근로자에게 다리를 밟혀서 부상을 당했다.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해 1985년 10월 산재를 승인받았다.

원고는 치료 종결 시점으로부터 약 9년7개월이 경과한 2003년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장해급여를 신청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원고가 우측 다리에 장해등급 제8급의 장해를 입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치료 종결 시점인 1984년 3월부터 3년의 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장해급여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원고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2006년 4월 대법원에서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 이후 원고는 인공관절 치환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009년 4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재요양 승인을 받고 다시 치료를 받았다. 원고는 2010년 4월에 치료를 종결했으나 좌측 다리에 새로운 장해가 발생하자 근로복지공단에 다시 장해급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0년 5월 원고가 재요양 결과로 좌측 다리에 장해등급 제8급의 장해를 추가로 입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기존 우측 다리의 장해등급 제8급과 조정해 원고의 장해등급은 제6급이라는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재요양에 따라 장해등급이 변경되면 기존에 받았던 장해보상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 규정을 원고에게 적용했다. 즉 근로복지공단은 원고가 우측 다리의 장해로 실제로는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유가 청구권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것이므로 원고가 지급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원고에게 실제로 지급되지 않았던 우측 다리에 대한 장해보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정한 방식으로 공제한 후 원고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에 대해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 대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2. 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쟁점은 청구권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해 장해보상금을 실제로 지급받지 못한 산재 근로자에게도 재요양에 따른 장해보상시에 기존에 지급받은 장해보상금을 공제하도록 정한 산재보험법 시행령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 사건 조항의 취지는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급여 및 장해보상일시금을 받은 사람이 재요양 후 장해상태가 악화돼 변경된 장해등급에 해당하는 장해보상연금을 전액 받게 된다면 이미 보상받은 장해급여 부분에 대해서까지 중복해 장해급여를 받는 결과가 되므로, 이러한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고 위 산재보험법 시행령의 입법 취지를 해석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견해에서 “업무상재해로 인해 신체 장해를 입은 사람이 그 당시에 판정된 장해등급에 따른 장해급여를 청구하지 않아 기존 장해에 대해서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기존의 장해상태가 악화돼 장해등급이 변경된 후 비로소 변경된 장해등급에 따라 장해보상연금을 청구한 경우에는, 그와 같은 중복지급의 불합리한 결과는 발생하지 않으므로, 피고로서는 재요양 후 치유된 날이 속하는 달의 다음 달부터 변경된 장해 등급에 해당하는 장해보상연금의 지급 일수에 따라 장해보상연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결국 대법원은 청구권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해 실제로 장해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한 산재 근로자에게 위 산재보험법 시행령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고 판시하면서, 피고 근로복지공단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3. 판결의 의의

산재보험법은 제1조에서 그 입법 취지를 “이 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해 근로자의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해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산재보험법 제1조가 명확히 명시하고 있듯, 산재보험법은 보상·재활·사회복귀 지원 등을 통해 산재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운영되는 실태를 살펴보면, 산재보험법이 산재 근로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산재보험법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법 시행령을 원고에게 적용하면서, 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앞세워 실제로는 장해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장해보상금을 이미 지급받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률 해석은 언제나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것이므로, 근로복지공단의 법률 해석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이 이 같은 법리를 적용하면서 산재 근로자 보호라는 산재보험법과 시행령의 입법 취지를 제대로 고려했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불의의 산재를 당해 우측 다리에 장해를 입었고 나중에는 부상이 재발해 왼쪽 다리마저 추가적인 장해를 입었다. 근로복지공단도 원고의 양쪽 다리에 발생한 장해가 모두 업무상 사유에 기인한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편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재요양에 따른 장해보상시 기존 장해보상금을 공제하도록 정한 취지가 이미 보상받은 장해에 대해 이중보상이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복지공단의 법률 해석은 법 이론적으로는 일견 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산재보험법과 시행령의 입법 취지에서는 한참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내용의 법률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근로복지공단은 우선 산재보험법과 시행령의 입법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해석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법리적 완결성에만 주목했고, 그 결과 산재보험법과 그 시행령의 입법 취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법률에 대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그 법률의 입법 취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즉 법률에 대한 해석이 법리적으로 아무리 완전하다 할지라도 입법 취지를 벗어나는 순간 그 해석은 궤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건 판결의 의의는 법률을 해석함에 있어서 법리적 완결성에 주목하기보다 산재보험법과 시행령의 입법 취지에 주목했다는 데에 있다.

4. 결론을 대신해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판결문의 행간에서 현행 산재보험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원고는 치료가 끝난 때로부터 약 9년7개월이나 지난 2003년 10월에 가서야 뒤늦게 장해급여를 청구했다. 당시 원고의 장해 상태는 제8급이었으므로 아마도 정상적인 생활과 노동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고는 제때 장해급여를 청구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돼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산재 근로자가 산재보험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결국에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보험급여 청구권은 산재 근로자에게 있으니 그 손해는 오로지 산재 근로자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리 타령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이 같은 근로자들이 양산되지 않도록 사전적 예방장치나 사후적 구제장치를 강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 정답은 산재보험법 제1조에 온전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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