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궐선거가 새정치민주연합의 0:4 참패,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당인 새누리당이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 결과라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천정배 무소속 후보에게 완승을 안겨다 준 광주 민심을 두고 새정치연합에 채찍을 든 것을 넘어 새정치연합에 아예 등을 돌리기 시작한 징조라는 분석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번 4·29 재보선과 관련해 놓쳐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 있다. 새정치연합의 참패로 반사이익을 거둔 것은 오직 새누리당뿐이다. 과거 같으면 새정치연합이 죽을 쑬 때 진보정당이 어느 정도 반사이익을 거뒀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 등식마저도 깨졌다. 새정치연합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결코 진보정당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4·29 재보선은 진보정당 몰락을 재확인한 선거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 그동안 지겹도록 던졌던 질문을 다시금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진보정당은 왜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진보정당 몰락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진보정당의 생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진보성이다. 진보성을 상실한 정당이 진보정당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진보성은 크게 혁신성·진정성·변혁성 세 가지로 구성된다. 이 중 하나만 빠져도 진보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간 진보정당은 이 지점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확인해 보자.

먼저 혁신성에 대해 살펴보자. 1987년을 기준으로 앞뒤 27년의 역사를 비교해 볼 때 어느 시기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답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 시기다. 이전 시기에는 기본 틀에서의 변화 없이 도시화·산업화에서의 양적 변화가 일어났을 뿐이다.

반면 이후 시기에는 냉전체제 해체와 글로벌 경제로의 전환, 민주화 정착, 디지털 문명 확산, 대학교육 일반화. 신자유주의 공세와 몰락 등 역사의 국면을 바꿔 놓을 변화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이 하나하나는 진보운동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도록 만드는 것들이었다. ‘미제에 대한 예속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것’은 냉전체제 해체 이전에는 해방일 수 있었으나 이후에는 국제적 고립일 뿐이었다.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가능성이 매우 컸던 것이다. 진보정당은 이러한 변화에 맞게 자신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극도로 게을렀고 또한 무능력했다.

다음으로 진정성에 대해 살펴보자. 80년대 민주화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진정성이었다.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탄압 속에서 진행된 민주화운동은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진정성 없이는 참여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화운동은 제적·해고·수배·구속 심지어 끝없이 계속된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희생을 수반했다. 민주노동당 초기만 해도 진보정당은 상당 정도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진보정치인을 두고 현장에서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나서야 나라가 잘될 것이라며 적극 등 떠미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현장 분위기는 "알고 보니 다 똑같더라"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진보정치인도 기성 정치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냉소적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변혁성에 대해 살펴보자.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집권의지가 있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으로 하자. 진보정당은 집권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변혁성의 첫 번째 징표는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집권의 첫 번째 조건은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선주자를 키우는 것이다. 정당 활동의 적어도 51퍼센트는 여기에 힘을 모아야 하며 나머지 활동도 거기에 맞춰 이뤄져야 한다. 대선주자가 대중적으로 부상할 때 그와 연동해 당 지지율이 오르고 각종 선거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진보정당은 대선주자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목적의식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였는가. 놀라운 사실이지만 진보정당을 이끌어 온 유력 정파그룹 대부분이 대선주자 육성에 관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정파구도가 대중적 기대감을 모으고 있던 잠재적 대선주자를 망가뜨리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정파들이 실질적으로 집권의지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간 진보정당이 진보성을 상실해 왔음을 의미한다. 진보성을 상실한 진보정당은 진짜가 아닌 가짜에 불과하다. 유권자들은 이 점을 간파하고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민주주의를 향한 명백한 폭거였다. 그럼에도 국민적 반발이나 대중적 저항이 없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히 되짚어 볼 문제다. 객관 정세의 요구로만 보면 모든 것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러자면 완전히 새롭게 출발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진보정당 운동 안에서 그러한 준비를 갖춘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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