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저에게 노점과 수급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노점조차도 포기한 저에게 정부는 월 26만원을 지급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시청과 구청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지불해야 하는 약값만 해도 26만원이 넘는데, 아파트 관리비만 16만원인데,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거지? 그러면서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건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하 기초법)이 시행된 지 1년 만인 2001년 겨울 최저생계 보장을 요구하며 명동성당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던 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 최옥란의 육성이다. 당시 37세의 최옥란은 생활에 필요한 약값을 감당하기 위해 기초법 수급권자가 돼야 했지만 노점을 통한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법 적용에서 제외되자 노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급된 급여는 한 달 26만원. 한 달 약값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서 최옥란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며 엄동설한에 농성투쟁을 벌였다. 씩씩했던 그녀는 2002년 3월 수급권자 재선정을 위해 재산조사를 하겠다는 동사무소의 고지서를 받아들던 날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

최옥란 열사의 삶과 죽음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의 허구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일하는 빈민이 증가하자 노동능력 여부와 무관하게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는 노동·시민운동의 요구로 99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비현실적으로 낮은 최저생계비 산정과 재산의 소득환산, 소득 추정·부양의무제 등 보수적 기준으로 빈곤층의 상당수를 탈락시키는 문제가 발생했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의 유지”(기초법 제4조)에 턱없이 미달하는 급여 수준은 최옥란 열사의 죽음 이후 십 년 넘게 문제로 지적돼 온 부분이다.

그런데 2013년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맞춤형 개별급여’로 재편하겠다고 나섰다.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기초법 수급권자가 되면 생계급여·주거급여·의료급여 등 7가지 급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각 급여별로 수급자 선정기준과 급여 수준을 각각 다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2월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정부·여당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기초법 개악을 주도했고, 같은해 12월 여야 합의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올해 4월25일 보건복지부는 기초법 급여별 선정기준 및 급여수준을 처음으로 확정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생계급여의 수급자 선정기준은 중위소득의 28%로, 4인 가구의 경우 소득이 월 118만2천309원 이하여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4인 가구 기준소득이 월 166만8천329원 이하로 인정되면 생계급여 등 7가지 급여를 모두 받을 수 있는데, 기초법 개악으로 올해 7월부터는 기존의 수급자 중에서도 월 118만원 이상 소득이 있으면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지난해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는 월 15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었지만 월세로만 70만원 이상 나갔다고 한다. 세 모녀가 살아 있었더라도 기초법 수급자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어머니가 식당에 나가고, 둘째딸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버는 소득이 최저생계비 혹은 선정기준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60대 어머니, 고혈압·당뇨 등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큰딸, 안정된 일자리를 못 구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던 작은딸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양의무자’가 돼 기초법 수급자에서 탈락했을 것이다. 정부와 여야는 ‘송파 세 모녀 법’이라며 기초법 개악안을 통과시켰지만, 그 결과는 안 그래도 광범한 복지 사각지대가 더욱 넓어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처럼 복지 제도가 후퇴를 거듭하는 데에는 “복지는 나태한 국민을 만든다”며 빈약한 복지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몰고 가는 정부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정신을 살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재개정해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