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미 영화평론가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찍어 온 황윤 감독의 네 번째 영화다.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됐고, 황 감독은 제11회 서울 환경영화제에서 한국영화 부문 대상을 받았다. 감독의 전작 <작별> <침묵의 숲> <어느날 그 길에서>는 야생동물의 삶을 다룬 3부작이었다. 이번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식용동물에 관한 영화다.

동물의 시선으로 보다

영화는 “어린 시절 개들은 나의 친구이자 가족이었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어른이 된 감독은 동물원에 갔고, 야생동물들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노라고 말한다. 그 인연으로 남편을 만났고, 엄마가 된 감독은 아이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고민하게 됐노라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감독이 언급한 영화가 데뷔작 <작별>(2001)이다. <작별>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호랑이 ‘크레인’을 보여 줬다. 동종교배와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크레인은 선천적인 질병으로 몸이 약했다. 사육사들이 젖병을 물려 키운 크레인은 시력이 좋지 않은 데다 체구가 작아서 꼭 강아지 같았다. 유난히 겁먹은 표정으로 사육사들의 사무실에서 목줄을 한 채 울고 있던 크레인은 ‘백수의 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영화는 관람객의 시선이 아닌 동물의 시선으로 동물원을 비추며, 동물원이라는 공간과 제도에 관한 고민을 들려줬다.

동물원은 추억 어린 가족나들이의 공간이자, 자연과 동물을 친숙하게 느끼게 해 주는 교육의 장이다. 또한 멸종돼 가는 야생동물의 종을 보호하는 ‘노아의 방주’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야생동물의 관점에서는 평생 죄 없이 갇혀 살아야만 하는 잔혹한 감옥이다. 영화는 관람객 입장에서 바라봐 왔던 익숙한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들이 거주하고 사육사들이 드나드는 이면의 모습을 비춘다. 동물의 시점에서 유모차를 끌고 와 안을 들여다보는 관람객을 보는 체험은 낯설다. 하지만 <작별>이 동물원의 학대를 고발하며 동물원 폐쇄를 주장하는 다큐멘터리인 것은 아니다. 감독은 철창 안의 동물을 타자로 마주한 채 고민하고 있으며, 그 곤혹함과 안쓰러움이 카메라를 통해 전달된다. 클로즈업된 동물의 얼굴은 스스로 관객에게 말하는 듯하다.

이러한 감독의 태도는 야생동물의 로드 킬을 다룬 <어느 날 그 길에서>에서도 이어진다. 전 세계에서 도로밀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들은 날마다 비명횡사한다. 고라니·뱀 등은 물론이고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된 삵도 물과 먹이를 찾아 도로를 건너다, 질주하는 차량을 피하지 못하고 죽어 간다. 생태다리를 놓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야생동물의 생활반경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감독은 야생동물의 궤적을 쫓으며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한계를 논파한다.

나아가 감독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이토록 많은 도로가 필요할까. 야생동물의 서식지인 지리산 자락의 순환도로에는 다니는 차량은 많지 않지만, 로드 킬 당한 동물들의 사체는 즐비하다. 산이든 어디든 도로를 닦아 몇 십 분의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발전이라 여기고, 별다른 호재가 없는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방안으로 토목공사를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도로에 내려와 야생동물과 같은 눈높이가 되도록 엎드린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이 쏟아 내는 전조등 불빛과 매연을 마시며, 그 시선으로 야생동물들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를 전달한다. 감독은 역지사지의 공감과 체험을 통해 개발주의의 병폐를 일깨운다.

돼지는 동물이 아닌가

<잡식가족의 딜레마>에는 애완동물이나 야생동물이 아닌 식용동물이 등장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애완동물(개)은 사랑하고, 야생동물(호랑이)은 보호하며, 식용동물(돼지)은 먹는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동물은 얼마나 다른 걸까. 감독은 털어놓는다. 일생 돈가스 마니아로 살면서, 한 번도 살아 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었노라고. 야생동물 수의사인 감독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야생동물을 살리기에 여념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식용동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구제역 뉴스가 휩쓸고 간 뒤, 감독은 아이의 먹을거리 문제를 고민하는 엄마의 심정으로 살아 있는 돼지를 보고자 한다. 어렵게 찾아간 폐 축사에서 감독은 끔찍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돼지들을 본다. 감독은 드물게 친환경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장에서 돼지를 만난다. 어미돼지의 진통을 보면서, 감독은 자신의 출산을 떠올린다. 태어난 새끼는 젖을 물기 전에 어미의 얼굴 쪽으로 가서 눈을 맞춘다. 마취도 없이 이뤄지는 거세의 고통에서 새끼를 지키고자 어미들은 필사적으로 새끼를 감춘다. 돼지 역시 고통과 공포와 모성애를 느끼는 생명체지만, 공장식 축산이 이뤄지는 곳에서 돼지는 아무런 감정도 감각도 없는 물건인 양 취급된다. 일생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좁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끊임없이 새끼를 낳고, 살을 찌워, 인간이 먹을 고기를 생산해 낸다. 사정이 훨씬 낫긴 하지만 친환경 농장이라고 해서 모순이 없는 것이 아니다.

촬영을 하면서 감독은 자연스럽게 육식을 멀리한다. 본인은 물론이고 남편과 아이의 식단도 채식으로 바꾸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노릇이다. 육식에 입맛을 들인 아이의 칭얼거림을 들어야 하고, 남편의 불만스런 표정을 견뎌야 한다. 육식 위주로 재편된 외식문화에서 남편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조류독감 파동을 겪으면서 남편의 태도도 차츰 변해 간다. 수의사로 투입돼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면서, 남편은 차츰 육식을 즐기지 않게 된다. 영화는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가 공장식 축산에 의한 재앙임을 짚어 주면서, 살처분에 투입됐던 공무원의 고통스러운 인터뷰를 들려준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육식은 죄악이기에 반드시 채식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감독이 어떤 고민에서 출발했고, 영화를 찍는 과정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채식으로 바꾼다고 해도 여전히 딜레마가 남는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울림이 크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고발하고, 채식과 동물권의 문제를 촉구한다 할지라도, 내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것은 자유다. 그러나 고기도 한때는 살아 있는 생명이었음을 아주 잠깐이라도 묵상해야 하지 않을까.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5월7일 개봉한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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