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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단체 탐방 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 노동운동의 '명품조연' 꿈꾼다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식구들이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남신(가운데) 소장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다나 정책부장·강인수 편집부장·조대환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사무국장·최혜인 정책부장·변정윤 사무국장. 정기훈 기자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주간 점검회의가 열린 4월20일. 부서별 보고가 끝난 뒤 이남신(50) 소장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좋아요'가 문제였다.

"지하철 경정비 노동자들이 시청역에서 농성 중인데 (농성 소식을 올린)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거의 없어요. 보면 맨날 나만 '좋아요'야."

서울지하철 1~4호선 전동차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서울시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이달 초부터 2호선 시청역 출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좀처럼 알려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노동자들이 연차 내서 어렵게 하는 농성인데,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주부터 센터에서도 결합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모두) 예."

이번엔 '깃발' 얘기가 나왔다. "25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추모문화제에 센터 깃발을 가지고 나갑시다." 이 소장이 제안했다.

"우리(센터) 깃발도 있어요?"

"있어. 지저분한 거."

"아니다. 하지 맙시다." 30초도 안 돼 이 소장이 제안을 철회했다. "내가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은데, 깃대 들 사람 정해지면 합시다."

그를 둘러싼 여성들이 모두 깔깔댔다. 그러고 보니 이 소장은 센터의 청일점이다.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고공농성과 세월호 참사 추모문화제, 민주노총 총파업, 5월1일 노동자대회, 최저임금 집회, 봄맞이 사무실 대청소까지 다양한 '할 일'이 주제로 오르내렸다. 일사불란하게 각자 할 일이 정해졌다.

회의에서 자주 등장한 말은 '연대'와 '집중'.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통신비정규직 투쟁이나 세월호 유가족 농성, 지하철 경정비 노동자들처럼 어렵게 투쟁하는 현장은 아무리 바빠도 연대해야 할 곳이다. 센터는 이날 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범국민추모문화제와 다음달 1일 노동자대회에 상근자 전원이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상근자 전원이라고 해 봤자 5명이 전부다. 반상근하며 '격월간 비정규노동' 편집을 도와준 오진호씨는 이날 회의를 마지막으로 센터와 작별을 고했다. 오씨는 다음달부터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비없세) 상근자로 일한다.

비정규직 관련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정책을 만들고, 성명서를 작성하고, 스피커 역할까지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그나마 올해 2월 두 명의 활동가가 들어와 정책과 편집부서에 배치되면서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다.
▲ 점심식사는 사무실에서 해결한다. 보통 밥은 짓고 반찬은 싸 온다. 김자반이 인기가 많았다. 설거지는 뽑기로 정한다. 정기훈 기자

"이름 때문에 돈 있는 단체로 오해"

상근자를 더 채용하지 못하는 건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 때문이다. 국내 여느 노동운동단체들이 겪고 있는 재정난을 센터라고 피해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0년 5월 센터가 세워진 뒤 15년 동안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최근 몇 년간 센터는 혹독한 보릿고개를 넘는 중이다.

강인수(48) 편집부장은 "이름에 '한국'도 들어가고 '센터'도 들어가 있다 보니 정부 지원을 받는 '돈 좀 있는 단체'로 오해하는 사람이 꽤 많다. 이름 덕은 못 보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센터는 후원으로만 운영된다. 센터에 가입된 회원은 780여명이지만 1만원 이상 후원을 하는 회원은 500여명 수준이다. 이들이 다달이 내는 후원회비와 한 해 10여개 진행하는 연구프로젝트만으로는 상근자들의 활동비를 감당하기도 버겁다. 이 소장과 변정윤(48) 사무국장·최혜인(25) 정책부장은 벌써 두 달치 임금이 체불된 상태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130만원짜리 사무실은 7개월째 월세가 밀려 있다. 변 국장이 "홍세화 선생이 트윗 한 번 날렸더니 <작은책> 구독자가 200명 늘었다더라"며 "노하우를 배워 오라"고 이 소장을 다그쳤다.

가난이 노동·진보활동가의 덕목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갓 넘긴 활동비마저 제 날짜에 챙겨 주지 못하면서 그간 비정규 운동에 복무해 보겠다며 센터를 찾아온 20~30대 청년들이 한두 달을 못 버티고 쪽지 한 장 남긴 채 자취를 감췄다. 이 소장은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안타깝고 막막하고 속이 쓰리다"고 털어놓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말부터 자발적 빈곤을 감내하고 들어온 상근자들은 복덩이나 다름없다. 올해 2월 채용된 신다나(30) 정책부장은 "노동단체에서 일하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다 채용공고를 보고 들어왔다"며 "(센터 근로조건이) 대충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진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 소장이 "멘털 갑"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최혜인 정책부장은 지난해 여름방학 때 "인턴을 하고 싶다"며 센터에 이메일을 보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센터 형편이 좋지 않아 급여를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나를 놓친 걸 후회하게 해 주겠다"는 앙심(?)을 품은 최 부장은 이 소장에게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하고 게시글마다 (이 소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좋아요'를 누르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활동비를 줄 수가 없다"고 미안해하는 이 소장을 최 부장은 "괜찮다"며 다독였다. 두 달간 인턴생활을 끝낸 뒤 받은 건 문화상품권 한 장뿐이었지만 "밥은 먹여 줘서 감사했다"고 했다. 최 부장은 인턴이 끝난 뒤 정식으로 채용됐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한 지붕 두 가족

점심시간이 되자 조금 전까지 회의를 하던 책상이 식탁으로 바뀌었다. 각자 집에서 들고 온 반찬을 꺼내 놓고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을 넣고 데워 오자 점심 밥상이 뚝딱 차려졌다. 변정윤 사무국장은 "센터 건물을 세우고, 한 층을 식당으로 만들어 가난한 활동가들 밥 차려 먹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구내식당처럼 말이다. "식당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줄이고, 활동가들 돈 걱정 없이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어 좋지 않겠어요."

식탁에 젓가락이 다섯 쌍이 아닌 일곱 쌍이 놓였다. "밥 먹읍시다. 삼성 동지들도 빨리 와요." 센터 내에서 일명 '조씨 일가들'이라고 불리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조대환 사무국장과 조윤미 운영위원이다. 삼성그룹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인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2013년 12월 공식출범하면서부터 센터에 더부살이 중이다. 센터 공동대표이자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상임대표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가 다리를 놨다.

"집주인이 아무리 좋아도 눈칫밥 먹는 게 쉽지 않아 매사에 조심합니다. 문 열 때도 조심하고, 발소리 낼까 살금살금 다니고. 하하."

"우리가 언제 눈치 줬냐"는 센터 상근자들의 원성(?)에 다시 "차~암 가족같이 자~알 대해 주신다"며 재차 농을 던진다. 조 국장은 "삼성 노동자들의 인권이라는 특수한 주제를 잡아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나 네트워크 면에서 부족한 면이 있다"며 "센터는 비정규직를 포함한 전체 노동운동을 아우르고 있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새로운 비정규직 운동 구상"

센터가 설립된 지도 어언 15년이다. 센터는 당시 양대 노총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비정규직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 올려 사회적으로 쟁점화시켰다. 특히 노조가 하지 못했던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센터는 지금 새로운 비정규직 운동 모델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다. 중앙·지방정부와 노동조합이 챙기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교육하는 일을 센터가 맡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조직화 초기단계를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센터가 영등포구에서 시작한 '비정규직 없는 영등포 만들기' 같은 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비정규직 의제와 관련해 사회적 연대 네트워크를 활용한 활동은 각 지역 비정규직센터들이 기민하게 잘 움직입니다. 센터는 운동의 이론적인 자양분을 제공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을 뒷받침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죠."

센터가 서울노동권익센터(소장 김성희) 수탁기관이 된 것도 새로운 비정규직 운동 모델 찾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서울시가 취약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서울시가 올해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책정한 예산은 12억원이다. 법률상담과 정책연구, 권리교육 사업을 수행한다. 이 소장과 조돈문 공동대표는 서울노동권익센터 운영협의회와 자문회의에 위원으로 각각 참여한다.

이 소장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순수 민간후원으로 운영되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노동운동이라면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자체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아 민관협력형으로 운영된다"며 "두 단체가 상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지역에서도 지자체 예산을 활용한 노동센터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센터들이 운동성을 잃지 않으면서 건강한 지역사회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위탁을 받아) 사업을 담당하는 민간단체들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자칫 관에서 내리꽂는 사업만 받아서 하는 관변단체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자체 단위에서 예산지원을 받는 기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바람직한 모델을 정립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최근 몇 년간 희망연대노조가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던 통신비정규직들을 조직하고 투쟁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전국의 비정규직단체들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새로운 노조운동을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운동성, 전략적인 기획능력까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야말로 빨리 없어질수록 좋은 단체인 만큼, 어디까지나 한국 노동운동의 명품조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센터 문을 나서려는데 강인수 편집부장이 '잊지 않고' 후원회원 가입신청서를 내밀었다. 강 부장은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올해 후원회원을 200명 늘리는 게 목표"라며 "노동단체들의 살림살이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두말없이 신청서를 썼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후원회원이 되려면 센터 홈페이지(workingvoice.net)에서 회원가입을 하거나 사무실(02-312-7488)로 전화하면 된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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