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 칼럼니스트 겸 작가

어쩐 일인지 요즘은 TV만 틀면 요리하는 남자들이 나온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에 나왔던 차승원 때문인가. 잘 빠진 근육질의 미남 배우가 불길을 프라이팬으로 지휘하는 듯 마법처럼 뚝딱 고추잡채며, 꽃빵, 홍합짬뽕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 순간 시청률 15%를 기록하며 개국 9주년을 맞은 tvN의 역대 최고시청률을 사뿐히 갈아 치웠다니.

그때를 정점으로 요리 예능 전성시대가 꽃을 피웠달까. 암튼 틀면 나온다. 이른바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라고 부르는 이들이 아예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접수한 듯 보인다. 요리 실력은 기본이요, 비주얼 좋고 입담까지 갖춘 셰프들이 여성 시청자들의 침샘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마음까지 설레게 하니 몰입도 높고 시청률도 잘 나온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이는 독설 잘하고 ‘허세’스러운 재담까지 갖춘 스타 셰프 최현석. ‘여심 저격수’로 통하는지라 JTBC <냉장고를 부탁해>,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올리브TV <한식대첩> 등 각종 예능 프로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데 그게 좀 과해 보일 정도.

솔직히 말하면 2015년 상반기 최고의 방송가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셰프테이너 열풍이 난 좀 지겹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보기 싫다. 과거 맛집 정보를 소개하던 음식 프로그램이 먹는 모습을 방송하는 ‘먹방’을 거쳐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쿡방’으로 옮겨 간 건데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사실상 ‘뇌물’로 만들어지는 TV 맛집 방송이 이제 그 우습고 추악한 실체가 다 드러나자(안 보신 분들은 대한민국 방송이 얼마나 맛이 갔는지 신랄하게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를 보시길) 쿡방과 셰프테이너라는 대체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요리사는 요리할 때 섹시하다. 입 다물고 맛있는 요리 만들기에 집중할 때 말이다. 심지어 그가 못생긴 촌놈에 말 주변마저 지지리 없는 자라 해도 그렇다. 브라질 영화 <에스토마고>의 요리사 노나토가 그 훌륭한 예다. 어수룩한 시골 촌놈이 도시에 올라와 겨우 무전취식을 대가로 볼품없는 식당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맛있다. 그것도 기가 막힐 정도로. 그 맛에 사로잡힌 한 매춘부(최고의 먹방 연기를 보여 주는 뚱보 여자)가 기꺼이 자기 ‘몸’을 요리사에게 바칠 정도였다. 심지어 훗날 교도소에서조차 로즈마리와 후추 같은 간단한 식재료 몇 가지로 죄수들의 입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리사 얘기가 얼마나 흥미롭던지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었다.

음식의 맛보다는 수익에만 몰두하는 고급 레스토랑을 탈출한 요리사의 얘기를 다룬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도 떠오른다. 칼은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지만 스칼렛 요한슨 같은 미인들을 요리로 유혹할 만큼 그 재능과 열정이 남다른 셰프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이런저런 궁지에 몰려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새로 선택한 맛의 공간은 뜻밖에 푸드 트럭. 칼은 그곳에서 가장 서민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쿠바식 샌드위치를 만드는데 그 모습과 맛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후끈하게 사로잡기 시작한다. 자신의 허름한 상황과 똑닮은 칼의 푸드트럭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야 할 명물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 로이 최를 모델로 만든 영화여서 더욱더 흥미로웠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여자는 남자처럼 아무 곳에서나 성욕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성욕을 식욕으로 푼다고 믿었다. 그래서 키스하기 전에 늘 최고의 요리로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 혹시 유혹하고 싶은 여자가 있으신가. 그렇다면 스스로 ‘쿡방’의 주인공이 돼 보자. 요리는 사랑이다. 사랑이 있다면 무슨 요리든 만들 수 있다.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고 인도 영화 <런치 박스>를 보시라. 내 경험상 마법처럼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장담한다.

칼럼니스트 겸 작가 (@kimkyu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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