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거꾸로 간다고 했다. '쉬운 해고'로 생긴 상처에 '더 쉬운 해고'라는 소금을 뿌린 격이라고 했다. 노동운동가로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노회찬(59·사진) 전 정의당 공동대표가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에 대해 내린 평가다.

노 전 공동대표는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청년실업을 끌어들인 것과 관련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의 최저임금을 정규직보다 높게 주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이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에서 시행하는 최저임금제도를 사례로 들었다. 선거제도는 국민투표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에서 노 전 공동대표를 만나 노동현안과 정치이슈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세월호 은폐 의혹, 정부가 자초"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그 일(의원직 상실)이 있고 2년2개월 정도 지났다. 노유진의 <정치카페>라는 인터넷 팟캐스트를 1년째 하고 있다. 강연을 열심히 하고 있다. 외국에도 자주 나간다. 교민은 물론 현지인이나 대학교에서 자주 부른다.
동북아 정세 변화와 북한 문제를 비롯해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박근혜 정부와 한국정치 등 강연 주제가 다양하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 재벌 문화에 대한 강연을 요청하기도 했다. 교민뿐 아니라 외국 현지인들도 굵직굵직한 국내 뉴스들은 많이 알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관심을 끄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노 전 공동대표는 2013년 2월 '안기부 X파일'에 언급된 '떡값 검사'의 실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했다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새누리당은 역대 모든 정권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연루자들의 체급이 다르다. 대통령 다음 서열인 국무총리부터 전·현직 비서실장, 광역단체장, 현역 여당 의원 등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모조리 포함됐다. 국민은 2004년 밝혀졌던 새누리당의 2002년 대선 '차떼기 사건'을 겪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지냈는데,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 역시 불법자금으로 치러졌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국민 모두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확인한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라는 정치 체념은 곤란하다. 이번 사건을 근본적인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처리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지속돼 왔기 때문에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벌백계해야 한다.”

-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지났다.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나.

“세월호 참사는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다. 1년이 지났지만 당시 기억이 모두에게 생생하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 왜 한 명도 구해 내지 못했는지 아직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안전과 재난 관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 책임이 무척 크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졌다. 하나는 진실규명이고, 다른 하나는 재발방지 대책 수립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두 가지 과제가 완료되기는커녕 착수되지도 않았다. 특별법이 간신히 통과되고 이에 따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정부 시행령이 유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에는 여야와 보수·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세월호 문제를 다루면서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식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와 국방부 같은 권력의 핵심부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해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 안보라는 협소한 시각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은 다음 정권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가 뜨거웠다.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한다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정부가 방향을 완전히 거꾸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개혁의 전제조건은 지난 20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외환위기 이후 절정에 달한 사회 양극화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과 이를 받아들인 정부의 정책은 노동시장에서 강자인 사용자들은 살리고, 약자인 노동자들은 포기하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물이 ‘쉬운 해고’였다. 이는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와 자영업자가 600만명을 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낳았다.
20년 동안 기업의 부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사이 가계부채는 네 배 늘었다. 잘못된 노동시장 구조 탓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구조개혁 방안은 최저임금과 청년실업을 미끼로 이미 쉬운 해고를 '더 쉽게' 하는 쪽으로 맞춰졌다. 소득 양극화 해소와 이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정반대로 흘러갔다.”

"국가 최대 과제 시장에 맡긴 정부"

▲ 정기훈 기자
- 정부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줄여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자리 문제가 기업의 여유자금에 달려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청년일자리 문제를 민간에 맡겨 기업과 구직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벌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을 돌파했다. 그런데 원청 대기업의 이익이 커지는 동안 중소기업이 좋아졌나. 일자리가 늘어났나. 시장이 알아서 일자리를 만든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허구라는 것은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익이 커져도 일자리 만들기를 억제한다. 필요 인력은 사내하청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식으로 메운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의 쉬운 해고로 청년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발상이다. 과거 포항제철(현 포스코)이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은 누가 만들었나. 정부가 만들었다. 정부는 기업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거대한 계획을 갖고 스스로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가 돼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 현재 법인세와 각종 인센티브 지원제도는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여러 연구를 통해 동일한 자금을 지원했을 때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대기업과 비교해 3배에서 5배까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원·하청 불공정 거래 폐습을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 공무원연금 개혁은 어떻게 보나.

“공무원연금에 대해 ‘이대로 가면 파탄’이라는 말이 매년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동안 몇 차례 개혁 과정을 거쳤지만 미봉책에 불과해 지금껏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연금을 누가 만들었나. 박정희 정권이 만들었다. 나라가 가난해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못하고, 그럼에도 좋은 인재는 데려다 쓰고 싶으니 미래 보수 개념으로 공무원연금을 도입한 것이다.
이제 와서 박근혜 정부가 이를 마치 특혜나 기득권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물론 개편은 해야 한다. 평균수명 증가로 최초 설계 당시와 조건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위인데, 정부와 공무원들의 긴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지난해 정부가 연말까지 개혁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는데, 그게 아니라 '연말까지 논의를 시작한다'고 했어야 옳다. 사용자인 정부와 노동자인 공무원들이 동등한 위치에 서서 노사관계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 노동계도 어차피 고쳐야 하는 것이라면 개편 수위를 낮추려는 쪽에만 집중하지 말고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고치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 최근 정부·여당에서 최저임금 인상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급속히 올려야 한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책정 방식은 바꿔야 할 것 같다. 호주의 경우 최저임금이 두 개다. 정규직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최저임금이 따로 발표된다. 비정규직 최저임금은 정규직 최저임금보다 20%에서 25% 정도 높다. 정규직의 경우 각종 복지와 수당 혜택을 받는 것을 감안한 조치다. 호주는 풀타임과 파트타임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동등하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를 '캐주얼 근로자'라고 부른다. 근로시간이 짧고 고용안정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보다 캐주얼 근로자에게 임금을 더 준다. 우리나라도 호주처럼 이중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 하위 임금계층과 상위 임금계층의 소득격차를 줄일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 특정 업종에 비정규직 채용이 허용되더라도 정규직과의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내용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호주의 이중 최저임금제처럼 시장이 알아서 비정규직을 더 대우하게 된다. 비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고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나누기 효과도 생긴다.”

- 4·29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야권연대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하다.

“2013년부터 정의당·민주노총·노동당·노동정치연대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가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참여주체 내부 문제로 지난해부터 사실상 논의를 중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초 국민모임이 결성되면서 진보재편 논의가 시작됐다. 4·29 재보선 이후 밀도 있는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통합된 하나의 당으로 갈지, 아니면 일정한 과정을 거쳐 연대의 질을 높여 나갈지를 놓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과의 통합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다만 과거보다 통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이 줄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그렇고 정의당도 그렇고 각각 정체성을 가진 정당으로 존재하면서 선거 시기에는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맺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내 의견도 같다. 옛 통합진보당의 경우 과거 발생했던 세력 간 불화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통합 논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도 개편, 국민투표 부쳐야"

- 선거구 획정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선거제도와 의석수 논쟁이 일고 있는데.

“모든 정당이 국민의 지지만큼 의석수를 가져가는 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 차원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발전적인 제안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소수정당 수탈을 기반으로 거대 정당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다. 정치 다원주의나 국민의 정치권을 침해하고 있다. 만약 중앙선관위 제안이 실현된다면 부산의 의석 40%를 야권에서 가져올 수 있다. 호남에서는 반대 상황이 생길 것이다. 지역주의 극복과 민주주의 발전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주장했는데, 여당은 물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반대했다. 지금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을 당사자인 정치인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영국과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서는 선거제도 개편을 국민투표로 한다. 다음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대선 공약으로 선거제도 개편 국민투표를 공약하고, 국회는 투표 결과만을 입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서 의석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학교폭력이 는다고 학생수를 줄이자는 말과 같다. 국민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

- 내년 총선에 출마할 생각인가.

“내년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 중이다. 최대한 당의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거취를 결정하겠다. 진보정치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도 많지만 국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점도 많다. 진보정치 세력을 형성하는 대목에서도 그렇고, 진보적인 정책을 벼리는 작업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진보정치가 우리 사회을 어떻게 바꿔 낼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현실적인 마스터플랜을 짜야 한다. 강연·연구·토론에 참여해 진보정치가 왜 필요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국민에게 알려 나갈 것이다. 진보정당이 국민 속에서 뿌리내리도록 나름의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