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축구평론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온 나라가 다시금 커다란 슬픔과 분노에 사무쳐 있던 때에 박근혜 대통령은 저 멀리 중남미 4개국 순방에 나섰다. 가서는, 첫 번째 방문국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 박 대통령은 콜롬비아가 6·25 전쟁 때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5천100여명의 젊은이들을 파병한 것에 대한 답례로 한 말이겠지만, 당장 본국에서는 ‘기억하자 4·16, 잊지 말자 세월호’라는 눈물의 구호가 난무했다. 저 먼 곳에 가서 그런 의전의 말을 하는 것이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다.

좀 더 면밀히 보면 이 말은 콜롬비아 태생으로 남미 최고의 소설가, 나아가 현대문학을 완전히 새로운 경지로 열어젖힌 대문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유명한 말이라는 점에서 한 번 더 생각을 가다듬게 한다. 마르케스는 패악한 정권의 가혹한 학살에 희생당한 남미의 수많은 빈민과 노동자들을 애타게 사랑했던 작가였기에 그의 말을 박 대통령이 인용했다는 것 자체도 썩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상대 국가 대문호의 경구를 인용함으로써 의전 관례를 지켰다는 정도로 이해하자. 지금 이 지면에서 중요한 것은 마르케스를 비롯한 남미 작가들의 상상력과 그들의 축구문화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마르케스는 ‘서구인의 눈으로’ 세상이 재단되는 것에 평생 맞섰던 사람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전 세계 20여개 언어로 번역돼 2천만부 이상 팔린 현대의 고전이다. 서세동점의 파괴적인 상황에서 남미의 역사와 위엄 있는 인간적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무대인 가상의 마을 마콘도는 그의 고향인 소도시 아라카타카와 흡사하다. 이 때문에 해마다 2천여명의 관광객이 몰려와서 아라카타카 시장은 시민들에게 시의 이름을 마콘도로 개명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마르케스는 "나는 어린 시절을 멋지게 보냈다. 외할아버지의 커다란 집은 환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상상력이 풍부했고 마을 사람들은 미신을 믿었다. 마을 구석마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넘쳐났고 저녁 6시가 넘으면 집 바깥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그야말로 공포로 가득 찬 멋진 세계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콜롬비아 카리브 해안에서 귀에 벌레가 들어간 소 앞에서 주문을 외우며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기도를 하는 동안 죽은 벌레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내가 멕시코에 체류한 지 20년 가까이 되지만, 지금도 꿈틀거리는 강낭콩을 쳐다보며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다. 서구의 합리주의자들은 콩 안에 애벌레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지만 내가 보기에 그 설명은 너무 빈약했다. 여기서 경이로운 사실은 애벌레 때문에 강낭콩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강낭콩이 움직이고 싶어 애벌레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의 시선, 즉 서구 유럽의 시선으로는 이 모든 것이 ‘야만적이고 미개’하다. 그러나 남미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러한 신념은 일상적이다. 남미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사유와 감성으로 근현대사를 살아 냈다. 그게 그들의 축구에 농축돼 있다. 얼핏 상상만 해도 알 수 있다. 펠레·마라도나·호나우딩요·메시 등 남미의 스타들은 우격다짐 축구가 아니라 신기한 마법을 부리듯이 그라운드를 천재들의 놀이터로 만들지 않았던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여러 나라의 축구문화가 영국을 그 기원으로 삼고는 있지만 결코 영국 스타일의 축구를 직수입해 복제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축구문화가 ‘근대적인 시민 양성 시스템’의 일환으로 규율·질서·통솔력 같은 개념을 중시했다면 그들로부터 축구를 배운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집합적 규율 보다는 자유로운 개인의 창조성을 훨씬 높게 평가했다. 조나단 윌슨은 <축구철학의 역사>에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영국처럼 체력 중심주의를 덕목으로 삼는 인식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었고 재간을 부리는 것을 업신여기지 않았다”고 썼다.

지난 4월13일 타계한, 남미 대륙을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탱고처럼 축구가 빈민가에 꽃을 피웠다”고 말했는데, 이 또한 규칙·질서·협동심 같은 유럽 축구의 가치관 대신 개인의 비범함과 신선한 창의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남미의 축구문화를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대표적인 축구팀이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다. 1816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수도로 하여 독립한 아르헨티나의 축구사를 대표하는 팀이다. 1905년 세 명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창단한 보카 주니어스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노동자 밀집지역을 연고로 발달했다. 이들의 홈구장은 말 분뇨처리 공장 부지에 세워진 것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를 양분하는 숙적 리버 플레트는 비교적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열렬히 응원한다. 그래서 두 팀의 경기는 단순한 맞수 대결 이상의 사회적 열기를 수반한다.

이들의 경기 때는 다양한 형상의 돼지와 닭이 등장한다. 살아 있는 돼지와 닭을 들고 경기장에 출현하는 광팬들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보카 주니어스는 극도로 가난한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데 말 분뇨 공장, 벽돌 공장, 시멘트 공장 등이 줄지어 있고 대다수 팬들은 바로 그 공장들에서 어렵게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비교적 형편이 좋은 리버 플레트 팬들이 이런 이유로 보카 주니어스와 그 팬들을 로스 푸에르코스(los puercos), 즉 돼지라고 놀렸다. 반면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곳을 기반으로 하는 리버 플레트 팬들을 겁쟁이라고 비아냥대면서 가시나스(gallinas), 즉 겁에 질린 닭들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두 팀 팬들은 돼지와 닭을 형상화하거나 실제로 살아 있는 돼지나 닭을 끌고 경기장까지 오는 것이다.

이런 광기 어린 정념은 유럽식 축구문화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유럽,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지배적 시선에서 이를 내려다보면 ‘야만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상징도 닭이다. 나는 2006년 5월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열린 프랑스 대 중국 평가전 때 꽤 많은 프랑스 팬들이 수탉을 형상화한 깃발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봤다. 실제로 경기장 안에 활개를 치며 날아다니던 세 마리의 수탉도 본 적 있다. 프랑스든 아르헨티나든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가리키는 바에 따라 그들 나름의 열렬한 축구문화가 형성된 것일 뿐이다. 축구장에서는 그 어떤 문화적 우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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