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패션디자인업계의 노사단체가 열정페이로 상징되는 청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길에 나섰다.

23일 패션노조·알바노조·청년유니온으로 구성된 3개 청년노동단체와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정책공청회를 열어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양측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 이날 국회에서 열린 행사를 주관했다. 이로써 열정페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사회적 협의의 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아직은 위태롭기 그지없지만, 하나의 의제가 문제제기와 갈등의 단계를 넘어 문제해결과 조정의 국면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착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제의 주요 당사자들이 직접 만났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청년노동 문제는 정부의 책임 있는 근로감독을 요청하는 것을 주된 대책으로 삼아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청년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조직된 힘이 취약한 청년노동자들은 법이 정하고 있는 기초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싸울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시장의 구조적 약자를 최우선으로 지키는 것은 노동행정의 기본 역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패션디자인업계의 이 한 걸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아니, 그것에 담겨 있는 함의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청년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무방비 상태로 강요당해 왔던 부당한 노동관행을 노동조합이라는 수단을 통해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전통적인 노사관계 관점에서는 취약해 보이는 ‘조직적 대표성’에도 노사 양측이 서로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사회적 대표성’이다. 업계 내에서 노사단체로서의 상징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협의의 결과가 청년노동의 사회적 기준을 설정하는 기능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그만 디딤돌 하나를 간신히 놓았다. ‘공식협의’를 성사시키기 위한 우여곡절 속에 여러 사람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그 지난한 과정은 청년들의 삶에서 출발했다. 패션노조로 자신의 경험을 제보한 수많은 패션업계 청년노동자들이 있었고, 용기 내어 언론 인터뷰에 응한 당사자들이 있었고, 그 목소리를 힘으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신사동 가로수길·강남구 역삼동 현장을 누빈 활동가들이 있었다.

지금의 도전이 종국에 어떤 실질적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것에서 청년노동이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산업 수준 사회적 교섭전략’의 잠재적인 전망을 구상하고 싶다. 패션디자인업계의 시도가 하나의 모델이 돼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어렵고 더디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다. 목표를 잃지 말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앞으로도 한 번에 원하는 만큼 바꿀 수도 없을 것이고, 원칙과 타협의 경계에서 끝없이 방황할 것이다. 지금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러한 괴로움을 버틸 수 있는 근력이다. 협의 자리가 말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청년노동의 힘을 키우는 지속적인 운동을 병행해야 하며, 스스로의 대표성을 확대하기 위한 부단히 노력하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비관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작은 변화의 씨앗을 확인하고 싶다. 빼앗기고 포기를 강요당해 왔을 뿐,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는 동료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조금씩은 바꿀 수 있다고, 우리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올 수 있다고, 거기서부터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러니 함께하자고.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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