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
센터 소장

서울 도심 중앙우체국 앞 전광판에 올랐던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조합원 강세웅씨와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인 장연의씨가 내려올 날은 언제일까.

오늘로 하늘집에 깃든 지 76일이다. 스트레칭에도 흔들리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유배지에서 두 달 보름 생존실험을 하듯 버틴 두 사람이 무탈하게 내려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애태우는 이들이 많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모두 노사 잠정합의 후 조합원 투표로 가결됐지만 센터별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장연의씨는 목디스크와 당뇨로 건강이 악화됐다. 강세웅씨는 LG광주광산센터 집단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내려올 수도 없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중앙교섭 합의도 무색하게 원점에서 또 교섭으로 현안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겹게 겪은 일이지만 매번 정말 지랄 같다.

2015년 한국 사회는 절망의 개미지옥이다. 태생부터 불법인 정권이 세월호 유족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소망마저 짓뭉개고 있다. 돈벌이를 지상 가치로 등극시킨 재벌 자본이 공동체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근로자는 노예일 뿐이라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의 확신이 새삼스럽지 않다. 사람을 기계처럼 이윤에 철저하게 종속시킨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체제다. 현대판 노예의 대표적인 집단이 비정규직 아닌가. 진실을 자백한 말단 관료를 경질한다고? 그는 윗사람의 가치관을 충실하게 따라 배운 죄밖에 없다.

지난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야말로 잘 포장된 근로자 노예관의 정수다. 노예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선택한다.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인 합법노조 활동조차 장기투쟁으로 이어지는 건 필연이다. 고대 로마의 스파르타쿠스처럼 인간임을 선언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고단한 투쟁 외엔 선택지가 없다.

질식 직전인 지상을 떠나 하늘로 오른 두 사람은 숨쉬고 싶었을 뿐이다. 비정규직도 사람대접 받으며 함께 살고 싶어 가뭇한 희망 하나 더듬어 올랐을 뿐이다. 지상에서 찾지 못한 희망의 근거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찾으려 떠났을 뿐이다. 그렇게라도 강대하고 잔인하고 파렴치한 재벌 오너들에게 한번 이기고 싶었을 뿐이다. 떠밀리듯 그렇게 올라 버틴 76일 동안 고공농성 전광판은 투쟁의 깃발이기 이전에 산소호흡기였다. 무슨 승리 이전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 진지였다. 고공농성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심장에도 서늘한 한 줄기 산소가 흘러들어오곤 했다. 통신 비정규직 투쟁의 눈물겨운 신호수이자 나팔수였던 두 동지가 많은 이들에게 산소였다. 그리고 농성투쟁을 엄호한 조합원들과 연대 단위 동지들이 고공농성 노동자들에게 산소가 됐다.

고공농성과 현장투쟁에 힘입어 통신 비정규직 장기투쟁이 SK브로드밴드에 이어 LG유플러스까지 노사가 잠정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아직 미타결 현안 투쟁사업장이 여러 곳 있어 투쟁이 종료된 건 아니지만 두 지부 모두 중앙교섭 타결로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최말단에서 고통받고 있는 재위탁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쟁취한 것이다. 주먹구구식이었던 임금체계를 개선하고 임금인상을 쟁취한 것도 의미 있는 결실이다. 노동시간단축과 유급휴일 보장으로 주말과 휴일이 있는 삶을 요구하며 싸워 온 비정규 노동자들의 간절한 소망이 일정 정도 이뤄졌다. 그리고 사용자들의 관행적인 법 위반을 바로잡아 서로 믿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노조를 만든 지 갓 1년을 넘긴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이 임단협을 쟁취한 것은 지난해 씨앤앰 투쟁에 이어 특기할 만한 성과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는 하나 된 공동투쟁과 사회연대투쟁의 결실이다.

이제 강세웅 동지와 장연의 동지가 환한 웃음과 함께 우리 곁으로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마지막 힘을 모아야 한다.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근절투쟁의 첫 단추를 잘 꿰고도 정작 앞장선 두 사람은 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중간착취 고용형태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원청사용주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해답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강세웅과 장연의, 두 노동자의 이름을 뇌리에 새긴다. 자본의 노예가 아닌 노동하는 인간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우리 시대의 희망이므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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